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보고 좋아하는 아빠 그리고 나
옛말에 딸은 도둑 이랬다고.
결혼하고 친정에 가면 “엄마 나 이거 가져가도 돼?”
묻고는 대답도 듣기 전에 이것저것 주섬주섬 챙기는 나를 보며 “저기 도둑이다!”라고 외치던 아빠 얼굴이 생각나는 지금이다.
도둑을 보면서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을까.
허허 웃는 아빠 얼굴엔 미소 가득이었다.
요즘 내 방에 있던 물건을 찾는데 안 보일 때가 있다. 며칠 전, 별이 방 청소를 하다가 이게 왜 여깄나 싶은 물건을 발견했다. 페이스 괄사 롤러, 종아리 부기 빼주는 링, 눈썹 정리 칼. 전부 미용에 관련된 소품들이다. 나는 책상이나 바닥에 두고도 잘 안 쓰는 물건이라 없어졌는지도 주로 인식 못할 때가 있다. 관심 있어서, 관리하려고 주섬 주섬 사 모은 물건인데 도통 쓸 여유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별이 방에 옮겨가 있는 물건들을 보면서 “도둑이네”이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고 내 얼굴에 아빠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내년이면 중 2가 되는 별이는 부쩍 외모에 관심이 많아졌다.
내가 중학생 때만 해도 귀 뚫고, 파마하는 건 상상도 못 했는데 나는 별에게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관대하다.
“귀 뚫을래? 이런 거 예쁜 귀걸이 하고 싶지 않아?”
“머리 층 내고 싶으면 자르고 C컬 파마 해달라고 해”
지난 6월 한국에 갔을 때 이왕 나온 김에 하고 가라고 부추겼다. 그전에도 남아공에서는 귀 뚫고 싶으면 알아봐 주겠다고 했을 때도 거절하던 별은 뒤늦게 후회를 하는 중이다. 레이어드 컷이랑 파마하라고 엄마가 말할 때 할 걸 그랬다며 내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닌다.
“엄마가 펌 해주고 레이어드 커트 좀 해주면 안돼요?”
이제라도 해달라는 별을 보면서 시간 없다고 둘러대며 혼자 킥킥거렸다. 하지 말라고 말리는 엄마들도 있을 테지만 나는 눈썹도 다듬어 주면서 칼 사용법을 알려줬다. 위험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주의다.
가끔 히스테리컬 하게 신경질 내는 태도만 아니면 별은 야단칠 일이 없다. 오히려 나를 무척이나 잘 도와주는 착한 딸이다. 엄마 밥도 차려주는.
태어날 때부터 내 영양분 다 가져가고, 세상에 태어나 내 마음을 처음으로 다 앗아간 첫째 별이는 이미 도둑이다. 언급하지 않은 것들도 요즘 하나씩 없어져서 찾으면 별이 방에 가있지만, 더러 내 방에 엄마 먹을 것도 하나씩 가져다 놓는 예쁜 도둑이 이제 나보다 덩치도 키도 더 커져버렸다.
- 7시간의 이동 여정 중 차 안에서 쓰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