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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un 27. 2024

너를 담는 시간

레이첼 편


제주여행 두 번째 날.

카멜리아 힐 - 방주교회- 정방폭포 - 더 클리프

일주일이 쏜살같이 지나갈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내가 체감한 매일은  참 짧았다.



"자, 여기 보세요. 내가 시범을 보일랑게, 잘 보셔. 지금부터 사진 찍을 때는 한 발은 자 요렇게 앞으로 하고, 살짝 짝다리를 짚어줘야 다리가 길게 나옵니다요. 그리고 여그 요렇게!"


관광을 안내하는 6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중년 여성의 그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내 귀에 꽂혔다. 함께 놀러 온 분들에게 사진 포즈를 설명하고 있었다. 순간 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기억났다. 고등학교 때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자동반사적으로 이 포즈, 저 포즈 취하며 약간은 오버스럽지만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자태로 사진을 찍는 친구가 있었다. 사진을 찍은 후 화면에 담긴, 인화된 필름지에 담긴 모습을 보고 그때 알았다.

 "아, 좀 오버해야 예쁘게 나오는구나."

워낙 사진 찍는 걸 쑥스러워하는 나로서는 피사체로 담기는 것보다 내가 피사체를 겨냥하는 게 더 익숙하다. 누가 날 찍어준다고 하며 어떤 포즈를 어떻게 취해야 할지 몰라 쑥스러워하다 애매하게 나온 사진을 보고 다음번엔 더욱 오버하리라 다짐했던 날도 적지 않다.


리나와 수국 구경하러 카멜리아 힐에 가기로 한 날이다. 모자, 선글라스, 휴대폰 그리고 삼각대 기능이 있는 셀카봉! 이제 만발의 준비 끝.

차량 넘버판에 ‘허’가 달린 렌터카 핸들을 잡고 악셀을 힘껏 밟으며 목적지로 향하는 마음은 설렘 가득이다. 인스타 그램에서 누군가 소개했던 그 사진 속 그 모습 그대로일지, 가서는 어떤 장면들을 사진으로 남길지 기대 가득한 도로 위를 달리며  수다는 끊이질 않는다.


주차장에 도착해보니 기함할 정도로 수 많은 관광차가 와 있었다. 중국 사람은 왜이렇게 많이 온 걸까. 조용하고 유유자적한 관광은 못하겠다 생각했다. 그래도 괜찮다. 우리의 셔터는 우리만의 시간에 멈춰있을테니까.


파랗고 빨간 그리고 두 가지 색을 섞어 놓은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 사랑스러운 핑크, 그것도 수국이라니!

핸드폰을 켜고 서로의 모습을 찍어주느라 그 좋아하는 수국을 자세히 들여달 볼 겨를도 없다. 그저 수국은 배경일뿐.

최대한 많이 담고 싶었다. 14.000km의 거리를 하루아침에 14mm로 줄여놨으니 지금 이 시간을 이용해 많은 시간을 공유하고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나이 사십 넘어 이렇게 가깝고도 소울이 통한다고 생각할 정도의 친구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카멜리아힐

같은 장소에서  담은 기록, 언제다 추리지.


이 기록은 그저 여행을 끝내고(원래는 매일 저녁 책상에 대각선으로 마주 앉아 일과를 기록하는 거였다) 남기는 일기에 불과하겠지만, 적어도 이 기록은 훗날 그 언제고 들춰보아도 보석같이 반짝거릴게 분명하다.

인생에서 친구와 보낸 일주일, 그것도 제주에서! 함께 꽃을 보고 바다를 보며 적어도 내일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코칭하느라 새벽시간을 반납하고 잠을 줄여야 했다만.)


방주교회

언젠간 한번 구경해보고 싶었던 방주교회.

실제로 노아할아버지가 만든 방주교회가 이랬을까.

그저 교회를 한 번 눈에 담고 싶었지만 고요한 예배당 안에 함께 들어가고, 주변을 함께 걷는 시간 속에서 가톨릭과 기독교, 서로의 신앙의 시간까지 넘나드는 시간이 되었다.


정방폭포

사잇시간을 이용해 정방폭포에 들렀다. 사진 한 장 남기고자 울퉁불퉁하고 미끄러운 돌 위를 건너 다녔다. 발가락에 힘이 들어가도 넘어지지만 않으면 된다. 서로 잡아주며 동시에 외치는 말은 “거기 좀 서 봐 봐. “

예전에 그림으로 그려둔 폭포가 생각나 사진첩을 뒤척거려 깨알 자랑을 했다. 그러고 보니 비슷한 것도 깉다.

남는 게 사진이라고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더 클리프


내 생애 봤던 바다뷰 중 가장 화려하고 멋진 ‘더 클리프’. 비싼 밥값을 내고라도 오래 앉아 있고 싶었지만 쨍쨍 내리쬐는 햇볕을 완벽하게 가려주지 못하는 쉐이드 탓에 엉덩이 털고 일어나야 했다.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서 나눴던 이야기가 속속들이 다 기억나진 않는다.

그저 바로 옆에 앉아 스크린 필터 없이 눈을 보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빙글빙글 도는 시간 같았다.

 


눈으로 담고, 카메라에 담은 시간을 수없이 뒤척거려 본다. 잠시 꿈을 꾸었다. 황홀하고 행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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