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문화적이지 않은 문화재단! 근데 문화사업을 한다?
사실 작년에 다른 문화재단으로 이직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몇년간 단 일주일의 쉴틈도 없이 이직을 해왔고, 함께 커나갔던 재단에 대한 실망감과 배신감이 워낙 컸었기에 6월정도 이후에 퇴사 후 휴식을 하고 싶었던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러나 마음 한쪽에서는 퇴사와 동시에 이직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고, 조금 과감하게 당시 직급보다 한단계 올려서 과감하게 이력서를 준비했었다. (승진과 관련된 얘기는 따로 한번 다뤄보겠다!)
그리고 뜻밖의 이직 성공으로 이번에도 단 하루의 휴가 없이 출근하게 되었다.
엉엉... 이것이 평생 일할 팔자인가
이직 문제는 둘째치고서라도 왜 함께 커나간 재단에서의 퇴사를 결심했는지, 뭐가 문제였는지, 그리고 재단에서 최선을 다 해왔던 내가 그곳과 왜 이별하게 되었는지 문화재단의 현장 분위기는 어떤지 오늘은 이야기하려고 한다.
나의 문화재단 취업이란 사회와 공존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문화를 다루는 곳이니 수평적이면서도 서로 존중하는 그런 다양성의 문화가 존재할 것만 같았다.
문화재단이라는 곳에 입사 하기 전 면접을 보러 사옥에 갔는데 무언가 알 수 없는 90년대 파티션 있는 시청 사무실 냄새가 살짝 난 것도 같았지만 사회인으로 나가고자 한 나의 눈은 그런 사무실의 분위기를 흐린 눈으로 쳐다본게 분명했다.
이곳저곳 지원하고 계약직으로 입사한 곳에서 나는 쓸데없는 사명감이 가득 차올랐었다. 시민의 세금으로 우리 동네를 더욱 문화적으로 만들다니 가슴이 너무 벅차올랐다. 심지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문화 일을 하면서! 카카오나 네이버처럼 젊은 조직 문화를 가지고 있겠지 그리고 당시 조직 구성원도 정말 정말 젊은 편이었고 회사명도 땡떙문화재단으로 긍정적인 조직문화를 기대하기 너무 좋은 이름이었다.
(젊은 직원이 많았던 건 계약직만 뽑아서 10개월씩 굴리는 어린 직원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가장 처음 들은 업무에 대한 이야기는 "결재라인"이다.
어느 조직이든 결정권자는 있기 마련인데 2천원짜리 연필 한자루를 사더라도 결재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사회초년 병아리인 나는 매우 놀랐다. 이게 뭐라고... 결재라인을 3단계나 받아야하고 나는 당장 필요한데 결재자들은 자리에 없고...
그래도 하라니까 했다. 문제는 결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모든 이유를 "보고"하고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과정 자체가 어려웠다. 끙끙대며 결재와 행정과 공문과 친해질 무렵 깨닳음을 얻었다. 이 모든 과정을 아우르는 단어가 있다는 것을...
관료적 (官僚的)
- 관료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것.
- 관료들이 하는 방식과 같이 획일적이고 형식적인 태도나 경향이 있는 것.
- 관료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획일적이며 형식적, 관리적이라는 말이 참으로 매력없게 느껴졌다.
나는 문화를 살아있는 어떠한 유기체로 보고 살아왔다. 누구에게 입혀지느냐, 어떤 지역에 입혀지느냐에 따라 모든 결과값은 다를 수 있으며 다양한 형태로 부존재이나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관료적인 분위기에 적응하기 참 어려웠다. 그리고 이 관료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는 모른채 여러 회사를 돌며 업력을 쌓게 되었고, 이제는 대충 무엇이 있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왜 문화재단이 관료적으로 변모했는가에 대한 스스로의 분석을 정리해봤다.
(해당 분석은 지극히 주관적입니다)
1.문화재단이 태어나면서 가진 태생적인 문제
문화재단은 태어날때부터 "얍 문화재단이다!"가 된 것이 아니다. 속칭 3S(Sport, Sex, Screen)정책과 함께 우리나라 곳곳에는 시민회관이 설립되며 지역 내 문화예술행사를 도맡았다. 그러나 점점 커져가는 인구로 지자체에서 직영하기 어려웠던 부분들을 하나 둘씩 위탁할 수 있는 별도의 전문기관들을 설립하며 해당 업무와 시설을 떼어내는 형태에서 문화재단은 태동했다.
그래서 시설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문예회관을 문화재단을 출범하며 떼어주는 형태로 문화재단이 설립되는 형태가 가장 많았다. (아니면 도서관이나 문화시설을 떼어내며 설립하는 경우)
그러나 공기업의 정규직화 붐과 더불어 근로자들의 신분 역시 지자체의 공무직 > 시설관리공단 > 문화재단으로 이관되는 형태가 보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공무원의 관료제가 그대로 답습되어 문화재단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을까 하는 태생적 문제가 있다.
2.지자체에 복속된 예산
소위 말하는 쩐-주가 지자체다.
국민의 세금은 공모사업을 진행하는 일반인들도 엄격한 제한을 받는다. 특히나 정산의 의무도 지고 있기 때문에 지자체(세금)의 예산이 쓰이는 문화재단은 체계적이고 시스템화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3.대표의 성향
이 부분은 진짜 열다섯번은 쓰다말다를 반복했다. 과연 적어도 되는 주제인지... 하지만 대표님들은 내 브런치를 보시지 않을 것이기에 과감하게 써보겠다. 후후후
문화재단의 대표=지자체장(시장, 구청장, 군수)인 경우가 왕왕 있다. 내가 다녔던 모든 문화재단은 다 대표가 지자체장이었다. 이럴 경우 실질적인 사업을 운영하는 상임이사의 임명은 정치적 배경과 연결되는 경우가 있다. 즉, 지자체의 정치성향에 따라 문화재단의 성향도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전략적(?)인 인물이 오고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없다면... 뭔가 누구를 위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나는 과도한 사명감으로 재단에 입사한게 가장 패인이었다.
문화적일 줄 알았고, 사명감이 넘칠 줄 알았으나 관료적인 조직문화는 책임을 회피하고 안전함만을 추구하는 리더와 관리자들 사이에서 혼자만 끙끙댔고 헤쳐보고자 했으나 관료제의 벽은 어마무시했다.
직원들의 절반은 떨어져나갔고, 나머지는 순응하며 변해갔다. 이것이 조직문화가 경직되고 점점 업무량이 줄어가는 패인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화의 힘을 믿고자 다시 문화재단에 들어갔다.
나의 조그마한 노력과 몸짓들이 하나의 파동이 되고 커져나가길 그냥 기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