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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 Nov 06. 2024

삶은 파스타를 먹어 치우는 일

  ***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집게로 익어가는 파스타 면을 휘휘 젓던 나는 어김없이(!) 낭패감에 빠졌다.


  끓는 물에 처음 면을 넣을 때만 해도 적정량이라 생각했건만. 어째 면이 익을수록 부피가 불어나더니 이내 양조절에 실패했음을 직감 아니 직관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매번 왜 이런 걸까?


  국수나 파스타면을 끓일 때면 늘 이런 식이니 말이다. 나라는 사람은 이렇듯 참으로 시시한 것에서조차 자괴감을 느끼곤 하는 것이다.





  ***

  면을 500원짜리 동전크기만큼 쥐면
그게 1인분입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런 말은 통하지 않는다. 최소한 나에겐 그렇다. 설사 그게 허튼소리가 아니라 하더라도 어디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통할 계산법이겠지.


  그렇다고 해도 나도 참 나다. 이 나이쯤 됐으면, 내 몫의 파스타 면 정도는 쥘 줄 알아야 하지 않느냔 말이다.


  <이만큼이면 될까?> 했다가는 모자란 것 같아서 조금 더 넣게 된다.


  처음 넣은 양이 정확한 거고, 두 번째 투입까지가 마지노 선이다. 그래, 돌이켜보면 그랬었다.


  다음번엔 꼭 그렇게 해야지!


  ..라는 하릴없는 결심을 몇 번이나 했었던가.


  문제는 애석하게도 내가 그렇게 현명한 동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노파심에 한 번 더 넣은 한 줌이 모든 걸 망치곤 했다.




  ***


  시작은 어디서부터였을까?


  어쩌다 보니 취직을 하고, 결혼도 했고, 딸까지 낳았다.


  작년엔 10년 넘게 인정받으며 잘 나가던 회사에서 말로만 듣던 번아웃을 만난 탓에 꿈에도 생각 못한 휴직을 했다.


  올해 복직을 한 뒤엔 나아질까 했더니 이번엔 괴팍한 부서장을 만나고 말았다. 악몽 같은 몇 달을 보내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연말이 코 앞.


  왜 이렇게까지 된 것인지 그 연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나도, 이 파스타도.




  ***

  버티다 보니
시간이 가긴 하는구나.


  말도 안 되는 양의 파스타를 눈앞에 둔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는 감개무량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감당 못할 회사일 때문에 매일 불면과 우울증에 시달리던 나였다. 기왕 잠 못 잘 바엔 운동이라도 해야겠다고 새벽 수영 강습을 등록했던 내가 지금은?


  내 앞에 놓인 파스타 양이 많고 적고 따위를 고민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결연하게 포크를 집어 들었다. 어찌 됐든 간에 내게 주어진 몫은 해치워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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