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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이집사 Sep 11. 2023

결혼 비용은 할부 중

혼자 벌 때보다 못한 맞벌이 시대

아들:  아빠! 결혼하는데 돈이 얼마나 들어?


아빠:  계산하기 어려워. 아직도 갚고 있거든...


입이 쓰다. 아들의 물음도. 아빠의 답도.


결혼 비용을 묻는 걸로 봐서 아들은 최소 스무 살은 넘은 청년 같다. 아빠의 답변에서 자신이나 아내의 사치를 탓하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생활의 퍽퍽함을 말하는 듯한 푸념이 왠지 안쓰럽다.


2023년 2분기 합계 출산율이 0.7명으로 줄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여성이 애 낳는 숫자를 지상중계하는 게 썩 달갑진 않다. 그럼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합계출산율이 1보다 낮은 나라는 한국뿐이라는 말이 놀랍다. 보통 결혼을 해야 아이가 생긴다고 보면 날이 갈수록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겠다. 결혼을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경제 문제'다. 결혼 자금부터 살 집, 생활비 등이 여유치 않아 살기가 퍽퍽하다는 뜻이다. 결혼할 엄두가 안 날만도 하다.


초등학교 5학년 딸도 까딱하면 자기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한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그냥 싫단다. 다른 사람하고 사는 게 싫다면서 엄마 아빠도 아닌 동물하고 산단다. 아이고 순진한 것! 아직 돈의 무서움을 몰라서 그러려니 한다. 커가면서 돈 문제로 호되게 당하면 혼자 살겠다는 마음이 더 굳어지지 않을까 겁부터 난다.


실제로 세상 거의 모든 것의 가치가 돈으로 매겨지는 게 현실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지만 없거나 부족한 자들을 위한 '정신 승리'일지도 모른다.


미취학 아동을 위한 영어 유치원이 횡행하고, 우리말이 서툴고 어휘력도 딸리는 초등학생들도 영어 디베이트다 뭐다 해서 학원을 쫓아다닌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의대 입시반을 모집하는 학원도 있단다. 폐교하는 초중고가 늘어나고 수능 응시 인원도 해마다 줄어드는데, 우리나라 사교육비 총액은 예전보다 더 늘어난다.


'국적은 바꾸어도 학적은 못 바꾼다'라는 말도 옛말이 됐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의학전문대학원이나 로스쿨 준비부터 졸업까지 만만치 않다. 학생부종합전형, 입학사정관제 등 수시전형 위주의 미국식 대학 입시체계도 어느새 굳어졌다.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왈가왈부할 싶진 않다. 문제는 경제력이 사교육의 접근성을 결정짓는다는 점이다.


교육과 더불어 병역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이슈이다. 그럼에도 '신의 아들'이나 '금수저'들이 일반 국민의 역린을 건드리는 사건이 잊을만하면 터진다. 그 논란 속에는 한결같이 '검은돈'이 빠지지 않는다.


결혼 또한 예외가 아니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형편이 안되어서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젊은 세대가 늘고 있다. 이런 마당에, 결혼하면 뭐가 좋고 뭐가 나쁜지 같은 케케묵은 질문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결혼할지 말지는 팩트 체크가 아닌 가치판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청춘 남녀가 사랑해서 결혼까지 이어지는 문제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 강하다.


저출산에 따른 국가 위기를 염려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어떤 식으로던지 결혼을 장려하고 출산율을 높이고 싶겠지만, 행동과 결정의 주체는 개인이다. 더욱이 돈 문제가 결혼을 가로막는 가장 큰 이유인 상황에서, 웬만한 유인책으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


과거 애를 너무 많이 낳는 시절에 정부가 취했던 막가파식 조치는 이제 어림도 없다. 공짜 정관수술과 민방위 훈련 면제를 맞교환(?) 한 아버지 세대의 일화가 그래서 공포스럽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하나만 낳아 잘 키우자"


"둘도 많다"


"아이는 적게 낳고 나무는 많이 심자(중국)"


모두 출산을 억제하려는 정부의 대국민 포스터 구호이다.


1970년대 중반, 우리나라 가족계획 포스터. 저출산을 걱정하는 지금과 격세지감이다.
중국 농촌 담벼락에 적혀 있는 출산억제 구호 "少生孩子 多种树". "아이는 적게 낳고, 나무는 많이 심자"라는 뜻이다. 아이 하나가 나무 한 그루보다 못한 셈이었다.


70~80년대는 풍족하진 않았지만 가장(家長) 홀로 돈을 벌어와도 4인 가족이 오손도손 큰 어려움 없이 생활이 가능했다. 나도 그랬다. 아버지 혼자 일을 했어도 지방의 단독주택에서 크게 부족함 없이 살았다. 어머니는 살림에 충실했고 아버지는 빵과 버터를 가져다주었다. 누릴만한 재화나 서비스가 다양하지 않아 돈이 많든 적든 만족도 측면에서 큰 차이가 없던 시대이기도 했다. 때가 찬 선남선녀는 연애든 중매든 자연스레 백년가약을 맺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본주의를 지탱해 온 나사가 헐거워진 느낌이 든다. 채찍질하여 온순하게 다루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사회 전체의 파이는 커졌음에도,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자본주의의 그늘이 짙어진다. 맞벌이를 해도 뭐 하나 사려면 어디를 놀려가려면 따지고 또 따진다. 항상 쪼들린다는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전부 얼만데, 얼마면 되겠니?"라는 원빈의 당돌함처럼, 뭐든 일시불로 해결해 버린다면 얼마나 좋으랴! 드라마 대사는 남의 이야기일 뿐 여전히 대출과 카드 할부에 허덕이는 게 보통이다.


결혼 비용을 아직도 갚고 있다는 아버지의 대답이 그래서 더욱 씁쓸하다.




* 아들과 아빠의 대화는 <夫妻幽默笑话精萃 >에서 발췌하여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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