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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by 이야기하는 늑대

https://groro.co.kr/story/16449



추석답게 집에 선물이 안 들어왔다. 추석답게 집에 선물이 안 들어왔다니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우리 집은 선물이 많이 들어오는 그런 집이 아니다. 아! 여기서 우리 집은 내가 가장으로 있는 그러니까 아내와 나 그리고 우리 딸이 한 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는 집을 이야기한다.



나는 소위 정규직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그건 내 아내도 마찬가지다. 아내와 난 둘 모두 특정 회사와 위탁 계약을 맺은 특수 고용직이다. 특수 고용직이란 게 정규직도 아니고 비정규직도 아닌 게 조금 애매모호하다. 고용의 형태는 아니지만 고용의 형태인 거 같은... 아, 물론 이런 이도저도 아닌 고용의 형태를 사회적 관점에서 이야기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는, 괜찮은 거 같으면서 별로인, 뭐 적당히 활용만 잘하면 나름...



그래서 그런지 특수 고용의 형태로 노동(아마 법적으론 노동이란 단어도 쓰면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다. 뭐 여하튼 대충 그런 의미로다가.)을 제공하는 쪽이나 사용하는 쪽 모두 연결고리가 다소 약하다. 애초에 그렇게 약한 연결 고리인 고용인 듯 아닌 듯 한 관계 설정이 목적이기도 할 것이다.



뭐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인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러한 이유로 명절이라고 이렇다 할 선물을 회사에서 주지도 않고 나 역시 딱히 바라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여하튼 일정 관계를 맺고 일을 하고 있기에 작게 뭐라도 주기는 한다. 이번에 내가 받은 건 홍삼 절편이고 아내가 받은 건 한과 세트였다.



더불어 내가 삶을 그렇게 유하고 넓게 살지 않아서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거나 받을 만한 이유가 마땅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아! 그러고 보니 이제 막 생각이 났는데 올 늦봄에 같이 일 좀 하자는 거 심사숙고 끝에 마다치 않고 같이 일을 시작한 게 있는데 그 일을 제안한 지인이 선물 하나를 챙겨주긴 했다. 뭘 자주 받질 않으니 누가 뭘 줘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물론 이번에 특별히 선물을 준 그 지인에게 고마운 마음이 없다는 건 아니다.



명절이라고 딱히 선물을 받을 일도 없는데 굳이 선물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딸아이가 유치원에서 받아오는 선물이 너무 귀여워서다. 작년 3월부터 5세 반을 시작으로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데 지난해 추석엔 ‘말은 좀 안 듣지만 그래도 귀여운 다섯 쌀’이라는 이름의 햅쌀 선물을 보냈고 올해 설엔 복조리에 잡곡이 들어간 굴비 모양을 엮어 보냈다. 그리고 이번 추석에 동그란 보름달을 8개나, 그러니까 아는 사람은 알고 먹어 보기도 한 그 보름달 빵을 보냈다.



이런 아이디어를 내고 선물 하나하나를 곱게 포장했을 선생님들을 생각하니 선생님들이지만 귀엽고 감사한 마음과 더불어 유치원다운 참 찰떡인 선물을 잘 보내주시는 구나하면서 저 보름달을 언제 따다 먹을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이번 추석은 충분히 풍족할 거 같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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