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최애 가수를 추모하며

대만의 머라이어 캐리 CoCo Lee

by 천세곡

뉴스 페이지를 검색하다가 대만 여가수 ‘COCO Lee’(이하 코코 리)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기사를 읽는데 잠시 멍해졌다. 우리나라 유명 연예인도 아니고, 요즘 사람들은 잘 모를 수도 있는 중화권 가수의 자살 소식이 왜 이렇게 나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을까.


학창 시절, 누구나 좋아했던 가수가 한 명쯤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는데 취향이 조금 독특했었다. 여느 또래 친구들과 달리 외국 가수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대만 국적의 여가수를 말이다.


코코 리는 한 때 내 최애 가수였다. 사실 그녀의 영문명보다는 '이민'이라는 이름이 내게는 훨씬 더 익숙하다. 중국어 발음은 아니고 한자 독음을 그대로 적은 것이긴 하지만, 옥편을 찾아가며 이름을 알게 되었을 때의 뿌듯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중학생 때 우리 집은 TV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유선방송(케이블 TV)을 신청했는데 언제부터인가 홍콩 음악을 소개해 주는 채널 V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중화권 노래들을 접하게 되었다.


중국어를 모르니 당연히 가사를 알아듣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호감을 가지게 된 것은 멜로디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가요와 닮은 듯 묘하게 감성이 다른 그들의 음악이 무척 좋았다. 그중 가창력이 매우 뛰어난 가수의 노래를 접하게 되었는데 바로 코코 리였다.


당시만 해도 댄스 실력과 함께 외모와 가창력까지 다 되는 여성 솔로 가수는 흔치 않았다. 게다가 코코 리는 내가 가장 좋아했던 장르인 R&B를 능숙하게 소화해 내는 가수였다. 시원하게 내지르는 고음과 자유롭게 꺾는 바이브레이션 덕분에 대만의 머라이어 캐리로 불렸다.


그녀의 노래를 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테이프나 CD를 구입하려면, 명동에 있는 중국대사관 근처까지 가야 했다. '중화서국'과 '생원'이라는 화교들이 운영하는 상점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수입되어 들어온 음반들을 구할 수 있었다. 주문받아 소량만 판매하는 방식이라 가격이 비싼 것이 흠이었다.


그럼에도 한 달에 한두 번쯤은 명동에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아둔 용돈으로 음반을 하나 둘 사모아갔다. 매일 밤, 내 방에서 그녀의 노래를 듣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꼬박 3~4년을 팬클럽 활동까지 하는 열성팬으로 살아냈다.


그렇게나 좋아했던 코코 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만감이 교차했다. 더구나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라니. 또 다른 기사에서는 그녀가 실은 암투병 중이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주변에 말하지 않고 버텨왔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을 더 안타깝게 하고 있다.


정확히 어떤 암인지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결국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암이 아닌 우울증이었다. 노래와 춤도 탁월했지만 특유의 발랄함으로 팬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던 가수였기에 그녀의 자살은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오랜만에 코코 리의 노래를 검색해 본다. 지하철을 타고 멀리 명동까지 가서 큰돈 주고 사서 들어야 하는 수고 따위가 없어도 손가락 터치 몇 번으로 그녀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그때의 열정은 이미 식은 지 오래지만, 익숙한 멜로디와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니 고등학생의 나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나의 사춘기 시절을 함께 해 주었던 코코 리의 노래는 나에게 잊지 못할 추억의 한 챕터를 장식하고 있다. 생각해 보니 유선방송을 통해 내가 처음 보고 들었던 그녀의 노래 제목은 '애아구일점'(Love Me A Little Longer : 나를 조금만 더 사랑해 줘)이었다. 죽음을 생각하기 전에 그녀가 자신을 조금만 더 사랑해 줬다면 어땠을까. 48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코코 리를 추억하고 또한 추모한다.




*사진출처: 구글 검색 "코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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