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나 작가 Jun 26. 2024

너를 담는 시간

라나 편


제주여행 두 번째 날.


본업은 육지에 두고 왔는데, 부업은 가지고 왔다.

아침 일찍 일어나, 소리튠 영어 코칭부터 끝냈다.

나는 인원이 몇 명 안돼서 금방 끝났는데, 레이첼은 아직이다. 게다가 사이버대 중간고사까지 봐야 한단다.

제주도에 뭘 이렇게 주렁주렁 다 달고 온 거야!

그렇지만 안쓰러운 마음이 더 컸다. 우리 일정 충분히 즐기기 위해 잠을 줄여 4시간밖에 못 자고 새벽부터 열일 중이다.


나는 여유롭게 빈둥빈둥 책을 읽고, 레이첼은 바쁘게 허겁지겁 일을 끝내고서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숙소를 나섰다.

제주의 6월은 수국의 계절이다. 만발한 수국을 보기 위해 카멜리아 힐에 갔다. 규모도 꽤 넓고 알록달록하게 잘 꾸며놔서 어디에서 찍어도 다 예뻤다. 다만, 연달아 들어오는 관광버스에서 나오는 수십 명의 중국인 관광객을 피해서 찍느라 약간의 고생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인스타에서 친구와 여행 갔을 때 찍는 여러 릴스가 유행이다. 우리도 릴스 챌린지 해보자며 삼각대를 꺼냈다. 꽃과 나무로 둘러싸인 길 위에서, 둘이 손잡고 걸어가다가 마주 서서 양손으로 서로 하이파이브하기로 했다. 처음이라 박자도 안 맞고 어색함이 묻어 나왔다. 카메라 앵글이 안 맞거나, 정면을 찍어야 하는데 뒷방향을 찍기도 했다.

"어? 우리 왜 안 나와? 어디를 찍은 거야?"

"아하하하!!"

실수 연발이 가져다주는 어이없는 웃음이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다시!"

"다시 찍자."

"한 번만 더"

하면 할수록 익숙해졌다. 사람 없을 때 후다닥 찍기 신공을 뽐냈다.


"리나, 내가 리나 찍고 있는데 등만 보여주고 있어요."

"아! 나도 영상 찍고 있는데?"

좁은 계단을 올라갈 때 레이첼이 내 뒤에서 나를 찍고, 나는 셀카 모드로 뒤따라 오는 레이첼을 찍는 중이었다. 틈만 나면 서로를 찍어주기 바빴다.


평소에 내 아이들 데리고 예쁜 곳에 가면 애들 사진 찍기 바쁘다. 그리고는 수시로 사진첩 열어보며 지난 추억을 꺼내본다.

친구랑 가도 마찬가지였다.

카메라모드 상태로 내 시선은 예쁜 꽃들 그리고 친구에게로 갔다. 조금 더 이쁘게 찍어주려고 몸을 숙이고,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바빴다. 그냥 내 마음이 그랬다. 이쁜 모습을 사진에 많이 담아주고 싶었다. 너 이렇게 이쁘다고 보여주고 싶었고, 나중에 수시로 친구 사진 보고 싶어서 그랬다.

내가 폰을 들이밀면, 레이첼도 이미 나를 찍으려고 폰을 내미니, 서로의 얼굴을 찍는 건지 핸드폰을 찍는 건지.


사진도 마음이다. 사진 한 장 한 장에 찍은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다. 상대방을 향하는 마음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 찍어준 사진이 다 예쁘게 나왔을까.




여행을 끝내고 일주일이 지났다.

사진과 영상을 보면 벌써 아득히 멀게만 느껴진다.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지만, 사진을 볼 때마다 아쉽고 뭉클한 마음이 드는 건, 아직도 감정의 불꽃이 꺼지지 않고 과거에 미련을 두고 있어서겠지.


옆에 꼭 붙어 다니며 서로를 바라보았던 그 시간은 지나갔지만, 마음은 여전히 사진 속의 그 시간에 머물러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행의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