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툰 Nov 11. 2024

네 얼어죽을 사정 따위 듣고 싶지 않아

  ***


  서툰 씨는 그 사람을
마음껏 미워하지도 못하고 있네요.


  심리상담사는 딱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그렇게 말했었다.


  사실 작년에 날 휴직까지 나갈 수밖에 없도록 몰아붙인 사람은 따로 있었다. 표면상 이유는 <번 아웃>이었지만, 멀쩡하던 사람이 혼자 자연발화라도 할 리가 있나. 


  요컨대 '누가 네 에너지를 그렇게 고갈시켰는가?' 하고 묻는다면 이렇게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범인은 바로 팀장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심리상담사 앞에서 '그에게도 어떤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 두둔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참 병신이지, 뭔가.




  ***


  팀장은 왜 다들 그 모양일까?


  나는 올해 복직을 한 뒤, 부서 이동을 했다. 처음엔 마치 신입사원이 된 것처럼 두근거렸다. 물론 낯선 환경에 대한 불안함이 더 컸지만 기대감도 있었다.


  그래, 새로운 부서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과 다시 한번 잘해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대단한 걸 바란 것은 아니었다. 


  '감당할 수 있는 일을 맡아서 팀원들과 큰 탈없이 지내는 것.'


  오직 그것이 내가 원한 전부였다. 그러나 그조차도 너무나 큰 바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번에 만난 팀장도 자기 고집과 편견으로 똘똘 뭉친 '또 다른 타입의 빌런'일뿐이었던 것이다.





  ***

  

  다니는 곳엔
그런 사람들 밖에 없으세요?

  내 얘기를 들어주던 정신과 의사는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2년 넘게 상담을 하며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던 의사도 이번에는 답답하다는 듯한 어조였다.


  하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회사에 그렇게 악당들만 있지는 않은데. 지난 세월 동안 내게 주어진 인복을 다 써버린 것일까?


  마음 같아선 아내가 얘기해 준 신점 잘 본다는 도령이라도 찾아가야 할 판이다. 어떻게 가는 곳마다 그런 인간들을 만나게 되는 것인지.




  ***


  그렇지만 문제는 나에게도 있었다.


  '팀장 망해버려라!'


  나는 최근에도 모욕적인 일을 당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에 그런 글을 썼었다. 그런데 그게 뭐 대단한 저주라고 이런저런 사정을 봐주고 있었던 것이다. '내 사정' 말고 '팀장 사정' 말이다.


  '이렇게까지 악담해도 되는 건가?'


  '아무래도 가족까지 건드리는 건 좀 아니지?'


  팀장은 부서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보란 듯이 나를 향해 소리치고 면박을 주는데. 나는 뭐라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중얼거리기만 할 뿐인 주제에 '이런 말 해도 되나?'하고 자기 검열을 하고 있는 것인지, 원.




  ***


  저는 부지점장이
험한 꼴 당하길 바란 적이 있어요.

  내가 쓴 '나는 팀장이 망했으면 좋겠다'는 제목의 글에 달린 독자님의 댓글이다. 그걸 보고 나는 괜히 울컥해졌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비슷한 상상을 한 적이 있다. 그냥 있는 수준이 아니라 아주 많다.



  출장 간 팀장의 차가 뒤집어지길 바란 적도 있었고, 성추행이나 불륜 같은 사고라도 쳐서 파렴치한으로 공공연히 낙인찍히길 바란 적도 있었다.


  그래, 이게 뭐라고 나는 그렇게 눈치를 봤던 것일까.


  양심의 가책 때문에?

  그런데 그 양심은 나만 갖고 있어야 하나?


  아니면 정말 말이 씨가 되기라도 할까 봐?

  에이, 설령 그렇게 되면 또 어떤가. 잘난 팀장이 알아서 잘하겠지.


  그래서 결론은?


  미워하는 것만이라도 자유롭게 하자는 것이다. 인정사정 봐주지 말고.



  





https://brunch.co.kr/@a0b02c214f91423/11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