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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 미식가 Jan 23. 2023

부부커피 빵으로 빵빵한 하루

희로애락 음식사 '락'

토요일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눈을 떴다. 오늘은 어떤 달콤한 빵들이 나를 기다릴까 마음이 두근거린다. 이불 속에 파묻힌 채로 부부커피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오늘의 메뉴를 빠르게 스캔해보니 “어? 오늘은 마늘빵이 아니라 마늘바게트네!” 크림치즈가 들어간 마늘빵 대신 마늘소스가 듬뿍 발라진 마늘바게트가 나온다는 사실 하나에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정말 소소한 거 하나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들뜬 마음으로 평일동안 어지럽혀 놓은 집을 하나둘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빵집 오픈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아! 늦게 가면 빵 다 팔리고 없는데…!! ㅠㅠ”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편의점에 들러 부부커피 사장님들께 드릴 비타 500 두 병을 서둘러 산 후 발걸음을 재촉했다. 빵집 앞에 도착하니 아직도 줄이 길다. 엄마 손을 꼭 붙잡은 아이, 똑같은 슬리퍼를 신은 다정한 커플, 모자를 푹 눌러쓴 여자분까지. 세상에 빵에 진심인 사람이 이렇게 많다.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줄을 섰다.


유리창 너머로 빵 진열대를 바라보다 보니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빵집 문을 열고 들어가자 포근한 빵 내음이 몸을 감싸온다. ‘아. 이건 좀 반칙이다.’ 나는 분명 마늘바게트만 사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어느 새 잠봉뵈르, 크랜베리 스콘, 아몬드 크루아상, 초코빵까지 주문해버렸다. 아무리 미리 생각하고 와도 늘 이런 식이다. 역시 아는 맛이 제일 무섭다.


빵과 커피가 준비되기를 기다리며 잠시 가게 안을 둘러보며 여유를 가져본다. 자그만 공간이 정말 알차게 꾸며져 있다. 손님들이 정성껏 쓴 엽서와 사장님들의 여행 사진이 붙어있는 수납장. 부부커피 일러스트 포스터로 채워진 벽면. 아기자기한 소품을 파는 진열대. 유기농 밀가루 포대. 여기가 만약 집이었다면 오늘의 집 메인에 올라가지 않았을까?


그렇게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다 보니 빵과 커피가 준비되었다. 커다란 빵 봉투를 품에 안아 들며 아까 산 비타 500을 커피 사장님께 건네자 자꾸 이런 거 주시면 안 된다고 손사래를 치신다. 저번에 빨미까레 주신 답례라고 하자 빵 사장님이 오늘은 생크림 스콘 넣어드렸다고 말씀해주셨다. 공짜 좋아하면 머리 벗겨진다는데 내 머리숱은 아직 빽빽하고, 공짜로 먹는 빵은 언제나 최고다.

'주말 행복하게 보내세요!'라는 훈훈한 인사와 함께 빵집 문을 나서니 날씨가 너무 좋다. 빵 먹고 따릉이 좀 타야겠다. 먹은 만큼 운동해야 또 먹을 수 있다. 이렇게 말하니 주식이 빵 같지만, 삼겹살도 샐러드도 물회도 잘 먹는다.


집에 도착해 오늘 사 온 빵들을 펼쳐 놓고 행복을 잠시 만끽해본다. 사진도 몇 장 찍어 나의 빵 사랑을 아는 친구들에게 공유도 해준다. 사실 공유보다는 자랑이 목적이다. 내 주변 사람들은 이미 이 집 빵을 한 번씩 다 먹어봤다. 내가 '맛있으니 한 번만 잡숴봐'하면서 빵을 나눠줬기 때문이다. 애증의 관계인 회사 사람들도 이 집 빵 맛을 알고 있으니 이 정도면 말 다한 거다.


이제 빵 자랑도 끝났으니 다시 잠옷으로 옷을 빠르게 갈아입고, 요즘 푹 빠져있는 출장 십오야 영상을 서둘러 재생해본다. 편한 옷, 재미있는 영상, 맛있는 빵. 3박자가 아주 완벽하다. 이게 바로 주말의 맛이지.

영상을 보면서 평일 동안 부족했던 웃음도 몰아서 웃어본다. 잠만 몰아서 자라는 법은 없으니까. 뻥! 뚫려있던 마음을 쫀득하고 부드러운 빵들이 찰떡같이 쫀쫀하게 메꿔준다. 이 자리는 아침마다 사당-강남 방향 2호선에서 잃어버린 인류애. 저 자리는 샷 추가한 아바라를 사발로 마셔도 돌아오지 않는 제정신. 그 이외에도 수정 중인데 또 다른 수정사항을 안고 날아든 메일에 고갈된 인내심과 오늘도 가정을 홀로 지키며 고군분투하는 1인 가구 가장의 고단함까지.


총성 없는 전쟁터에서 여기저기 뚫려버린 마음을 폭신한 빵 하나로 메꿀 수 있으니 꽤나 합리적인 소비이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오늘도 뻥 뚫려버린 마음을 속까지 꽉 차오른 빵으로 또 한 번 빵빵하게 만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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