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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살이 된 꺼뭉이

by 이야기하는 늑대

https://groro.co.kr/story/15962



기억이 맞다면 딱 작년 이맘때였다. 아직은 씨앗이었던 물론 싹은 빼꼼히 나왔지만 꺼뭉이를 작년 8월 초에 심었다. 꺼뭉이와 다르게 싹은 나오지 않았던 다른 씨앗도 하나 같이 심었는데 그 씨앗은 결국 흙이 됐다. 어쩌면 꺼뭉이의 양분이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1년을 자라 온 꺼뭉이가 이제 꽤 커졌다. 커 가는 과정 속에서 크기에 맞게 분갈이도 한 세 번 정도는 한 거 같다. 화분까지 포함하면 1미터가 조금 안 되는 거 같다. 다음 분갈이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만약 그런 시기가 온다면 조금 큰 분갈이가 될 거 같다. 그쯤 되면 실내에 두기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그 걱정은 그때 가서 하기로 하고...



지난주에 5일간 휴가로 집을 비운 게 꺼뭉이를 키우면서 가장 오랜 시간 동안 혼자 둔 경우였다. 하루 이틀 비운 적은 많은데 어차피 물을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주고 있기 때문에 하루 이틀 비운 경우엔 그리 큰 걱정이 되지 않았다. 다만 지난주는 비운 날의 수도 수지만 너무 더워서 그게 걱정이었다. 베란다가 꺼뭉이 자리인데 너무 더울까 싶어 떠다는 날 물을 잔뜩 주고 거실에 옮겨 뒀었다.



해줄 수 있는 게 고작 그 정도였음에도 휴가에서 돌아온 날 꺼뭉이는 아무렇지 않게 건강한 모습으로 맞아 줬다. 오히려 휴가 떠나기 전 새로 나오려 했던 잎이 이제 왔냐고 나 건강하게 나왔다고 인사해 줬다. 다시 베란다로 자리를 잡아 주고 많이 덥지 않았냐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물을 잔뜩 줬다.



새로 나온 잎도 잎이지만 더불어 공중뿌리라는 게 꼭 지지대처럼 땅에 다리를 박았다. 그것도 두 뿌리나 땅을 딱 박고 내가 박아 둔 엉성한 지지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역시 생명은 무섭다. 공중뿌리라는 게 다섯 개 나왔는데 다른 두 개는 혹처럼 들러붙어 딱히 의미가 없어 보이고 또 하나는 자기도 줄기인양 위로 뻗었다.



잎은 다해서 총 9장이 나와 있다. 나온 순서가 늦을수록 잎의 크기가 커지는 게 신기했다. 제일 먼저 나왔던 잎은 첫째지만 크기는 가장 작은 막내 같다. 그러니까 위로 올라갈수록 잎이 커지니 태생적으로 불안한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공중뿌리로 만회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봤다.



이렇게만 잘 커준다면 대형 카페 등에서 볼 수 있는 한 구석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기둥 같은 모습으로 자랄 수도 있을 거 같다. 정말 그렇게 되면 이게 또 어쩌면 처치곤란일 수도 있는데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만큼 쓸데없는 건 없으니 일단 더운 여름 잘 버티라고 영양제나 다시 줘야 할 거 같다. 사실 더운 지방이 고향인 놈이라 우리 여름 더위가 크리 큰 걱정은 안 되지만 마음이 또 그렇지가 않은 게 인지상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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