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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Feb 27. 2024

깊은 관계일수록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배의 거품에 집중하지 말 것 




깊은 관계일수록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단다. 

정말 깊은 관계였을까?

 

요즘 <한 줄 내공>을 읽고 있다. 내용 하나하나, 문장 하나를 붙들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페이지가 참 좋다. 

공감도 되고, 생각도 하게 된다. 오늘부터 읽다가 멈춘 <라틴어 수업>를 다시 꺼내 들었다. <줄 내공>에서 언어, 쓴소리, 관계에 대한 파트를 읽고 오늘은 이걸 적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브런치 페이지를 펼쳤다. 그리고 짧게 챕터를 읽고 덮은 <라틴어 수업>를 펼쳤는데, 소통의 도구인 언어에 대해서 말한다. 


가끔 보면 참 이상하다. 어떤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야 할지 아니면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렸다. 중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사회 초년생이었던 20대 초반, 친구들 사이에서 그런 말이 돌았다. "진정한 친구는 쓴소리를 해 줄줄 아는 친구라고"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서 친할수록 서로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고, 자연스레 "그래 나랑 친한 친구니까 내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야"라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말을 빙자로 서로를 위한다는 명목아래 솔직을 넘어 과하게 참견(?)하는 행위가 되어가고 있었다. 가시란 막대로 찌르듯 서로에게 주는 충고는 처음에는 조심스럽다가 어느 순간 되니 당연하게 돼버렸고, 감정에는 점점 생채기가 나기 시작했다. 

진짜 나에게 필요한 조언일까? 정말 나를 생각해서 해주는 말일까? 따위의 생각말이다. 그런데, 그저 생각이 아닌 감정에 상처가 나기 시작하자 말은 들리지 않고, 감정만 남아있었다. 익숙해져 버린 '친한'관계의 조언은 그저 서로에게 그다지 득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멈추었다. 그 후로는 아닌 척하면서도 고맙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날도 있었다. 진짜 이게 '진정한 관계'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로 관계 안에서 더 이상 깊이 있게 들어갈 수가 없었다. 


"저는 소통의 도구로서의 언어는 배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배가 항구에 정박되었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항구를 떠나 먼바다로 나가면 크고 작은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해요. 어쩌면 그것은 배가 지나간 자리에 생기는 물거품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배와 배가 나아가는 방향을 보아야 하는데 물거품을 보는 데서 생기는 문제라는 것이죠. 이는 정작 메시지를 읽지 않고 그 파장에 집중하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오해가 쌓이고 소통이 되지 않는 것 아닐까요?" 

나는 이 문장을 읽기 전까지 가졌던 내 생각을 다시 곱씹어 보았다. 진짜 서로를 위한 마음으로 조언을 해줬다면 감정이 상했을까? 상대는 진심이었는데 내가 받아들이지 못해서 혼자 상처를 받았던 걸까? 결론이 나지 않는 생각을 혼자 또 해본다. 그러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그래. 결국에는 감정의 파장이 맞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충고 안에는 상대를 향한 진심 보다 '행위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됐던 게 아닐까 말이다. 당시에는 그저 "진짜 나를 위한 게 맞아?"라는 생각을 하다 "그래. 맞아. 누가 나를 이렇게 생각해 주겠어"로 끝났던 대답을 지금 생각해 보니, 참 순수하기도, 어리숙하기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서로를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관계 나는 좋다. 그런 이야기 가깝지 않은 사람이면 해줄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는 생각도 동시에 해본다. 상대가 한 말과 행동에 집중하면서 드러난 부분만을 잡고 늘어지면 진심이었다고 한들,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배가 지나간 자리의 거품, 그러니까 말이 남기곤 자리의 부정적인 감정에만 집중하게 되지 않을까 말이다. 


가까울수록 더 존중해야 하고, 더 조심해야 하는 게 맞다. 특히 부부관계도 그렇단 생각이 든다. 나는 종종 남편에게 말할 때도 분위기를 살피거나 눈치를 볼 때가 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고, 스스럼없이 서로의 치부를 다 보여준 관계이기 때문에 어떤 말도 가능하다. 허나, 그렇게 가깝다고 해서 진짜 내가 느끼는 대로 거르는 것 없이 툭툭 뱉다가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나 또한 남편으로부터 그런 감정을 느낄 때면 꼴도 뵈기 싫을 때가 있다는 말이다. 최소한의 지켜야 할 예의, 그 선은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결국, 가장 많은 시간, 가까운 공간에서 지내면서 서로를 향해 위한답시고 지적하는 말이 주는 상처는 생채기에 불과하니까, 친구도 동료로 부모도 자식도 모두 다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결국 "말"이라는 것은 잘 뱉어도, 잘 못 뱉어도 주워 담을 수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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