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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May 11. 2024

새우를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해

글쓰기는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이면 된다. 



며칠 전 문득,  알레르기와 비염이 있어도 음식 알레르기가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오랜만에 찾은 근교의 식당에서, PRAWN(머리부터 꼬리까지 껍질채 튀겨진 새우)와 HAKE(대구)를 시켜 먹던 중이었다. 새우의 머리는 보통 안 먹는데, 오늘은 그 머리마저 씹어 먹고 싶었다. 완전히 다 넣고 씹지는 않았지만, 머리가 분리되는 부분을 쪽 빨아먹고, 몸통과 꼬리의 껍질까지 잘근잘근 씹으며 짭조름한 맛을 음미했다. 그 바삭거리는 식감까지 함께 즐기며 말이다. 결국 껍질은 좀 뱉어내야 했지만, 꼬리를 아주 야무지게 씹어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렇다. 나는 새우를 좋아한다. 이 좋아하는 새우, 비싸서 자주 먹지도 못하지만 가끔이라도 내가 이 음식을 먹었을 때 일어날 어떤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감사로 다가왔다. 


"와, 이 맛있는 거 못 먹는 갑각류 알레르기가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운이야!" 


우리 둘째 다엘이가 돌이 되기도 전에 호두와 땅콩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알았다. 바닥을 기어 다니다가 누나 별이 바닥에 흘린 호두를 우연하게 손에 쥐고 입에 비볐는데 온 얼굴에 불은 반점이 생겨 기함했던 경험이 있다. 하루는 별이가 바닥에 우유를 쏟았는데, 손으로 비벼서 얼굴에 문지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입 주변이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이유기부터 닭고기 뺀 모든 고기류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었다. 심지어 아이들에게는 안전하다는 흰 살 생선까지 말이다. 모유가 모자랐지만 우유 알레르기 탓에 분유대신 두유를 먹였다. 이유기에도 늘 배가 고파 새벽에 일어나 두유 한 팩은 꼭 먹어야 잠에 들었다. 그랬던 다엘이 이제 12살이 되었고,  우유는 물론 땅콩도 먹는다. 우유 알레르기는 두 돌 지날 무렵부터 괜찮아졌다. 땅콩 알레르기는 5살이 지날 무렵 없어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다른 알레르기 반응은 다 사라졌는데, 호두와 피칸 알레르기는 아직 남아있어서 절대 입에도 못 대게 한다. 호흡기가 붓는 증상을 경험한 뒤로는 무서워서 아예 차단하고 있다. 게다가 비염도 있는데 갈대 알레르기, 먼지, 꽃가루 알레르기도 가지고 있다. 정말 황당하고 속상한 건 고양이 털 알레르기도 있다는 것이다. 


4년 전, 프레토리아서 약 5시간 떨어진 지인의 집에 방문했다가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 차 안에서 갑자기 눈 알이 튀어나올 만큼 부풀어 오르고 숨을 점점 쉬기 힘들어해서 저러다가 어떻게 되어 버리는 것 아닌가 싶은 두려움에 발을 동동 거렸던 경험이 있다. 고속도로 한 폭판 겨우 딱 1개밖에 없는 휴게소에 어서 다다르기만을 기다렸다. 다행히도 함께 동행했던 지인 차에 알레르기 약이 있었고, 얼른 알약하나를 꺼내 아이 입에 밀어 넣었다. 원인이라곤 그 집에 있던 3마리 고양이 밖에 떠오르질 않았다. 한 번도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던 때였다. 그 계기로 고양이 털 알레르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뒤로는 고양이가 있는 집에만 다녀와도 눈이 붓고, 가려워지는 증상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역시 맞았다. 고양이 털 알레르기다. 

우리 집 상비약 중에는 반드시 알레르기 약이 있고, 반드시 차에도 상비약으로 한통 챙겨 둔다. 


원인을 몰랐다면 답답했을 텐데, 몇 번의 경험과 실험을 통해 우리는 알레르기 피검사를 하지 않고도 다엘이 가진 알레르기의 원인 몇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이렇게 경험에서 얻는 것은 확실하다. 내가 가진 경험을 누군가에게 공유할 때, 경험으로만 끝나는 아니라 나와 비슷한 상황이나 환경에 놓인 사람들에게 나누면 된다.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소비한다. 그리고 그게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용기가 된다. 누군가를 도울 있는 가장 쉬운 예이다. 도움을 주어야지만 돕는 아니듯, 내가 경험했던 힘든 일, 어려운 일, 예상치 못했던 상황을 헤쳐 나온 일, 내게 찾아온 행복을 그냥 안에 가둬두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낸 얻게 행복까지도 모조리 나누면 된다. 


오늘, 정규 수업에서 작가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늘 그렇듯 일상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온 글감으로 메시지를 찾는다. 그렇게 일대일 대화를 나누는 형태로 수업을 하면 자연스럽게 글 쓰고, 메시지 찾는 훈련이 된다. 우리 작가님들도 나도 이 시간이 참 소중하다고 여겨진다. 수업을 진행하는 나도 어느새 이야기에 몰입되곤 하기 때문이다. 오늘 수업에서 작가님이 고등학교 시절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이야기를 통해 '다른 관점'으로 다시 시절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며 메시지를 도출하는 시간을 가졌다. 너무나도 참한 메시지가 나왔고, 작가님을 칭찬했다. 


우리 최 작가님이랑 글을 쓰면 글이 잘 써질 것 같아요.

작가님이 내게 던진 그 말을 듣고 대화가 이렇게 중요하구나. 함께 글 쓰고 메시지를 도출하는 훈련이 정말 필요하다는 결론과 확신을 갖게 되었다. 훈련 효과가 있다. 


경험에서의 시작이다. 과거의 이야기를 쓰고, 이야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이면을 들여다보고, 뒤집어보기도 하고, 비틀어보기도 하면서 글을 쓴다. 

글도 많이 써본 사람이 잘 쓰는 법이다. 글쓰기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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