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기하는 늑대 Apr 07. 2024

15만 원

https://groro.co.kr/story/9359



 2024년 3월 31일에 이사를 하기로 했다. 들어가 살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3월 15일에 나가기로 했고 우리는 보름 정도 인테리어 공사를 한 뒤 공사 마무리와 동시에 3월 29일에 잔금을 치르고 이틀 뒤인 31일에 이사를 가서 4월 1일부터 거짓말 같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했다.



 누가 그랬던가? 핵주먹 혹은 핵이빨 마이크 타이슨이 그랬던가? 그랬다고 카더라로 떠도는 말인가? 여하튼 ‘누구나 처 맞기 전 까진 그럴듯한 계획이 있다고...’ 그랬다. 그럴듯했다. 말末일에 들어가니 관리비나 여타 공과금 등등 계산하기도 편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달의 마지막 날에 모든 걸 정리하고 새로운 달을 새로운 집에서 시작하는 그 느낌이 괜찮을 거 같았다.



 기본적인 타임라인이 잡힌 뒤 각 시점에 맞는 것들을 준비해야 했다. 우선 우리가 잡은 이사 일에 우리 마음대로 이사를 할 순 없었다. 처음엔 두 명으로 시작했으나 한 명이 늘어난 세 식구의 짐은 적지도 많지도 않았지만 그걸 전문가들의 손길 없이 우리끼리 이고 지고 나를 수는 없었다.



 생애 처음으로 제대로 된 포장이사를 부르기로 했다. 다른 글에서 여러 번 밝혔듯이 어린 시절엔 늘 언제나 항상 셋방을 전전긍긍했기 때문에 짐이 많지도 않았고 많아도 비싼 포장이사를 부를 수는 없었다. 지금은 그 표현조차 흔치 않지만 그때는 다들 ‘용달’이라는 걸 불러서 이사를 했다.



 포장이사와 맥락은 다를 바가 없지만 대단한 트럭이 오는 게 아니라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1톤 트럭이 와서 싸 놓은 짐을 용달차 아저씨와 인부 한 두어 명이 크지 않은 1톤 트럭에 꽁꽁 싸매고 이사를 했다.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 들어올 때는 아내나 나나 기존에 살던 집에서 거의 몸만 빠져나왔고 커다란 가구나 가전 등은 신혼살림으로 새롭게 주문해 아예 지금 집에서 받았기 때문에 ‘이사’라는 행위를 할 필요가 없었다.



 여하튼 이 많은 짐을 어쩌나(우리 부부는 나름 미니멀한 삶을 추구한다. 그럼에도 사람이 살면서 생기는 짐은 생각보다 많다.)하면서도 돈을 주면 포장이사라고 하는 아주 좋은 서비스를 활용해 귀중품 정도만 챙기면 거의 몸만 왔다 갔다 해도 된다는 주변의 말을 듣고 포장이사를 하기로 했다.



 이사철이라 할 수 있는 꽃 피는 3월 말에 이사를 계획하고 있었기에 3월 초에 포장이사 견적을 뽑기 위해 두 곳의 업체에 의뢰를 했다. 마침 같은 날인가 연이어 이틀인가 두 업체와 견적 일정을 잡았다. 결과론적으로 이야기하면 한쪽은 125만 원, 다른 한쪽은 120만 원이 든다고 했다.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이 다만 5만 원이라도 더 저렴한 곳을 선택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견적을 뽑기 위해 방문한 두 업체의 사장님 모두 전문가적인 포스가 나름 느껴졌다. 왜 그런 느낌 있지 않은가? 크게 뭐 대단한 거 하는 거처럼 말하거나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서 경력에 의해 자연스레 묻어나는 대충대충 보는 거 같지만 봐야 될 것들은 다 보고 놓치지 않는 그런 느낌. 그래서 그랬는지 분명히 5만 원 차이가 났음에도 선택이 어려웠다.



 아내와 나 그리고 장모님까지 같이 봤는데 셋의 의견 역시 비슷했다. ‘뭐 잘 모르겠어.’, ‘두 군데 다 괜찮은 거 같네.’, ‘그냥 아무 데나 해.’ 우린 결국 예상을 뒤엎고 5만 원이 더 비싼 곳을 선택했다. 이유는 딱 하나 5만 원이 더 비싼 업체에서 방문한 분이 나이가 조금 더 있었다. 즉, 그 나이에 의한 경력이 조금이라도 나은 결과를 줄 거 같은 소소한 신뢰가 약간 더 갔다.



 물론 다른 쪽에서 방문한 분이 별로였다는 건 절대 아니다. 그저 상대적으로... 마침 결정을 하고 나는 일이 있어 잠깐 밖으로 나왔는데 5만 원이 더 비싼 업체의 사장님이 자기 차 앞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있었는데 차가 좋았다. 속물 같은 생각일 수 있지만 이 자본주의 세상은 또 보여 주는 것이 많은 걸 이야기해 주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에 좋은 차를 보고 아~ 돈 많이 버셨구나, 일 잘하셨겠구나, 선택 나름 잘한 거 같다. 이렇게 합리화했다.



 그렇게 포장이사 업체를 결정하고 계약금 15만 원을 보냈다. 이제 인테리어 견적을 뽑을 차례였다. 먼저 살던 사람들이 예정보다 며칠 일찍 이사를 갔다고 해서 견적 뽑는 일을 조금 더 앞당기려 했는데 인테리어 결정 담당인 아내가 시간이 맞지 않아 원래대로 3월 15일에 인테리어 사장님과 함께 들어갔다.



 여기저기 생각한 것들과 보면서 필요한 것들을 체크해 나가기 시작했다. 도배장판을 이런 색으로 해 주시고 여기는 페인트, 저기는 타일 새로 해 주시고 등등등... 그래서 사장님 전에 말씀하셨던 것처럼 보름 정도면 되지요? 하고 물었다. 아, 이 정도는 보름 안에 힘들겠는데요... 아니 사장님, 전에는 보름 정도면 되신다고 해서. 그때야 어머님께서(장모님께서 아시는 분이다.) 도배장판 정도에 소소한 거 조금 한다고 하셨으니까 그렇게 말씀드린 건데 이 정도면 보름 같고 힘들어요...



 아... 이미 일정을 다 잡았는데 잔금을 치는 날과 특히 이사를 오는 날을 다 정했는데 이거 어쩌지. 집이 있는 가족이 웃기지도 않게 짐을 끌어안고 길에 나 안게 생겨버렸다. 짐을 맡아 주는 경우도 있고 호텔 등에서 머물면 되는데 문제는 다 돈이란 말이다! 안 그래도 없는 돈 이거 저거 끌어서 매수 금액과 인테리어 비용 등을 겨우 짜 내고 있는 중이라 돈 만원이 아쉬운 시점인데 그런 걸로 돈을 쓰기도 싫었고 쓸 돈도 없었다.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일단 계약을 최종 마무리 짓는 잔금 일은 바꾸기가 힘들고 바꿀 필요도 없었다. 애초에도 최종 계약일 이틀 후에 이사를 들어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이사 일을 바꿔야 되는 것과 동시에 우리가 살고 있는 집에 들어 올 다음 사람이 우리가 이사를 가고 4월 1일에 들어오기로 한 것이다.



 이 두 가지 사안을 시급하게 바꿔야 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어느 쪽이나 상대가 따지고 들면 계약위반인 상황이었다. 이사 일은 업체를 바꿀 건 아니었기 때문에 어떻게 저떻게 말을 잘하고 사정을 봐 달라고 하면 될 거 같았는데 우리 집으로 들어 올 사람이 어떨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방법은 없었다. 그저 상황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고 부탁하는 수밖에... 다행히도 상황을 설명하고 부탁을 하니 알았다고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다만 자기도 서울에 세를 들어 살고 있는데 3월까지만 살고 내려오려고 한 건데 이렇게 되면 조금 더 살아야 되니 그 정도의 월세를 조금 빼달라는 거였다. 솔직히 정말 그렇게 서울에서 우리가 부탁한 기간만큼 더 사는 건지 살짝 의심스럽긴 했다. 왜냐하면 처음 계약 당시 우리가 29일에 계약을 마무리하고 31일에 이사를 간다고 하니 그럼 자기도 29일이나 30일쯤에 내려와 청주에 있는 부모님 집에 있다가 들어온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쉬운 건 우리 쪽이고 그렇게 미룰 수 없다고 해 버리면 이사 짐을 맡겨 둬야 하는 비용과 며칠간 머무를 숙박비가 더 나갈 거 같았다. 그래서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우리가 미룬 기간 동안의 월세를 주기로 했다.



 상대적으로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고 이제 이사 일을 바꾸기 위해 전화를 했다. 아내가 계약서를 썼기 때문에 아내가 전화를 했다. 안 받았다. 그럴 수 있지. 다시 했다. 안 받았다. 이사 시즌이라 그런가? 바쁘네. 그래, 지금 다른 집 짐 나르고 있을지도 몰라. 조금 이따 다시 전화하자. 다시 했다. 역시 안 받았다. 슬슬 이게 뭐지 싶었다. 아니 계약을 한 사람이 전화를 하는데 바빠서 못 받아도 서너 번 하면 일 마치고 전화든 문자든 뭐가 와야 되는 거 아니야? 우리 전화번호를 저장을 안 했나? 안 할 수도 있지. 업체가 모든 고객의 전화번호를 바로바로 저장하는 건 아닐 테니. 아니 그래도 받아야지! 왜! 업체를 운영하는 사람이잖아. 늘 언제나 항상 아는 번호보단 모르는 번호로 더 많은 전화를 받을 텐데. 그리고 지금 이사 시즌인데 전화를 받아야지 아내는 급기야 문자를 넣었다. 사장님, 이만저만해서 일정을 조금 바꿔야 하는데 계약금을 더 내야 하는 건가요? 아니면 그냥 일정 변경만 가능한 건가요? 뭐 이렇게 보냈다. 답이 오겠지 싶었다. 오지 않았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계획이 틀어져 예상치 못한 비용이 발생하고 있는 시점이라 기분이 영 별로였던 터다. 더해서 이사 시즌도 시즌이지만 최근 이사를 계획하는 동네에 신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4월에 막 입주를 한다고 해서 이사 일을 잡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 아쉬운 부탁을 해야 되는 상황 자체가 은근히 짜증인데 그 마저도 진행이 되질 않았다. 결국 나도 전화를 해 보기로 했다. 안 받았다. 계속했다. 받을 때까지 하겠다는 의지로 했다. 안 받았다.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이 인간이 돈 벌기 싫은가? 견적을 뽑으러 온 날 받았던 좋은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욕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정도로 전화를 했다. 안 받았다. 문자를 보냈다. 답이 없었다. 이 양반이 진짜 정말! 해 보자는 건가? 업체 주소를 확인하고 찾아갔다. 주소도 맞지 않는다. 순간 사기 당했나 싶었다. 아니 그런데 이상했다. 꼴랑 15만 원 먹겠다고 이 난리를 친다고? 전화를 백날 안 받아봐야 번호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계약금을 보낸 계좌도 있는데 사기를 친다고? 사기를 치는 놈들이야 똑똑하니 뭐 다른 방법이 있나 싶었다. 그래도 이상했다. 아니 겨우 15만 원이잖아... 10명에게 사기를 처 봐야 150만 원인데 이걸 한다고 100명한테 처 봐야 1500만 원인데 이건 도저히 사기를 칠 문제가 아니었다. 100명한테 처서 1500만 원정도 챙겨야 그래도 사기다운 거지...(말이 그렇다는 거다.) 아니 이것도 웃긴 게 100명, 그러니까 100건의 이사 일정을 차라리 진행하면 10배나 더 많은 돈이 들어오는데(물론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지만) 이건 뭔가 아닌 거 같았다. 결국 별수 없이 처음 견적을 뽑기 위해 불렀던 다른 업체에 연락해 겨우 일정을 잡았다. 그리고 아내에게 여기는 나중에 이사를 다 완료하고 경찰에 신고를 하든 소비자 고발센터에 문의를 해 보든 하자 하면서 다른 일정을 진행시켰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잊을 만하면 한 두어 번 전화를 계속했다. 왜냐하면 이 난리를 쳤음에도 불구하고 이 양반이 아무렇지 않게 3월 31일에 나타나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확인이 필요했다.



 하지만 다행인지(?) 전화를 계속 받지 않았다. 어디를 놀러 갔나 싶다가도 아니! 시즌이라면서! 어딜 놀러 가! 시즌에 즉, 대목에 놀러 가는 건 장사꾼이 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었다. 문득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이 누그러지면서 어디가 아픈가? 정말 뭐지 싶었다. 돈도 돈이지만 일정이 꼬여 짜증이 난 것도 난 거지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컸다.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라도 나중에 꼭 어떠한 형식으로든 확인하자 다짐하면서 인테리어 공사, 대출, 잔금 일정 등을 차근차근 진행시켜 나갔다.



 그렇게 최초 예정일보다 일주일 정도가 밀려 인테리어는 4월 4일, 어제 끝났고 입주 청소와 이사 일이 부득이하게 겹치면서 내일 4월 6일에 모든 것이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일정 막바지에 접어들어 인테리어 마감을 확인하느라 다른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 와중에 인테리어 기본 시공이 끝나는 날이었던 4월 4일 아내가 이사 일정을 확인하면서 혹시 동종업계니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물어볼까 말까 하다가 물어봤다. 혹시 A업체 아시냐고? 그 업체와 처음 계약을 했는데 이만저만 상황이 생겨 이렇게 사장님과 하게 됐습니다 하고 물으니...



 헉, 그 사이에 A업체 사장님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고..... 너무 놀라운 일이었다. 3월 초에 이사 견적을 뽑기 위해 우리 집에 왔을 때 만에도 정정하다는 말을 하기엔 아직 젊으신 나이인 많이 잡아 봐야 60대 초중반 정도로 보였다. 딱히 머리 염색을 하지 않으신 그래서 어쩌면 더 젊으셨을... 오랜 시간 동안 이사 일을 하셔서 그런 건지 보이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몸이 다부져 보였는데...



 우리 집에 찾아온 이후 열흘 안쪽으로 변을 당하신 거였다. 정말 놀라웠고 내가 이런 감정을 느껴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황망했다. 그러면 그렇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었단 말이야. 정말 무슨 일이 생기지 않고서야 시즌 중에 그것도 이미 계약을 한 사람 전화를 그렇게 안 받는다고? 사기는 아니야, 확인은 해 봐야겠지만 이거 뭐 있어 싶었는데 그게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라니...



 사람 일 모르는 거라고 하는데 내가 우선 생각보다 빠르게 집을 바꿔 이사를 한 것도 예상 밖의 일이고 그 과정 속에서 투기 목적은 아니었지만 여하튼 많은 대출을 받은 것도 예상 밖의 일이고 나중에 이사를 하면 당연히 포장이사를 부르고 인테리어도 해야지 했지만 그게 현실이 되니 이게 맞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혼돈의 지평선(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에서 지평선이란 단어를 써 보고 싶었다.) 너머 어디 즈음 처음 포장이사를 계약한 사장님의 심장마비는 정말 진짜 완전 생각지도 못한 그야말로 예상 밖의 일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아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