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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버 Aug 30. 2024

스마트폰으로 숨지 마세요.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는 과정은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꽤나 복잡했다.

친구 집에 전화를 했는데, 친구 부모님이 전화를 받는다.

"길동이 있어요? 바꿔주세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내 친구 바꿔달라는 식으로 전화를 했다가는 친구 부모님에게도 욕먹을 수 있다.

"너 누구야? 넌 인사도 할 줄 몰라? 예의 있게 다시 전화해!"

라고 뚝 끊으면, 다시 전화를 걸어서

“안녕하세요. 길동이 친구 00입니다. 길동이 전화 좀 바꿔주시겠어요?”

"응. 그래. 전화는 그렇게 해야지. 길동이 지금 집에 없다!"

라면서 툭 끊었다는 코미디 같은 이야기가 종종 전해지기도 했다.


사실, 대부분의 친구 부모님들은 전화를 해서는 인사 없이,

"길동이 있어요?'

라고 인사도 없이 전화해도 친절하게 바꾸어 주셨던 것은 아직 어리고, 미숙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안면이 있고 몇 번 전화를 통해 목소리가 익숙해지면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잘 지내셨어요?"

"응, 그래, 너도 잘 지냈지? 이번에 본시험 넌 몇 점이나 받았니?"

간혹 이런 곤란한 질문을 받을 때도 있지만, 공손함을 잃지 말고 잘 대답해야 한다.

"아, 저는 길동이보다 부족해서, 부족한 점수를 받았네요."

친구 부모님과 몇 번 통화하면 가끔 이런 여유도 생겨 답을 슬쩍 피해나가기도 한다.

반면, 수사받는 피의자처럼 묻는 대로 자신의 한심한 점수를 술술 불어대는 녀석들도

있었다.

"공부 열심히 해야지. 부모님 걱정하시겠다."

라며 전화를 건 친구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친구 부모님도 있었다.


어릴 때부터, 자기 핸드폰이 있었던 지금 세대가 듣기에는 끔찍한 장면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핸드폰이 있기 전의 세대는 저렇게 자기 의지와 상관없는 대화를 나누기도 하면서,

인간관계의 폭도 넓히고,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법을 익히기도 했다.

그리고, 고약한 친구 부모님을 만났을 때는 관계의 고통에 대한 내성을 키우면서 단단한 사람이

되는 과정을 거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공동체 안에서 소통은 구조화되어 있었고, 그 구조 안에서

소통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인간관계도 다양하게 맺으면서 관계의 폭을 넓혀가며 성장하고, 성인이 되었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지, 10년이 훌쩍 넘어서면서 이젠 모든 사람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노인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힘들다고 하는 말도, 길거리를 돌아다녀 보면, 정말일까 싶을 정도로 노인들도

젊은이들 못지않게 스마트폰에 열중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집,

길, 버스에서 모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스마트폰은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은 걸까?     


스마트폰은 사적인 개인도구지만, 그 지향점은 넓은 세상을 향하고 있다.

공간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든 자신의 주머니에서 꺼내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넓은

세상을 접할 수 있기에 심지어 폭력, 범죄, 섹스에 대한 정보마저도 무한정 접할 수 있으면서도,

나 자신은 노출시키지 않는다. 철저히 사적인 영역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경계 없이 세상의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치명적 매력에 빠진 사람들은 이젠 무료할 틈을 느낄 틈조차 없다.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이런 매력 때문에 세상은 점차 소통이 부족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을 세상에서 감추려 한다. 무슨 일이 생기면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할까를

생각하지 않고, 일단 스마트폰을 꺼낸다. 그리고, 상당수의 어려움은 해결된다.

유튜브 같은 경우에는 전문지식, 경험 없이 그대로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문제 갸 해결된다.

그러니, 사람들은 더욱더 스마트폰에 스스로 가두려 한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 현상이 가속화되니, 얼굴 보고 대화하는 것은 물론, 육성 통화도 부담스러워한다.

가까운 사이에서도 좀 민감하고 부담스러운 이야기면,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그런 것을 대화라고 하기 힘들다. 우리가 대화를 할 때, 육성으로 하는

대화는 사실상 10퍼센트도 안 된다는 심리학 이론이 있다. 대화를 할 때, 얼굴 표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90퍼센트라고 한다.

"밥 잘 먹었어?"

라는 말도 어떤 표정과 뉘앙스로 말하느냐에 따라 걱정, 비아냥, 조롱의 의미로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분명해진다.


스마트폰이 편해도, 인생에 있어 인간관계의 소중한 가치는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만나서 대화하고 상대의 웃음을 보고, 때로는 터치를 하고 손을 잡아주는 것에서 우리는

위안을 느낀다. 정말 괜찮은 이성을 만났는데, 카톡이나 문자나 날리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인간이 소통에서 느끼는 감정은 다 그런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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