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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버 Jun 10. 2024

아줌마, 아버님, 어르신이라고 부르지 마!

호칭에 대한 딜레마들

"아줌마, 이거 오늘 마무리 지어야 해요. 좀 서둘러 주세요. 부탁드려요."

주부사원들 중 리더 격인 한 주부사원에게 말했다.

"................."

분명히 들었을 텐데, 못 들은 척하면서 지나가려 했다.

"아시겠죠? 아줌마. 부탁해요~"

"알았어요. 알았어!"

인상을 쓰며 뒤돌아 나를 쓱 째려본 뒤, 그 주부사원은 작업장으로 향했다.

그날 반드시 마무리 지어서 납품해야 했기에 재촉을 하기는 했지만, 최대한 부럽게

말을 했기에 난 왜 그렇게 불쾌해하는지 몰랐다.


새로 입사한 회사에서 아르바이트하는 40대 중반의 주부들을 관리하면서 재고관리하는

업무를 본 적이 있었다. 난 30대 초반이었기에 주부사원들을 최대한 정중하게 대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한 주부사원에게 '아줌마'라고 부른 것에 그 주부사원이 기분 나빠하며, 무리 속에

가서 불쾌함을 토로한 순간부터 난 40대 중반의 주부사원들의 '빌런'이 되고 말았다.

앞으로 업무 외에는 말을 걸지 말라는 경고도 들었다.

그게 새로 온 관리자를 길들이기 위함이었는지, 텃세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아줌마'로 불리는 것에 대해 불쾌함을 토로하는 것을 매우 정당하다고 느끼는 듯싶었다.

결국, 사과는 했지만, 그게 사과할 일이었을 까는 지금 생각해도 고개가 갸우뚱해지지만,

적어도 '아줌마'로 불리기 적정한 나이대의 여자들도 '아줌마'라는 단어를 매우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그 뒤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60살이 거의 다 된 여성에게 '아줌마'라고

불렀다가 비슷한 곤욕을 치른 뒤에는 내 입에서 '아줌마'라는 단어는 완전히 폐기되었다.


반대로, 상대가 부른 호칭 때문에 내가 불쾌했던 기억이 있었다.

동네 작은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간 적이 있다. 작은 도서관은 대체적으로 어린이 도서관의 성격을 띠고

있다. 성인도서도 있는데, 그 양이 적어 대부분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를 구비해 놓고

있다. 시립도서관에서 빌리기 힘든 책을 작은 도서관에서 종종 쉽게 대출할 수 있기에 가끔

들르곤 했다.

첫 방문이었기에 신원확인과 가입서를 작성하는 과정을 거쳤다.

"아버님, 신분증과 작성하신 서류 주세요."

말투와 태도는 상냥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30대 중반에 미혼이었던 내게 아버님이라니..

어린이 도서관이기에 성인이 오면 '아버님', '어머님' 뭐.. 그렇게 부르는 것 같았다.

"아버님, 접수는 다 됐고, 회원증은 일주일 뒤에..."

아버님이라는 소리가 거슬리는 가운데, 대출도 안 되니 약간 짜증스럽게 이유를 물었다.

"아버님, 대출은 회원증이 정식으로..."

도서관 직원은 여전히 상냥하게 나를 응대했지만, 난 그놈의 '아버님'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일주일 뒤에나 대출이 된다고 했지만, 그에 대해 불편한 감정이 들지 않았던 것은 '아버님'이라는

호칭에 내 모든 짜증이 집중되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거기서 대화가 끝나 다행이었다.

대화가 계속되었다면 아마도,

"그놈의 아버님 소리 좀 그만해요!'

라고 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얼마 전, 유튜브를 보다가 유시민이 노년층 독감 예방 접종 대상자에게 '어르신'이라고 부르는

것에 그야말로 격노(??)를 하는 모습을 봤다. 그냥 oo 씨라고 부르면 될 것을 왜 굳이

'어르신'이라고 부르면서 노인 취급을 하냐는 것이었다. 장난스럽게 화를 낸 것이었지만,

정말로 '어르신'이라고 불리는 게 속상하고, 싫고, 난 아직 젊다는 점을 어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호칭은 그 사람의 나이와 정체성을 부르는 사람이 정해서 부르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 드는 것을 싫어하고 젊어 보이고 싶어 한다. 실제로 나이가 들어도 내가 나이

먹었다는 게 실감 나지 않을 때가 있다. 노인이 되어도 마음은 젊었을 때와 다르지 않을 거다.

나도 나이를 먹었지만, 여전히 20대 때의 마음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도 늙어

죽기 직전까지도 비슷한 마음이겠지...

그렇기에 '아버님', 어르신'은 정중하고 친절한 호칭이지만, 저 호칭들 속에 스며있는 연로(年老)한

뉘앙스는 치명적이다. 정중하고 친절한 호칭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사용했다가는 상대도 상처 입고,

상처 입은 상대가 내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비참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한나 아렌트는 나치 학살의 주범인 아이히만의 결정적인 문제는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함으로써

'악의 평범성'에 빠졌다고 했다. 때로는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게 의도치 않게. 상대에게 치명타를 있다.

가끔은 선악의 의도보다는 무지(無知)가 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특히나, 호칭은 더욱 그렇다. 나처럼 아무 생각 없이 '아줌마'를 쓰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이고,

상대를 배려한다고 쓴 '아버님', '어르신'도 생각보다 신중하게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니, 나이 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모르는 나이 든 남자를 대우한답시고, 사업체가 있는지도

확인하지 않고,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그만큼 상대를 부르는 호칭이란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가장 무난한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애용하는 것은 아닐까?


시장에서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다가, 대파를 한참 들여다보니, 상인이 내게 말했다.

"사장님, 대파 오늘 들어온 거라 상태가 아주 좋아요."

"네, 사장님. 대파 한 단 주세요."

가게를 소유한 진짜 사장에게 적확한 호칭으로 대답했다.

난 쓸데없이 오버하며, 아무에게나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다.

나중에 다시 그 가게에 갔을 때, 내가 사장이라고 칭한 사람은 사장이 아니라 고용된 직원이었다.

호칭은 생각보다 꽤나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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