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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버 May 23. 2024

오작동 화재경보 무시만 할 거야?

나를 위협하는 신호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아파트마다 다 그럴까?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10년을 훌쩍 넘게 살았는데,

화재 경보 사이렌이 뜬금없이 가끔 마구 울리는 오작동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얼핏 듣기로는 경비원이나 관리사무실에서 점검을 하는 중에 오작동을 하기도 하고,

그냥 오작동을 한다고도 들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거의 99퍼센트의 확률로 화재경보기가 오작동하기에 입쥐민들은 사이렌이

울리든 말든 아예 신경을 끄고 산다. (실제로는 99퍼센트가 넘는다.)

가끔 5분 이상 미친 듯이 울리면, 그때는 불안한 마음이 살짝 드는지 다들 문을 열고

나와 복도 밖으로 목을 내밀고, 아파트 위아래를 훑어본 뒤, 아무 일 없으면

내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무표정으로 자기 집으로 문 닫고 들어간다.


주말이기에  수사반장 1958 최종회를 보면서 새벽 1시를 넘겨 혼자 치킨에 소주를 먹고 있었다.

새벽 1시쯤 화재 경보 사이렌이 1분가량 울렸다.

'에이, 밤에는 조심 좀 하지!'

라고 생각하면서 여느 때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30분 뒤, 창밖으로 어수선한 소리가 나서 비가 오나 하고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그야말로 

소방관 대대가 아파트 전체를 에워싸고 있었다. 술기운이 일순간에 싹 사라졌다.

문을 열고 복도 밖으로 목을 내밀어 아파트 전체를 쭈욱 훑어보니 불이나 연기가 나는 곳은

없었다. 게다가 중무장을 했지만, 소방관들이 천천히 걸어서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을 보고는

일단 안심이 되었다. 복도식 아파트라 복도가 꽤 긴 데, 그 와중에 복도에 나온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새벽 1시이기에 잠이 들었거나, 설령 들었어도 또 오작동이야? 하고 잠들었겠지.

내가 사는 아파트 동에 소방차가 에워싸니 순간적으로 얼마나 겁이 났던지..


행여나 하는 마음에 내가 사는 6층에서 9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가면서 어느 집에서 화재신고가

되었는지 확인하며 올라갔다. 화재신고가 된 곳은 9층의 한 집이었는데, 6층에서, 7층, 8층 복도에

나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화재 신고가 나면 경찰까지 출동하는지는 그날 처음 알았다.

술 냄새를 폴폴 풍기면서 주사 부리듯이,

"불났어요?"

술기운이 섞인 격앙된 목소리의 질문에 경찰은 술은 쳐 먹었어도 입주민이니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

단순 화재경보 오작동이니 안심하고 주무시라고...

소동은 새벽 2시가 못 되어 모두 마무리되었다.  우리 집에서도 소방차가 출동한 것은 나 밖에 몰랐다.


이건 뭐, 양치기 소년과 늑대도 아니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정말 불이 났으면 큰 일 날 뻔한 일이었다. 새벽 1시에, 사이렌 소리를 모두 다

믿지 않는 상황이니 대피가 늦어졌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 뒤로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혹은 내가 그 피해자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앞으로도 화재 경보 사이렌은

수시로 울릴 텐데, 이젠 오작동할 때마다 나가서 확인해야 하나? 거의 99퍼센트 오작동일 텐데..

하지만, 그렇게 무시하다가 단 한 번이라도 불이 나면, 바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수시로 오작동이 되어도 전과 같이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이 지경이 되고 난 다음에 후회해 봤자..



가끔, 몽에 이상 신호가 올 때가 있다.

몸에 이상 신호가 생겼을 때는 오작동된 화재경보와 달리 확실한 징후를 알리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걸 많은 사람들이 무시하려고 한다. 술, 담배, 고기를 줄이고 운동을 보다 더 많이 하면 되겠지

하는 식의 안일하게 여기기도 한다. 실제로 그렇게 실행하면 다행이지만, 잘 지키지도 않는다.

특히나, 나이 든 아저씨들은 병원 가는 거 무지하게 무서워하는 이들이 꽤 많다. 

자신의 무절제한 삶에 문제가 있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그 건강상의 징후들이 크게 문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일종의 화재경보 오작동 정도로 여기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만 믿고 싶은 마음도 있고.

그런 번의 신호들을 무시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서리를 맞을 수 있다.

심근경색 같이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뜨는 게 그런 경우일 것이다.

공공장소에 심장박동기가 괜히 비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나 매우 잘났다고 여기지만, 생물학적으로 매우 나약한 존재다.

불 앞에서는 속수무책이고, 서서히 자신이 죽어가는 것을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못난

존재이기도 하다. 화재경보가 되었든, 몸에서 알리는 신호든, 단 한 번도 소홀히 여기면 안 된다.

특히, 몽에서 울리는 경고 신호는 정직하다. 생활태도를 바꾸던,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던

그 신호를 함부로 소홀히 여기다 생각지도 못한 불행 앞에 선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전설 속에 등장하는 화타 같은 의사가 저렇게 많이 모여있어도 때를 놓치면 아무 소용없는 거 아닌가?


이미 불이 난 상태에서 달려오는 소방관은 고맙게도 불은 꺼주겠지만, 나를 살려준다는

보장은 없다. 마찬가지로 의사는 많지만, 죽어가는 이를 살리는 의사는 거의 없을 것이다.

정말로 불이 났었다면, 어떻게 됐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쩌면 이 순간에 내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인간으로 태어난 내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깊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팔자라고 하나? 생각해 보니,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자기 인생을 소홀히 여기지

않는 자가 그야말로 스스로 '팔자 좋게 ' 만든 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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