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돌아가시고 2년 후 조카가 태어났다. 동생과 올케는 10년을 연애하고 결혼한 동갑내기 부부다. 둘은 아이가 없어도 평생 재밌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며 자녀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그런 그들에게 결혼 5년 만에 선물처럼 조카가 찾아왔다. 동생은 아이로 인한 행복을 경험하면서 둘일 때보다 훨씬 큰 즐거움을 자랑한다.
조카는 나에게도 아주 특별하다. 워낙 아기를 좋아해 사촌동생들이 태어날 때마다 누구보다 기뻐했고, 명절 때 내 역할은 늘 동생들 돌보는 일이었다. 하물며 하나밖에 없는 동생의 딸이자 유일한 조카니 얼마나 예쁘고 소중할까.
조카가 태어난 날 퇴근하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한참을 들여다보며 감격스러워했다. 그때부터 동생네 방문하는 일이 잦아졌고 올케와의 관계도 더 좋아졌다. 조카는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고 생각한 내 옆에 가족이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줬다.
존재 자체만으로 내 삶의 큰 기쁨인데 이 아이는 신기하리만치 고모에게 사랑을 줬다. 만날 때마다 최고조의 기분으로 반가움을 표현했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땐 “이건 고모 꺼”라며 언제 올지도 모르는 내 몫을 챙기곤 했다. 선물한 옷이나 신발을 착용할 땐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고모가 사줬어요”라고 말하고 다니는 사랑 넘치는 아이다.
눈치가 빠르고 기억력도 좋아서 지나가듯이 한 말을 어느 날 문득 내뱉어 놀라게 할 때도 많았다. 17개월 무렵 손가락의 반지에 관심을 갖기에 “할머니가 준 거야”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석 달이 지나 만났을 때 조카가 내 반지를 가리키며 “할머니, 할머니”라고 하는 것이다. 우린 모두 일제히 귀를 의심했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 아이가 내 말에 관심을 갖고 기억한 것이 무척 고마웠다.
이후 동생은 종종 전화를 해 조카랑 둘이 있을 때 이러이러한 얘기를 한 적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모두 내가 해준 얘기였다. 떨어져 있어도 고모를 생각해주는 조카! 꼬박꼬박 내가 조카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동생 또한 고마웠다. 우리는 그 아이 덕분에 예전의 수다스러운 남매로 돌아갔다. 올케는 조카가 나를 챙길 때마다 자신의 언니인 이모한테는 이렇게까지 안 한다고 신기해하며 “핏줄이 당기나보다” 보탰다.
우리는 조카가 예쁜 만큼 아빠가 이 아이를 만나지 못하고 눈 감은 게 속상하고 아쉽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우리끼리 보기 아까운 말과 행동을 할 땐 은연중에 “이런 모습을 아빠가 보셨어야 하는데”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동생부부에게도 나에게도 너무나 특별한 아이라서 어쩌면 아빠가 선물로 보내준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조카와 동생, 올케에게 더욱 듬직하고 너그러운 어른이 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