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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un 22. 2024

동행의 시작.

레이첼 편



제주에서 8일간의 동행 - 레이첼 편


남아공에서 가지고 온 캐리어 중에 나름대로 작다고 생각되는 캐리어를 열고 짐을 차곡차곡 꾸려 넣었다. 1주일은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기간인데, 뭐가 그리도 챙겨야 할 게 많은 지, 짐을 넣었다 풀었다 반복했다.

"혹시 가방 큰 거에 짐 넣은 거 아니지?"

카톡을 받자마자 차곡차곡 꾸리던 캐리어를 거꾸로 들고 몽땅 쏟아냈다.

맙소사. 세상에, 나는 습관처럼 국내 항공짐 무게도 당연히 가방 하나에 23킬로이겠거니 했다. 역시 아는 만큼만 보인다고, 제주 여행했던 기억도 까마득한지 기본적인 것도 생각 못했다. 어쩌면 '여행'이라는 의미에 마냥 신나서 엄마가 알아서 준비하고 나는 몸만 따라가면 되겠지 생각하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내게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계획적이고, 세세하고 꼼꼼하게 스케줄을 미리 알아보는 리나에게 묻혀서 여행하려는 심보가 있었나 보다. 여행하려는 사람이 체크를 이리도 못했다니, 짐을 다시 작은 가방에 꾸려 10킬로를 맞춘 후 지퍼를 닫았을 무렵, 내 심장은 더욱 기대로 부풀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늦을까 봐 출발을 재촉했다. 공항에 1시간이나 빨리 도착했다. 공항에 밀려든 단체 인파를 보며 입이 딱 벌어졌다. 앉을자리가 없나 혼자 두리번거리다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 시간이나 남았으니 책 좀 읽으려고, 리나에게 선물 받은 <나무 수업>을 가방에서 꺼냈다. 그리곤 어서 오기만을 기다리며 책의 첫 장을 넘겼다.

"뭐 좀 먹고 있어요. 늦어서 미안해요."

(우리는 존대와 반말을 섞어하는 사이다. 존대 탓에 느껴지는 거리감 따윈 뛰어넘은 지 오래다.)

평소엔 오전 8시면 배가 하나도 고프지 않을 시간이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이동을 해서 그랬을까,  톡을 보는 순간 커피와 샌드위치가 몹시 당겼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책을 가방에 넣고 캐리어를 질질 끌며 파리 바게트로 들어섰다. 나만 먹을 샌드위치가 아닌, 나눠 먹을 샌드위치를 고르고 반을 뚝 떼어먹는 샌드위치 맛은 설레는 맛이었다. 온라인에서 만나 매일 같이 카톡으로 일과 성장, 서로의 일과를 소통해 온지 햇수로 3년이다. 1년 반 전에 오프라인으로 처음 만났고, 그 뒤로도 계속해서 연락해 왔지만 오프라인으로 그 어떤 필터도  없이 눈동자를 보며 하염없이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무척 기다렸다. 드디어 바로 그날이다.

"다 왔어요. 나 올라가!"



부랴부랴 샌드위치 트레이를 정리를 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두리번거렸다. 걸려오는 전화에 이름이 떴다. 전화를 받으려고 고개를 들어 좌우로 돌리는 순간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리나다!"

계속해서 울려대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걸음을 재촉해 리나의 목을 왼쪽 팔로 끌어안았다. 기습적으로.


그렇게 우리의 8일간 동행이 시작되었다. 체크인과 바이오 인증 등록부터 덤 앤 더머가 시작되었다. 바이오인증 스캔에 주민등록증을 뒤집어 엎고 왜 안되냐며 뚤레뚤레 고개 갸우짓하는 서로의 모습에 배꼽 잡고 우었다. 제주 여행! 제주라니, 그것도 1주일 여행이라니! 내가 한국 방문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안고, (나에겐 쉽지 않은 일, 꿈이다.) 떠벌렸을 때부터 2023년 한 해, 그리고 2024년 초반까지 애쓰고 수고한 서로를 위해 선물로 여행을 하자는 제안을 해 준 리나다. 그 덕에 땅을 밟았다. 꿈에 그리던 여행의 시작이다.


어렸을 때부터 내 희망 리스트에는 '친구와의 자취'가 있었다. 그때는 그게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같이 품는 꿈이었다. 부모님의 품을 떠나 친구들과 매일 즐겁게 사는 드라마 덕이었을까, 그렇게 재밌을 것 같아서 꼭 한번 해보겠다며 말이다. 고작 1주일이지만, 30년 전의 희망을 이제 이루어 보나 싶었다.


이번 한국행은 복합적인 이유와 해야 할 일,

친구와의 여행, 그리고 시간의 공간 공유.


여행이 끝난 지금 마치 꿈을 꾼 듯하다. 1주일 전인데 벌써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서로의 일상을 보고, 시간을 공유하고, 대화했다. 여행 가서 안 맞으면 싸운다던데, 혹여나 더 친해지고 싶어 가졌던 시간 서로 맞지 않거나 실망하면 어쩌나 싶었던 염려는 기우였다. 우리는 소소한 것 하나, 일부러 양보하거나 맞추려고 애쓰지 않아도 됐다. 그저 자연스럽고도 편하게 시간을 보냈다. 나만 그렇지 않았으리라 생각하며 '우리'라고 쓰는 이유는 어느 정도의 자신만만하게 느끼는 관계의 확신이랄까.


공항에 도착해 렌터카 회사로 향하는 셔틀버스에 올라타기까지, 렌트해 출발하며 "다른 길로 진입하지 않도록 유의하십시오"를 그렇게나 많이 들을지는 예측할 수 없었다. 그저 좌충우돌, 평안하면서도 익사이팅한 매일의 시간을 이토록 붙잡고 싶어질 거란 걸 그때는 몰랐다.

함께 바라본 바다가 이토록 그리울 줄이야.



원래의 계획은 매일의 여행, 하루의 일과 후 함께 마주 앉아 글 한 편 써서 발행하는 거였다. 여행과 코칭, 그리고 글까지 쓰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나도 짧았다. 작가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만.

이렇게 다시금 1일부터 시작해 기억을 더듬으며 글 쓰는 경험도 소중하다.

결국, 글쓰기는 과거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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