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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경 Apr 18. 2024

리노에 가시나요?

Umm... I'm not sure yet.

  LA에서 5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주행하면 스톡턴을 경유하여 새크라멘토에 도착하는데, 여기에서 동서방향으로 찢어지는 80번 국도를 타타호 국립공원을 경유하여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주 경계에 위치한 소도시 리노(Reno)에 다다른다. 마치 서부영화인 마카로니 웨스턴에 등장할 만큼이나 썰렁하고 황량한 소도시 Reno는 도회지가 주는 인상과 달리 미국 내에서 이혼 산업이 가장 발전한 도시 중 하나로, 이혼을 원하는 부부들이 이곳을 찾는 경우가 많다. 

  Reno는 네바다주 귀퉁이에 위치하며 이곳의 이혼 법률은 다른 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간단하고 또 신속하기까지 하다. 네바다주 정부는 이혼을 원하는 부부가 현지에 거주하지 않아도 이혼을 신청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기에 많은 부부들이 Reno를 이혼의 도시로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덩치로 견주자면 네바다주는 한반도 면적보다 크지만 2023년 기준 인구는 약 300만 내외에 불과하다. 사막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사는 사람이 적어서 거의 버려진 땅이었고, 서부 개척시대 당시에는 캘리포니아로 가는 통과지점에 불과했다. 정착민이 많지 않은 까닭으로 재정적자에 허덕이던 네바다주 정부는 고심 끝에 새로운 수입원을 찾기 위해 주 전체에 도박을 합법화하는 시도를 하였고, 1931년에는 정책상 파격적인 이혼법을 통과시켰다. 네바다 주에서 6주 이상 거주한 사람이면 배우자 동의 없이도 이혼이 성립되는 매우 인상적인 새로운 이혼법이었다. 이때 당시 주 전체의 인구가 채 10만이 되지 않았기에 주정부는 외부로부터 주민의 유입이 절실하였을 것이다. 

  이 정책의 일환으로 미국 어느 주에 살던 상관없이 네바다 주에서 6주 이상만 거주하고 신청만 하면 바로 법적으로 이혼이 된다는 뜻이므로, 전 미국 내에서 빠른 이혼을 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당시 카운티의 법원이 있던 Reno로 몰려들어와 이 도시는 라스베이거스와 함께 엄청난 특수를 누리게 되었다.

  Reno는 이혼과 도박에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와 변호사 사무실이 대부분인데, 변호사들은 이혼 절차를 단순화하고 고객들에게 법률 조언을 제공하여 이혼 절차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각종 편의를 제공한다. 재미있게도 Reno의 이혼 산업은 도박산업과 더불어 지역 경제에 대단한 영향을 미치므로 이혼을 위해 이 도시를 방문하는 부부들은 숙박, 음식점, 엔터테인먼트 등 지역 산업에 다양하게 소비를 촉진시키고 있다.

  Reno에서는 이혼을 원하는 부부를 유치하기 위해 대규모 이벤트나 프로모션을 주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혼 여행이나 이혼 파티 이혼을 위한 휴가 패키지 등의 이벤트를 통해서 부부들을 끌어들이고, Reno를 이혼의 도시로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Reno는 이혼을 원하는 부부들에게 매력적인 목적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이 도시의 이혼 산업을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시켰다. 그리하여 Reno는 지난 수십 년간 '이혼의 천국'이라는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임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실제로 Reno에서 이혼한 저명인사들의 사례가 있을까? 실제로 Reno에서 이혼한 유명인들이 부지기수 이건만 리우드 배우출신 사례 몇 건만 소개하도록 한다.  

-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와 애바 가드너(Ava Gardner) : 1951년, 이 두 배우가 Reno에서 이혼했다. 이는 그 당시에도 Reno가 이혼의 도시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선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마이크 로니(Mickey Rooney)와 애바 가드너(Ava Gardner) : 애바 가드너는 시나트라와 Reno에서 이혼을 하자마자 마이크 로니와의 결혼했던 걸로 소문이 났지만 얼마 못 가서 그와 또 이혼을 한다.

-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과 제인 와이먼(Jane Wyman) : 나중에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배우 로널드 레이건과 여배우 제인 와이먼은 1948년에 Reno에서 이혼했다.

- 이하(너무 많아서) 생략함 -


  사막에 사는 베르베르인들의 속담에 "사막에서는 그 어떤 것도 실망할 수 없다. 실망은 자신에게만 할 수 있다."는 말과 더불어 "사막을 여행하는 부부는 오아시스에서 이혼하기를 원한다"는 뼈 때리는 얘기도 있다. 잘 살려면 잘 헤어짐도 중요하기에 헤어져야 하는 이유를 애써 복습하는 것보다 어떻게 헤어져야 함이 중요한 변수가 될 수도 있다. 결혼이라는 통과의례가 있다면 의당 이혼의 통과의례도 있는 법이다. 

  비약일지는 모르거니와결혼과 혼 그리고 도박은 동질이다. 패를 까보기 전까지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의 집합이다. 말하자면 행여나, 혹시나, 역시나 가 혼재된 3위 각체의 교집합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누군지에게 리노가 오아시스인지 어쩔지는 모르되, 리노에 가거나 혹은 리노에 가고 싶다면 필시 이혼 때문이거나, 라스베이거스보다 승률이 좋다고 소문 도박장이 즐비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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