<넷플릭스 요리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스포일러 리뷰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아래 <흑백요리사>)이 인기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흑백요리사 봤냐'는 질문을 주고받는다. 국내를 넘어 넷플릭스에서 한국 예능 최초 비영어권 3주 연속 1위라는 기염을 토해냈다고 한다.
솔직히 예고편을 처음 접했을 때는 큰 기대가 없었다. 이미 수년 간 온갖 방송들을 통해 셰프들의 출연을 지겹게 봐 온 터라 식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서바이벌로 승부를 가리는 형식 또한 지칠 정도로 접해왔기에 흥미가 떨어졌다.
공개 첫날, 딱히 볼 게 없어 틀어봤다. 한 편 보고 재미없으면 도중에 끌 생각이었는데, 어느덧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음 편을 연이어 시청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 자료사진 ⓒ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는 기존 요리 예능 프로그램들과의 차별점이 분명하게 존재했다. 먼저 엄청난 스케일에 놀랐다. 어마어마한 세트의 규모와 요리를 위한 갖가지 장비들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PPL이 포함돼 있겠지만, 제공되는 식자재의 종류와 양 역시 역대급인 듯했다.
무엇보다 가장 크게 놀란 부분은 넷플릭스 제작진의 미친 섭외력이다. 일단 심사위원은 두 말 하면 입 아픈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와 국내 최초 미쉐린 3스타를 받은 안성재 셰프가 맡았다. 거기에 경연에 참가하는 요리사들의 수는 무려 100명이나 됐다.
9화에서는 요즘 가장 잘 나간다는 먹방 인플루언서 20인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이들을 한 앵글 안에서 볼 수 있게 되다니. 현 시점 넷플릭스의 자본력과 영향력이 아니고서야 어찌 가능할 수 있단 말인가. 다른 방송국이나 플랫폼들은 꿈도 꾸지 못할 스케일이다.
'요리 계급 전쟁'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다시피 참가자들은 흑과 백 둘로 나뉜다. 인지도와 경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나눈 듯하다. 얼굴이 익숙한 20명의 유명 셰프들은 백수저에 속했다.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실력을 무시할 수 없는 나머지 80명이 재야의 고수들인 흑수저다.
마치 바둑처럼 백수저가 상위 계급, 흑수저가 하위 계급이라는 설정이다. 흑수저들이 백수저들에게 도전하는 듯한 느낌으로 시작해 최후의 1인을 가리는 서바이벌로 진행된다. 역대급 규모와 인지도의 셰프들이 모여 펼치는 요리 대결은 규모뿐 아니라 재미면에서도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시리즈 초반은 생각보다 늘어지지 않고 꽤 신속하게 진행됐다. 시간 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상당수의 참가자들을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떨어뜨렸다. 패자부활전이 있기는 했으나 결론적으로 딱 한 번 뿐이었다. 한 명 한 명 떨어질 때마다 시청자들도 덩달아 긴장감과 아쉬움에 탄성을 지르게 된다.
다만, 팀 대결을 두 번이나 구성한 부분에 대해서는 시청자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나뉜다. 개인적으로도 이 부분이 가장 아쉬웠다. 오직 맛으로만 최고를 가리겠다더니 팀전을 두 번이나 진행한 부분이 이해되지 않았다. 개인의 역량을 펼칠 기회도 얻지 못하고 탈락한 출연자도 있기 때문이다.
11화를 최고의 한 편으로 꼽는 이유
▲ 내 마음 속 우승자는 이균(에드워드 리)이다. ⓒ 넷플릭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은 뒤로 갈수록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전체 회차 중 최고의 한 편을 꼽으라면 고민하지 않고 11화라고 말하고 싶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가장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를 펼치는 내용이 담긴 회차여서다.
흑수저인 나폴리 맛피아가 결승에 진출한 상태에서 나머지 한 명의 진출자를 뽑는 준결승전인데, 전에 보지 못한 대결 형태를 보여준다. 일명 '무한 요리 지옥'. 두부를 재료로 30분 동안 음식을 계속 만들어내야 했다.
한 번에 한 명씩만 탈락시켰기 때문에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 명의 탈락자가 결정되면 곧바로 다음 두부 요리를 준비해야 해서 셰프들의 지쳐가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다가왔다. 막판으로 갈수록 체력과 아이디어가 고갈될 수밖에 없어 피를 말리는 승부였다.
11화에서 보여준 준결승전이 사실상 결승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만큼 처절하고 힘겨운 승부였다. 참가자들은 당연하고 심사위원들도 무척 힘에 부쳐 보인다. 심지어 화면 밖에서 시청하는 나 역시 기가 빨려 지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처절한 승부 끝에 에드워드 리 셰프가 결승에 오른다. 준결승전이 너무 손에 땀을 쥐게 만들어서인지 몰라도 12화 결승전은 오히려 좀 시시했다. 준결승전이 너무 무겁고 어려웠던 탓에 결승전이 조금은 가볍게 느껴졌나 보다.
흑수저 나폴리 맛피아 셰프가 최종 우승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준우승을 차지한 에드워드 리도 그에 못지않았다고 본다. '아이언 셰프 아메리카' 우승 등 그동안 그가 쌓아온 경력과 연륜이 매 순간 빛을 발했다. 우승은 나폴리 맛피아가 차지했지만, 주인공은 에드워드 리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에드워드 리 셰프가 가진 서사와 그의 서툰 한국말 속에 담긴 진정성 있는 메시지들은 하나하나 다 보석 같았다. 가슴을 울리는 그의 활약에 매료돼 어느새 나는 그의 팬이 돼 버렸다. 어찌됐든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기에 만장일치로 나폴리 맛피아의 손을 들어준 두 심사위원의 결정은 옳다고 본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아쉬워서 굳이 두 사람 모두에게 우승자라고 말해주고 싶다. 객관적인 맛으로서의 승리가 나폴리 맛피아라면, 주관적인 생각에서 멋있음은 에드워드 리가 압권이었다. 특히 그의 한국 이름 '이균'에 관해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전율이 느껴질 정도였다. 셰프가 어느 경지에 이르게 되면 맛뿐만 아니라 멋으로도 승부하게 된다는 것을 알려줬다.
요식업의 활성화를 바라며
▲ 우승을 차지한 흑수저 나폴리 맛피아(본명 권성준) ⓒ 넷플릭스
경제 불황이 장기화되고 있는 요즘 많은 식당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폐업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요식업이 더 활성화됐으면 좋겠다. 이번에 출연한 셰프들의 식당뿐만 아니라, 아직 덜 알려졌지만 인생을 걸고 요리하는 수많은 흑수저 식당들도 함께 주목을 받았으면 한다.
계급장 떼고 맞짱 뜨는 요리 전쟁을 보여준 흑백 요리사. 12화의 짧지 않은 편성이지만 결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재미와 감동을 선사해 준다. 아직 보지 못했다면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더불어 또다시 '맛'과 '멋'의 치열한 요리 향연을 보여주게 될 '흑백요리사 시즌2'를 진심으로 고대하며 기다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