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다짓기 최주선 Mar 03. 2024

치과의사가 마음을 묻다

회복탄력성이 필요한 순간


"오늘 클리닝만 받을 거예요?"

"네"

"딱 클리닝이면 돼요? 다른 검사는 필요 없나요?"

"네. 저는 클리닝만 받을 거예요."

"어디 치아에 문제 있는 곳은 없나요?"

"네 지금은 문제 있는 곳은 없어요."

"그럼. 마음은요?"

"네...?"

며칠 전 치과에 다녀왔다. 뜬금없는 질문에 말 끝을 흐리다가 배시시 웃으면서 대답했다.


"제 마음이요? 문제없죠!"




매번 다니던 치과가 조금 멀리 이전을 했다. 찾아가려면 갈 수 있지만, 예약 일자가 맞지 않아서 가까운 곳을 가기로 했다. 며칠 전, 남편은 음식을 먹다가 치아를 때운 부분이 떨어져 나가 시리다고 했다. 한동안 치과 안 갔는데, 옳다구나 갈 때가 되었구나 싶었다. 그 김에 나도 클리닝을 받으라며 예약을 해 놓고 온 상태였다. 별이 패치를 가야 하기에 남편을 별이에게 보내놓고, 혼자 치과에 당당하게 들어섰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희게 센 회색 머리 노부부가 다정하게 앉아있었다. 휴대폰으로 강의를 듣고 있었던 터라 귀에 이어폰을 꽂고, 눈은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지만, 노부부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남아공에서는 내가 외국인, 아시안이기에 종종 그렇게 쳐다보는 경우가 있는데, 꼭 부정적인 시선만은 아니다. 그냥 눈길이 가서 쳐다보기도 하고, 말을 걸고 싶은 경우도 있었다. 휴대폰을 들여다보다 시간이 임박해 대기 명단을 부를 것 같아서 고개를 들자 노부부와 눈이 딱 마주쳤다. 나에게 할 말이 있는 듯 리셉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내게 뭐라고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야기인즉, 왔으니까 접수를 하라는 거였다.


"저, 이미 예약했는데요?"


나는 이미 왜 접수를 하라는 건지 당당하게 말했지만, 그래도 가서 왔다고 알려야 한다고 했다. 이런 머저리 같을 때가 있나 싶어 얼른 걸음을 재촉해 접수처에 가서 이름을 말하려고 하자, 온 걸 알고 있었다는 듯 내 이름의 성을 말하며 기다리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Choi(최) 성을 가진 현지인은 없고, 그 자리에 아시안은 나 혼자였다. 노부부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빼먹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종종걸음으로 내 자리로 와서 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어시스트가 문을 열고 나왔다. 보통은 이름을 부르는데, 문이 열리는 동시에 내가 고개를 들었고, 눈이 마주쳤다. 어시스트는 내게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치과 베드에 누워서 치석을 제거하는 동안 머릿속에 "마음은요?"라는 말이 맴돌았다. 약 15분 정도의 시술을 하는 동안 "내 마음"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뜬금없이 마음이 괜찮냐는 치과의사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게다가 처음 간 치과, 처음 만난 치과 의사였다. 설마 심장을 물어본 걸까 싶어서 내 얼굴빛이 심장에 문제가 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말의 뉘앙스가 "마음"이었고, 그 말을 끝낸 후 내가 괜찮다고 했을 때 치과의사는 자신의 반짝이는 흰 건치를 보이며 온화한 미소를 내게 보여줬다.




마치 의사가 내 마음이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을 예견이라도 한 걸까.

나는 그 뒤로 딱 이틀 후 마음이 땅바닥으로 쿵 떨어졌다. 간혹 이럴 때가 있는데, 이번에는 좀 더 심하게 타격이 왔다. 그리고 내 문제가 뭔지에 대해서 곱씹었다. 내 문제를 곱씹는 건 참 나쁜 버릇 중에 하나인데, 곱씹거나 묵상하다 보면 아무리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하더라도 걱정, 우려, 근심의 그림자가 계속 내 위에서 망토를 두르고 서 있다. 참 나쁘다.


바닥을 치는 경험을 할 때는 회복 탄력성을 빼놓고 말할 수가 없는데, 다행인 건 나는 회복탄력성이 좋은 편이라는 생각에서이다. 그렇다고 해도 자신감이 하락할 때는 만사 다 내려놓고 싶어 진다. 그런다고 또 뭘 어쩌겠는가. 세상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없고, 사람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데, 나 스스로 컨트롤이 쉽지 않으니 말이다. 내 기준과 다른 사람의 기준이 다를 수도 있고, 실제로도 내 능력이 그만큼의 역량을 채우지 못했을 수도 있을테고.  보통 이런 경우에는 한 2~3일 정도 좀 우울하고 끙 앓다가 훌훌 털어버리려고 한다.  그렇다고 아예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뭔가 다시 올라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노력한다. 그래야 다시 또 힘을 낼 수 있게 될테니.

다른 면으로 보면 내가 칠 바닥이 있다는 건 다시 올라갈 수 있는 벽이 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올라보련다.  


작가의 이전글 부부싸움하면 하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