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balance한 공간과 음악에 동화되는 내 삶의 불안정함
스트레스를 받고 힘이 들 때 자주 들르던 바가 있다. 문정역 한쪽에 작게 운영하는 바로 Cozy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안내판에 적힌 '모든 칵테일 10000원'이라는 문구에 홀려 우연히 들어간 것이 사장님과의 첫 만남이었다. 원래 술을 좋아했기에 사장님과 대화가 잘 통했고, 종종 들르다 보니 술을 마시고 싶을 때 자연스레 그곳으로 향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어느 날은 친구와 맥주 한 잔을 하기 위해 주소를 보내려고 하는데 가게가 네이버, 카카오, 구글 지도 어디에도 나오지 않아 당황했던 적이 있다. 이름의 힘인지 아니면 지도에 존재하지 않는 나만의 아지트라는 생각을 해서 그런지 바의 문을 열고 내가 가장 좋아했던 바 테이블의 제일 끝자리에 앉으면 잡생각이 모두 사라지며 온전히 나와 술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어느 화요일이었다. 당시 내가 처한 상황이 나를 짓누르는 것을 버티지 못하고 Cozy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기네스 병맥주를 주문했다. 사장님이 냉장고에서 꺼낸 술과 킵해둔 위스키를 꺼내주며 말했다.
"안 오시면 어떡하나 걱정했어요. 이번주 목요일에 문을 닫거든요. 손님 전화번호가 없어서 연락도 못했네요."
순간 당황했지만 그렇지 않은 척하며 왜 그만두시는지 여쭤봤다.
"집이랑 너무 멀고, 알바도 안구해지네요. 진상 손님들도 점점 많아지는데 스트레스 받아서 동생이랑 다른 곳에서 바틀샵을 운영하기로 했어요. 전화번호 알려주시면 제가 바틀샵 열 때 알려드릴게요."
마음의 안식처를 잃은 느낌이었다. 목요일 전에 한 번 더 와야 할까 고민했지만 일이 바빠 그럴 겨를이 없었다. 예전에는 퇴근하던 길에 문정역에 한 번씩 내렸지만 이제는 내릴 이유가 없어졌다. 그렇게 한동안 평일에는 회사 업무 주말에는 과외를 하며 바쁜 일상을 보냈다.
이번주 목요일에 내가 좋아하는 천호의 바람이라는 바의 인스타에 '백지화'라는 곳의 사진이 올라왔다. 하이앤드 스피커를 가져다 놓고 좋아하는 노래를 감상하는 공간이었다. 신청곡을 메모지에 써서 사장님에게 주면 틀어준다고 되어 있었고, 주류와 음식은 직접 가져와도 된다고 쓰여있었다. 운명인지 마침 토요일 시간이 비었고, 예약하기 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금 나는 '백지화'라는 곳에 와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Cozy가 떠오른다. 나는 앞에 주욱 놓여 있는 분위기 좋은 쇼파를 지나쳐 제일 뒤에 있는 길쭉한 나무 테이블의 한쪽 끝에 앉아 있다. 마치 Cozy에서 그랬던 것처럼.
3시간을 예약했고, 2시간가량은 위스키를 한 잔 하며 책을 읽었다. 2시간이 지나고 나는 이 글을 쓰다가 문득 떠오른 노래를 신청했다.
최예근의 unbalance.
노래를 듣기 위해 제일 앞에 있는 쇼파로 이동했다. 제일 앞에 있는 쇼파는 스피커의 소리가 집중되는 곳에 딱 하나 배치되어 있다. 오랜만에 들었지만 여전히 좋은 노래였다.
지금 이 시간 공기 질감 모든 게 다 내 기분과는 안 어울려
차가운 새벽공기 마른 숨 나를 맴도는 약간의 어지러움
작은 화면 속 불빛을 따라 의미 없이 텅 빈 시선
그 끝에서 해가 뜨고 다시 잠이 들어 버리고
분명 여기에 오기 전날까지 크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내 기분은 이런 공간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공간에 내 기분이 조금씩 동화되며 잡스러운 생각들이 나를 두고 떠나갔다. 공간과 음악, 알콜이 만들어 낸 마법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아마 앞으로는 종종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정역을 지나쳐, 강동구청역에 한 번씩 들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