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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쌤 May 27. 2024

엄마의 숨 고르기

잠시 멈춰 서서

 육아 얘기는 정말 안 하고 살고 싶었다. 주변의 애엄마들이 푸념하듯 늘어놓는 육아 이야기를 듣고 자라면서, 나도 모르게 그런 이야기를 멀리하게 되었다. 나는 그런 푸념을 늘어놓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예외로 하고 싶다. 지난 4개월 간 아이가 커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말할 수 없는 감정을 경험했다. 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 나는 새로운 세상을 만난 기분이었다. 그 작은 손가락, 귀여운 웃음, 그리고 때때로 보이는 작은 고집. 모든 순간이 소중했다. 그러던 중, 얼마 전 남편의 육아휴직 3개월이 끝나고, 더 연장하는 것보다 복직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해 출근을 시작했다. 이제 오롯이 나 혼자 육아를 해야 했다.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남편이 퇴근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정말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알아차리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좋은 점은 있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아기 덕분에 이른 아침의 조용함이 이렇게 좋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동안 이런 꿀맛 같은 시간을 모르고 살았구나 싶어 억울하기까지 했다.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아기만 보면 웃음이 나왔다. 아기가 내게 주는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몇 주가 흐르고 남편이 무심한 듯 말했다. "영화라도 한편 보고 오지 그래?" 남편은 아기가 태어날 때부터 육아를 같이 했던 터라 육아의 고단함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옛말에 "밭 멜라? 애 볼래? 하면 밭맨다."라는 속담이 있다. 최근부터 이른바 독박 육아를 시작하면서 내가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이번 주말은 혼자 아기를 보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괜찮다고 손사래 치며 만류하기를 반복하다가 못 이기고(정말 못 이겨서) 부랴부랴 노트북을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딱히 뭘 해야겠다 생각해 둔 것도 없었던 지라 우선은 정말 남편 권유대로 영화를 한편 보러 가기로 했다. 얼마 만에 혼자 영화를 보러 가는 건지 사색에 잠길 때쯤 극장에 도착했고, 시간이 맞는 프로를 골라보다가 김세휘 감독의 '그녀가 죽었다'라는 스릴러 영화 티켓을 결제했다. 영화 시간이 한창 무르익어도 극장 좌석은 채워질지 모르고 나 포함 총 5명이 앉아서 영화를 시청했다.


 영화의 여운을 느끼며 차에 탑승해서 이제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차를 끌고 간 곳은 고작 집 근처 스타벅스였다. 점심을 건너뛰었더니 출출했다. 커피점에서 처음으로 샌드위치를 주문했다(음료는 아이스아메리카노). 조용한 구석 자리에 앉아서 노트북을 열고 글을 적어 내려갔다. 주변의 소음이 적고, 익숙한 커피 향이 나를 안정시켜 주는 것 같았다.


 약 4시간의 짧은 휴가였지만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도 대부분 아기를 생각했고, 우리 아기도 엄마가 보고 싶었을 것이다(내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엄마와 아기의 시간은 서로에게 너무 소중하기에, 잠시의 이탈도 큰 의미를 갖는다. 이 시간 동안 나는 나 자신을 재정비할 수 있었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달았다.


 육아는 정말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보람도 크다. 아기가 웃는 모습을 보면 피로가 싹 가시는 듯하다. 오늘의 짧은 휴가는 나에게 큰 선물이었고 앞으로도 이런 시간을 자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나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육아라는 긴 여정 속에서 잠시 멈춰서 나를 돌아볼 시간이야말로 엄마에게 필요한 진정한 휴가가 아닐까 싶다. 아이에게 더 나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말이다. 다음에는 어떤 영화를 볼까, 어느 카페에 갈까,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상상하며 다시 집으로 향한다. 이런 소소한 계획들이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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