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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정 Jan 30. 2022

풍경 너머의 사람4

아침에 본 두오모


단잠을 깨고 일어나 보니, 전날 같은 방에서 잠들었던 사람들이 분주히 방 안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먼저 살갑게 인사를 해 와서 잠시 대화를 나눠 보니, 나를 제외한 세 명 중 한 명은 런던에서, 나머지 두 명은 러시아에서 온 모녀로, 전부 여행자였다. 


“어제 늦게 왔나 봐요. 본 기억이 없어요.”

“맞아요, 어제 늦게 도착했어요. 혹시 저 때문에 시끄럽지는 않았나요?”

“전혀요. 어제 완전히 곯아떨어졌거든요.”


런던에서 온 제인이 내게 이렇게 말하자, 방 안의 사람들이 모두 공감한다는 듯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긴 여행이 그들을 매일 밤 깊은 잠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오늘은 어디로 갈 계획인가요?”

모녀 중 어머니가 물었다. 

“두오모와 트리엔날레 디자인 뮤지엄이요. 밀라노에서는 하루만 묵을 예정이어서, 그 두 곳만 방문할 예정이에요.”

“좋은 선택이네요. 두오모는 정말 아름다워요. 꼭 가보세요. 저는 이제 딸과 함께 프랑스로 떠나요.”


그녀는 딸과 함께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왔다고 덧붙였다. 딸은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 초반으로 보였다. 말이 없었지만 내내 입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서로를 쳐다보는 눈빛만 봐도 그 둘의 사이가 어떤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그들과 인사한 뒤 짐을 간단히 챙겨 숙소를 나왔다. 이른 아침이었기 때문에 하늘은 조금 서늘한 푸른빛이었다. 밖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두오모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구경을 하기 전에 아침을 간단히 밖에서 사 먹기로 결정했다. 여행지에서 맛있는 현지 음식을 사 먹는 것을 즐기는 편이었지만, 급하게 결정한 여행이었기 때문에 음식점을 미리 조사해놓지 않은 상태였다. 다시 말해, 나는 시간은 많지만 세세한 계획은 없는 여행자였다. 핸드폰을 열어 밀라노 맛집을 검색해보다가 쏟아지는 정보의 양에 어지러움을 느끼고 거리를 무작정 걷기로 결정했다. 어떤 데이터도, 시선의 고정도 없는 상태로 그저 떠돌고 싶었다. 그게 이번 여행의 유일한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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