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여행, 카페 투어]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우리들의 커피여행이 벌써 4번째가 되었다. 시간이 참 빠르다. 세 명이 돌아가며 한 곳씩 추천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다 보니 벌써 내게 두 번째 차례가 돌아왔다.
오랜 고민 끝에 4월의 커피투어를 내가 좋아하는 상수동 카페로 가려했지만, 막내 멤버의 시간이 맞지 않아 한남동으로 장소를 변경했다. 지난달 방문했던 포온즈커피의 여운이 깊게 남아 있던 터라, 한남동의 수많은 카페 중 어디로 갈지 고민이 많았다. 첫 번째로 꼽았던 피어커피는 일시적으로 문을 닫아 갈 수 없었고, 다른 카페는 12시에 오픈하는 곳이라 결국 마일스톤커피로 결정했다. 고객들의 평점이 좋아 한껏 기대하며 한남동으로 향했다.
우리가 한남동을 찾은 날은 4월 17일로 목련꽃이 거의 질 무렵이었다. 누군가는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4월은 이상기온으로 우박이 한 번쯤 내린 뒤에야 봄을 내어주는 심술 맞은 달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만난 날은 유난히 초여름 같은 날씨로 발걸음이 가벼웠다. 어쩌면 지난겨울 계엄의 한파로 침울했던 한남동, 그 역사의 거리를 일상으로 되찾은 이유 때문일지도 몰랐다. 봄은 우리에게 쉽게 오지 않았지만, 우리가 만난 그날만큼은 따뜻한 봄이 찾아왔다.
마일스톤커피는 나인원 한남 뒤편 골목을 따라 올라가거나, 한강진역에서 골목으로 들어오면 만날 수 있다. 한강진역 길 건너에는 리움미술관이 있고, 이태원도 멀지 않다. 한남동의 세련된 분위기처럼 마일스톤커피는 무심한 도시의 무채색을 띠었지만, 카페는 평범한 듯 세련되고 단정한 느낌이었다. 카페 앞 커다란 자목련이 활짝 피었을 때 왔더라면 더 좋았을까? 우리가 갔을 때는 꽃잎이 거의 떨어지고 초록 이파리가 무성했다.
먼저 도착한 팀장님은 오전 11시임에도 몇 팀의 웨이팅을 거쳐 자리에 앉았다고 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 만난 젊은 외국인 남성은 막 샤워를 마친 듯한 차림으로 창가에 앉아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이었다. 열심히 각자의 삶을 살다 한 달 만에 만난 우리는 그동안 모아둔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축하할 일도, 응원할 일도 있었다. 서로에게 축하와 응원을 건네며 맛있을 커피 여행을 기대했다. 무엇보다 함께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즐거운 일이었다.
우리는 평소처럼 각자의 취향대로 커피를 주문했다. 나는 늘 그렇듯 첫 잔은 따뜻한 카페라테로 했고, 팀장님은 에티오피아 워시드 드립을 골랐다. 아직 커피를 잘 모른다는 막내도 나와 같은 따뜻한 카페라테를 주문하며 맛있어 보이는 브라우니 크럼블 & 아이스크림을 곁들였다. 커피 스타일이 호주식 커피인 듯 해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역시나 사장님이 호주에서 커피를 배우고 카페를 낸 것이라고 했다. 생각보다 많은 카페들이 호주식 커피를 만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기대했던 커피가 나왔다. 그런데 라테아트가 금방 풀어졌다. 스티밍이 제대로 되지 않은 듯했다. 내가 카페라테를 주문하는 이유는 라테아트가 주는 즐거움 때문이다. 그 즐거움이 순간 사라져 버렸다.
커피맛도 아주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만족할만한 커피도 아니었다. 기대했던 맛은 확실히 아니었다. 저렴한 값을 지불했다면 별 기대감조차 없었겠지만 시간을 투자해 찾아갈만한 커피는 확실히 아니었다. 장소를 지정해 놓고 그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려 한 나의 실수였다. 진한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 커피가 밍밍하게 느껴졌다. 우유가 제대로 스티밍 되지 않아 겉도는 맛이었다. 막내의 커피는 다행히 라테아트가 내 것보다 오래 유지되었다. 마셔보니 내 것보다 조금 더 나았다. 팀장님도 첫 모금 마신 표정을 보니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브라우니도 너무 달았다. 아무래도 4월의 커피는 올해 가장 실망스러운 커피로 남을 것 같았다.
씁쓸한 마음으로 카페를 둘러보았다. 이곳에 오기 전, 사람들이 붐비는 카페라 시끄럽거나 정신없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날씨가 좋아서인지 밖에서 웨이팅 하는 사람들이 많아 생각보다 조용했다. 카페에는 직원이 무려 다섯 명이나 있었다. 원두서점도 네 명이었던 게 떠올랐다. 그래서인지 바쁜 점심시간에도 주문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카페 안에는 홀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도 비교적 눈에 띄었다. 옷차림으로는 이 근처에 사는 단골들인 듯했다. 다만 카페 분위기는 편안하게 오래 앉아 있기보다는 커피 한 잔을 음미하고 서둘러 나가기 좋은 카페였다.
나의 맞은편에서 얌전히 앉아 있는 강아지를 발견했다. 홀로 노트북 하고 있는 주인을 바라보며 옆을 조용히 지키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사진을 찍고 싶어 허락을 받으러 갔더니, 내가 앉으려 하는 줄 알고 얼른 자리를 비켜 주었다. 이름은 마일로라고 했다. 점잖고 예의 바른 마일로를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자주 카페에 오는 단골이었다.
평소라면 기본 두 잔은 마셨을 커피를, 우리는 한 잔을 겨우 마시고 디저트도 남긴 채 서둘러 나왔다. 카페 옆 골목에 있는 커다란 자목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목적지도 없이 골목을 그냥 걸었다. 4월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날씨가 너무 좋았다. 골목마다 관광객이 제법 보였고, 어느 곳은 중국 관광객들이 긴 줄을 서 있기도 했다. 날씨가 좋아 반팔을 입은 사람들도 제법 많았다.
그러다 야외 테이블이 있는 식당을 찾아 점심을 함께했다. 우리나라의 여름은 습하거나 덥고, 겨울은 너무 추워 야외 테이블을 즐길 수 있는 계절이 짧은 편이다. 하지만 이날은 공기도 맑고 바람도 선선해 야외 테이블이 제격이었다. 커피는 아쉬웠지만, 날씨만큼은 최고였던 4월의 한남동. 우리의 씁쓸한 커피여행에 즐거운 추억 하나를 더했다.
아쉬웠던 마일스톤의 커피 덕분에 5월에는 내가 가고 싶었던 상수동을 가기로 했다. 그곳에서는 커피 오마카세처럼 좋아하는 커피를 골라 먹을 작정이다. 상수동의 5월이 벌써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