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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ul 30. 2024

언제나 함께 오름

레이첼 편



다섯 째날 아침, 일요일 아침이다.

부담 없는 토요일 밤을 보낸 후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일요일 아침이 밝아 오는 게 아쉬웠다. 이제 이틀 후면 제주 여행이 끝나겠다는 생각에 짹각 잘만 흘러가는 시간이 이대로 반복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신선하고 가벼운 아침 상을 차리고, 부스스한 모습, 내추럴한 서로의 모습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채로 마주 앉았다. 여행 내내 우리의 아침을 책임져준 요거트와 블루베리, 삶은 달걀, 한 줌 견과와 비타민까지 빼먹지 않았다. 리나가 준비해 온 <나무 수업>, 내가 준비한 우정 잠옷까지, 그리고 그 전날 구입한 제주의 풍경이 담긴 엽서까지, 우리의 아침은 풍성했다.

 

우리의 첫 코스는 '새별 오름'이다.

그 유명하다는 새별 오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생각보다 짧은 코스였다. 그래도 딱 보기에 다른 오름보다 좀 더 언덕이 높은 것 같기도 하고, 오히려 좋았다. 리나도 나도 걷는 걸 좋아하고 이왕 올라가는 거 1시간 코스까지 괜찮겠다 했는데 새별오름은 길어야 35분 정도 걸렸다. 오전 산책으로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검색하던 중 한 블로거가 오른쪽으로 올라가야 가파르지 않고 좋다고 했는데, 장사 트럭을 펼치던 아저씨는 왼쪽부터 올라가야 내려올 때 경사지지 않아서 안전하다고 했다. 아저씨 말을 듣고 왼쪽부터 올라갔는데 올라가는 내내 가파른 언덕에 헉헉 거리며 욕이 나올 뻔했지만, 나중에 내려오면서 오른쪽으로 올라가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겼다. 그리고, 헉헉 거리는 시간은 15분 채 안 됐던 것 같다. 역시 정상에 오르면 상쾌하다.

새별오름에 올랐으니, 흔적도 남겨야 하지 않겠나. 정상에 오른 흔적 덕에 또 다시 그 시간을 떠올려 본다.  
새별오름에 올랐으니, 흔적도 남겨야 하지 않겠나. 정상에 오른 흔적 덕에 또 다시 그 시간을 떠올려 본다.  

서로 오르면서 사진으로 찍어 남겨둔 사진 덕분에 당시의 우리의 웃음소리가 다시 상기되는 기분이다. 가파른 언덕을 더 빠르게 올랐던 이유는 우리가 도착했던 동시에 관광버스 한 대가 도착했고, 구름 떼 같이 몰려드는 관광객과 아주머니들의 큰 목소리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더 빨리 걸음을 재촉했다. 좀 조용히 걷고 싶었다. 그 덕에 우리 소원대로 조용히 걷고, 풍경과 함께 여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약간은 숨이 차고, 조금은 땀이 나는 기분 좋은 시간이다. 눈에 담을 수 있는 제주의 풍경에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점심은 제주에 거주하는 소리튠 코치님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코치님의 딸까지 함께 다섯이 한 자리에 모여서 식사를 했다. 코치님이 맛있는 영양밥과 생선구이를 사줘서 맛있고 배부른 한상을 받았고, 짧고 굵지만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어제 방문했던 <책방 소리소문>에서 구입한 블라인드 북을 한 권씩 선물했다. 각 코치님에게 어울릴만한 키워드를 골라서 전달했다. 사진에 담긴 모습이 참 예쁘고 다채롭다. 음식 탓일까, 환한 미소 탓일까.  


이후의 일정이 있었기에 오랜 시간 함께하지 못했다.

13일은 결혼기념일이었다. 남편과 함께 특별한 날을 기념했어야 했다. 미안하게도 나는 그날을 피해서 스케줄을 계획하지 않았고 남편은 흔쾌히 괜찮다며 나를 제주에 보내줬다. 그리고, 결혼기념일에 오설록 기프티콘을 보내줬다. 내가 좋아하는 녹차아이스크림, 녹차 디저트, 녹차로 된 음료 세트를 말이다.

"나의 인생의 동반자 나의 아내, 이번 결혼기념일은 함께 하지 못하지만, 또 다른 꿈의 동반자와 맛있게 나누길."

쿨하게 맛있는 기프티콘까지 보내줬으니,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오설록 안에는 여기가 중국인지 한국인지 남아공인지 구분도 안 갈 정도로 중국관광객이 무척이나 많았다. (남아공에도 중국인이 꽤 많다.) 내가 주문해서 메뉴를 받아오는 동안 리나가 얼른 자리를 맡았다. 시끌시끌한 틈에도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동안 했어야 할 이야기,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면서 지금 이 순간도 기록으로 남기자며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었다. 리나는 틈틈이 아이들과 전화 통화를 했는데, 아이들을 향한 시선이 마치 휴대전화를 뚫고 들어갈 것 같았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얼마나 보고 싶을까. 나도 그렇지만, 리나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보다 더 어려서 엄마를 더 많이 찾을 텐데 말이다. 엄마 잘 다녀오라고 보내준 것만 해도 참 고맙다. (안 보내줘도 왔겠지만)


그렇게 앉아서 받아 온 메뉴를 먹고 이야기를 나눈 후 일어나 주변을 걸었다. 남는 건 사진이라고 사진도 찍어야겠고, 좀 걷고 싶었다. 최대한 많은 시간을 걸으며 대화하고 싶었다.


이날 리나는 엘레강스한 니트를 입었는데, 내가 계속 다람쥐냐고 놀렸다. 날개 달린 날다람쥐냐고.  

피식거리며 웃으며 장난을 쳐도 마냥 즐겁게 받아치는 소녀 같은 웃음에 자꾸만 개그 욕심이 났다. 관광객들이 한 번씩 찍고 지나가는 커다란 테디베어에 붙어 우리도 사진 몇 장 찍고, 너무 구도가 재미없으면 나중에 영상 만들고 사진 볼 때 재미가 없다며 다양한 구도로 찍어보기도 했다. 더 다양하게 찍을 걸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제주에 왔으니, 회도 한 번 먹어야 하는데 횟값이 생각보다 비쌌다. 어느 정도 가성비 좋고 맛있는 횟집이면 좋겠는데 어디가 어딘지 찾아봐도 잘 모르겠으니 일단 검색해 보기로 했다. 열심히 손가락 운동을 한 결과 몇 곳으로 좁혀졌고, 믿기지 않는 비주얼과 가격을 보고 정했다. 여기다!

애월밤바다!

이게 전부 1인 4만원 상이라는게 믿어지지 않는 비주얼과 맛. 가성비 최고!

무작정 내달렸다. 그리고 장소에 도착했을 시간이 거의 7시를 향하고 있었다. 문 앞에 들어서자 사장님이 우리는 반기면서 예약했냐고 물었다.

"아니요"

그럴 리 없지 않은가 이제 막 찾아서 왔는데, 전혀 예약 생각도 못했다. 생각해 보니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스끼다시를 먹으면서 40분을 기다리는데 다른 데 찾아가느니 그 편이 낫겠다 싶었다. 그리고 어디 가서 회를 1인 4만 원에 먹을까 싶었다.

사장님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15분이 채 지나지 않아 메인 메뉴가 나왔다. 스끼다시를 다 먹지도 못한 상태에서 메인 메뉴 나왔다. 기분이 급 좋아졌다. 리나와 둘이 한상 가득 받아 들고 우리끼리만 맛있는 거 먹어서 미안하다며 서로의 가족을 떠올렸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남편을 약 올리기 위해 사진을 찍어 바로 전송했다. 마지막 해물탕까지 나왔는데 배불러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서 맛만 보고 입가심을 하고 일어났다. 배부르게 먹었으니 이제 할 일은 바닷가 산책만 남았다. 차를  끌고 애월바다로 갔다.


타이밍도 끝내 준다.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보는 야경. 불빛이 얼마나 밝은지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도 헷갈릴 정도로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불빛이 가득한 밤바다를 보고 있노라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리나랑 함께 보고 있다니 참 신기한 순간이었다.

같이 걸었다.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함께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다. 무슨 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대화의 주제를 바꿔가면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 쉬지 않고 한 것 같다. 그래 놓고도 왜 그때 우리가 그 이야기를 하지 못했냐며 아쉬운 후일담도 나누었다.  이번 여행에서 잠깐이라도 합류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써니, 결국 오지 못했다.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화상 통화로 아쉬움을 달랬다.



순간순간 누군가의 뒷모습을 찍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걸 좋아한다. 본인은 정작 모르는 모습을 나만 보는 것 같은 느낌, 그런 모습을 내가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이 좋을 때가 있다.


주말의 마지막 밤, 이제 하루 이틀 지나면 끝나는 이 시간이 저물고 있어서 이날도 시간이 빠르다는 말만 몇 십 번은 한 것 같다.


하버드에서 어떤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삶을 사는지 연구, 75년간 724명의 인생의 추적한 결과 인생의 행복이 부, 명예 성공에 있지 않고, 친밀하고 좋은 관계에 있다고 했다. 이게 바로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서로의 대화를 통해 교훈을 얻고, 존중하고 배려한다. 사랑과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그런 만남이 행운이고 행복이다. 인생에서 함께 걸을 수 있는 벗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게다가 제주에서 말이다.


우리가 사랑한 제주의 다섯 째날 밤이 그렇게 저물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 다시 코칭의 자리로 돌아가 월요일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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