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넷플릭스 '다 이루어질지니', 알고 보면 꽤 현실적인 판타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공개 직후 ‘오늘 대한민국의 TOP10 시리즈’ 1위에 오르더니 3일 만에 글로벌 비영어 부문 5위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까지도 국내 시청 순위 상위권을 지키며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다.
<다 이루어질지니>는 멜로 장인 김은숙 작가가 쓴 오랜만에 신작이다. 고대 신화 속 램프의 정령 지니(김우빈)와 선천적으로 사이코패스 기질을 가진 기가영(수지), 두 인물의 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랑과 소동을 유쾌하게 풀어낸다. 김은숙 작가의 돋보이는 대사 감각, 거기에 판타지가 잘 어우러져 가볍게 보기 좋은 작품이다.
총 13부작으로 구성된 이 드라마는 지난 3일, 추석 연휴에 맞춰 전 회차가 동시에 공개됐다. 긴 연휴 동안 정주행하기에 적당한 길이와 템포를 가진다. 주연 배우들의 연기 호흡은 안정적이고, 조연들 역시 빈틈이 없다.
소재 또한 신선하다. 983년 만에 깨어난 램프의 정령과 현대를 살아가는 사이코패스 여인의 사랑이라니,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설정이 낯설게 다가온다. 특히 두 인물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 ‘전생’이라는 장치를 더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기가영이 고려 시대에 노예로 중동에 팔려간 소녀의 환생이라는 설정은, 역사 시간에 배운 ‘벽란도’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아라비아 상인들과도 교역했던 역사적 사실을 차용해 이질적인 두 인물의 로맨스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드라마가 ‘사랑’이라는 주제를 입체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데 있다. 김은숙 작가의 전작 <미스터 선샤인>처럼, 단순히 이성 간의 사랑에 머물지 않고 인류애로까지 확장한다.
주인공 기가영은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세 가지 소원을 빈다. 대부분 욕망을 채우기 위해 소원을 비는 사람들과 대조적이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이 어떻게 타인을 위해 소원을 빌 수 있었는지, 그 해답은 그녀의 가족과 마을 공동체에 있다.
선천적으로 사이코패스 성향을 타고난 가영은 어릴 적부터 분노 조절 장애와 폭력성을 보여왔다. 그런 손녀를 지켜준 이는 할머니 오판금(김미경·안은진)이다. 판금은 손녀의 충동적인 성향을 그보다 더 뜨거운 사랑으로 감싸 안으며 감정의 언어를 하나씩 가르친다.
이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도 변하며 성장해 간다. 처음엔 두려워했던 이들이 점차 가영을 이해하고, 아이가 돌발 행동을 할 때마다 함께 가르치며 다독였다. 낫을 손에 쥐면 글자를 알려주고, 망치를 휘두르려고 하면 목공을 알려주는 등 공동체의 힘이 드러난다.
아프리카 속담인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를 절로 떠올리게 된다. 램프의 정령이나 죽음의 천사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었던 한 명의 아이를 마을이 마음을 모아 품는 이야기다. 혐오와 분열이 일상화된 지금의 현실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 야기가 더 판타지처럼 느껴진다.
세대, 성별, 인종 등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갈등이 심화되는 시대, <다 이루어질지니>는 ‘공동체의 사랑’이라는 오래된 메시지를 다시 꺼내 든다.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이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말했듯, 배우고 익혀야 하는 기술이다.
책을 꼭 읽지 않더라도 제목만큼은 기억해 두자.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누구나 배우고 익혀야 하는 기술이라는 것. 추석 연휴의 끝자락, 둥근 보름달 아래에서 우리가 진정 빌어야 할 소원이 아닐까. 사랑은 타고나는 게 아니다.
*사진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