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즈 사강, 보들레르, 랭보의 나라라는 것만으로도 내가 프랑스에 갈 이유는 충분했다. 문예창작학과 신입생 시절부터 프랑스를 사랑해 왔으니 나의 외사랑은 어언 12년이 된 셈이다.
방학이 되면 많은 수의 선배들과 동기들은 이국으로 떠났다. SNS에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여행 사진들을 보는 동안 사실 부럽지는 않았다. 그들이 이국을 헤매며 마주했던, 당황스럽지만 추억이 될 사건들의 사연을 쓰는 동안 나는 한국에서 다른 방식으로 치열했기에. 다음 학기에도 과외를 해야 할까? 과연 이번에도 학생들을 모집할 수 있을까?
당시 우리 집의 재정 상황은 최악이었다. 나는 혹시나 채무자들이 집에 찾아오지 않을까 불안해하며 현관문을 열어야 했다. 내 잘못이 아닌데 닥쳐온 불안이 삶의 곳곳에 너무 많이 끼어 있어서 부러움이라는 감정이 내 마음속에 똬리를 틀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12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프랑스라는 나라를 꾸준히 생각하면서.
시간이 흘렀고 나에게는 업이라는 게 생겼다. 업이 가져다주는 돈이라는 것도 생겼다.
그리고 그 무렵 유럽 여행은 한국인들에게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아 있었다. 현지 상황을 생생히 전달해 주는 유튜브 콘텐츠들이 수없이 많아졌고 블로그에는 파리 숙소 정보와 항공권 정보들이 넘쳐났다. 여행지로서의 파리가 점점 유명해진 탓에 물가는 다소 잔인해졌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관광객을 위한 인프라가 잘 갖춰졌다는 뜻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었다.
이때부터 나는 슬슬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오랫동안 사랑해 온 나라에 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해외에서 살다 온 경험이 있는 대학원 선배의 도움을 받아 항공권 예약하는 법을 배웠다. 이왕 마음을 먹었으니 최대한 빨리 가고 싶었다. 일정을 정리하고 정리해 한 달 뒤에 출발하는 항공권을 예약했다. 내가 선택한 항공편은 당연히 직항. 약 14시간을 날아 곧바로 샤를드골 공항에 도착할 수 있는 항공권이었다.
그런데 출국 약 10시간 전. 항공사로부터 내가 탈 비행기가 결항되었다는 연락을 받았고 그 항공사는 자기 마음대로 내 출국 시점을 3일 뒤로 잡아버렸다. 그렇게 되면 나는 파리에 고작 4일밖에 머무르지 못한다는 소리가 되는데...... 아니, 안 돼. 내가 이 시간을 어떻게 뺐는데!
다급한 상황인 만큼 항공사에 대한 원망은 잠시 미뤄두었고, 나는 어떻게든 내일 출국할 수 있는 항공권을 다시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루 전에 알아보는 항공권 중에는 직항이 없었다. 결국 나는 인천-하노이-파리로 가는 베트남 에어라인을, 누군가는 저가로 갈만 한 그런 항공권을 나는 최고가로 예매했지만, 괜찮았다. 못 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베트남 에어라인을 예매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그 시점, 만약 내가 파리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펑펑 울 거라는 걸 알았다면 나는 파리에 갔을까?
비행기를 타고 먼 나라로 간 게 이번은 처음은 아니다. 4년 전, 나는 이미 미국에 한 번 갔다 온 적이 있었다. 여행 목적은 아니었고 가족 중 한 명이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어 참석 차 갔었는데, 결혼식을 돕는 일정은 꽤 빡빡했고 9박 10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꾸벅꾸벅 졸았었다. 어쨌든 쪽잠을 잔 덕에 약 19시간, 당연히 한 번의 경유를 해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을 나름대로 잘 버텨냈었다.
미국에 다녀온 뒤, 4년이 흘렀다. 그리고 그동안 내게는 불면증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내 몸에 함부로 들어온 불청객은 뻔뻔하게 눌러앉아 나를 괴롭혔다. 당연히 정신과를 찾았고 약을 먹어야 겨우 잘 수 있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들뜬 나머지 나는 내가 불면증 환자라는 걸 깜빡 잊고 있었다.
하노이에서 파리로 향하는 약 14시간의 비행을 약 4시간쯤 남겨두고서 나는 펑펑 울기 시작했다. 몸이 괴로워서 눈물이 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인천에서 하노이로 향하는 비행기 안, 내 옆자리에 앉은 일본인은 잘만 자던데. 하노이에서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 안, 내 옆에 앉은 베트남 여권을 가진 또래 여자는 귀여운 캐릭터 모자를 뒤집어쓴 채 잘만 자는데. 손이 떨리고 살면서 처음으로 허벅지에 경련이 일 정도로 피곤한 몸은 왜 여전히 깨어 있는가.
코로나가 유행이라 하여 혹시 몰라 챙겨간 마스크를 안대 대신으로 사용하며 나는 숨죽여 울었다. 도착 시간이 알고 싶어서 마스크를 눈에서 벗겨냈을 때 문득 옆을 보게 되었다. 베트남 국적의 여자가 보다 멈춰둔 영화는 <인사이드 아웃>이었다. 화면 속에는 '슬픔이'가 너무 슬픈 표정을 짓고 있어서 나는 조금 더 슬퍼졌다. 마스크를 다시 눈에 쓰고 또다시 펑펑 울었다. 하지만 그녀를 깨우고 싶지는 않아서 최대한 소리를 참으면서 울었다. 그녀는 친절하니까. 어떻게든 잠들어 보려 애를 쓰던 때 (아마 그녀는 내가 잠든 줄 알았을 것이다.) 기내 승무원이 나눠준 물병을 내 자리에 조용히 놔줄 만큼 친절한 사람이었으니까. 만약 내가 우는 걸 알았다면 그녀는 분명 나를 걱정했을 테니까.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달라진 점은 안대를 썼다는 것. 첫 번째 기내식을 먹고 화장실을 다녀올 때, 어떤 사람이 안대를 쓰고 있는 걸 보게 되었고 나는 곧바로 기내 승무원에게 안대를 요청했다. 돌아오는 동안에도 나는 조금 울었다. 울고 나면 한동안은 안구가 덜 뻑뻑해진다. 이걸 장점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비행기에서 우는 사람은 나 혼자만은 아니다. 어느 비행기에나 있는 어린아이들이 꼭 울음을 터뜨린다. 이 상황이 힘든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구나.
당연하게도, 썩 위로는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