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 알레르기

엔트로피를 안주로 소주 한잔을...

by 하이경

어떤 것을 선택하건 그것을 선택한 과정은 물론이고, 그 결과에 따른 대가는 반드시 치러지기 마련이다. 어떠한 선택의 주체가 본인이고 객체가 사건으로 나타난다면 반드시 그렇거나 혹은 아니거나의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은 숙명이다. '홀' 또는 '짝' 내지는 '예' 이거나 '아니오'라는 강요된 두 개의 선택에 이미 제압당한 처지라면 까닭 없이 졌다는 기분이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그러나 선택이라는 묵시적 강요가 부당하기에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아니하였을 경우라도, 시간의 함수는 선택의 객체를 나 몰라라 내버려 두지 않기에 양자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지 아니한 별도의 혹독한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기묘한 사실은 무엇이 되었건 또는 어떠한 사건이든 그것을 선택하고자 하는 순간의 판단은 주체이건 객체이건 이상하게 왜곡되어 비틀려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지긋지긋한 불멸의 원리로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이른바 엔트로피의 법칙이다. 그 종류를 막론하고 선택이란 참이나 거짓의 통로와 연계되어 있지 않고, 부조리의 극치인 엔트로피 현상과 직결되어 있음을 오래전부터 눈치를 챘어야 옳았다.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없는 상황이거나 혹은 공급되던 에너지가 차단된 상태로 내버려 두면 만물은 무질서한 상태로 무한정 확산해간다는 엔트로피는 열역학 제2법칙으로부터 파생된 이론이다. 이는 본시 열의 유동을 추적하거나 또는 열의 이동 상태를 해석하려는 의도에서 고안되었지만, 현재는 우주도 영원할 수 없다는 사고 실험을 증명해내는 도구로 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E_sun_1280.jpg

삼라만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혼돈(무질서) 상태가 자연적으로 증가하게 되는데, 보다 쉬운 표현으로 인간이 죽었다는 개념을 공학적으로 정리하자면 엔트로피가 무한대로 증가하여 더 이상 증가할 수 없는 포화상태를 말한다. 이를테면, 비록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상태일망정 공급된 에너지를 더 이상 수용할 수 없을 만큼 증가된 엔트로피의 포화상태를 죽음으로 해석한다는 뜻이다. 태양계를 포함한 우주도 이 법칙으로부터 예외가 될 수 없으므로 결국 한없이 무질서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무질서의 상태가 완전히 포화가 되면 태양도, 별도, 지구도, 그 안에서 아등바등하는 인간과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발산하여 사라지게 된다.

나는 이 엔트로피에 관한 불확실성의 여부를 내내 고민해오다 이것을 반증해보려는 대찬 시도를 하였건만 멀쩡한 허사였고 수십 년 동안 그 답을 찾지 못하였다. 열역학적 정의로 엔트로피는 클라우지우스 방정식인 dS=δQrev/T라고 표현되지만, 이는 절댓값이 아닌 미분 값으로 미소 변화에 대해서만 정의되었기에, 실제 자연에서 물리적인 현상으로 작동하는지 마는지의 여부는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이 방정식에서 T는 온도를 의미하지만 온도는 시간에 종속되는 설계인자라서 무조건 t>0이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t <0 인 조건을 대입하면 계산 값의 결과는 판이하게 변할 수 있지만 이는 영락없는 오류에 불과하다. t <0 인 조건이 성립하려면 시간은 음수인 허수(i)가 되어 과거로 흘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즉, 실험물리학 측면에서 시간여행이란 일반상대성 이론에도 불구하고, 만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 이지 현실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거짓말이다.)

허접하기에 더욱 유명해진 증명으로 '내일 아침 해가 뜰 확률'을 실제로 계산했던 프랑스 수학자 라플라스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며, 나름의 도발과 설익은 추론에 위안을 삼아 보지만 사실은 위험하고 어리석은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뭔지 그러한 이론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이미 탄탄하게 정리된 공학 원리에 깊숙이 접근하여, 논리적 오류를 발굴해서 반박해야 하므로 괴델이 발표한 불완전성의 정리를 반박하기 만큼 어렵고 피곤하다.

열역학의 거대한 업적에 치명적인 외상을 가하여 실패한 학문이라는 반박의 칼을 품어온 내가 바보였음은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는 미분방정식의 해는 아직도 나를 괴롭힌다.

그렇다고 한들,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치루어야 할 그 어떤 대가가 두렵기에 판단과 결정의 마지노 앞에서 뭉기적 거리고, 한 때 넘어서는 아니 될 그 선을 넘지 못하였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윽고 회한의 고리에 연결되고야 마는 법. 시점을 되돌려 생각해보면 당시에 넘어서는 아니 될 선이 오늘 내가 느끼는 후회와 맞바꿀 만큼 그리도 대단한 무엇이었을까...? 따지지 않고서도 금세 눈치를 챌 수 있는 선명한 사실 하나는 그리도 대단한 그 무엇이란 애당초 없었고, 다만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아니한 인위의 도덕과 규약의 거미줄이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내모르는 그 무엇의 대가가 존재한다면 속임수 팽배한 세상이 나를 속였거나, 속임수를 모르는 내가 세상을 속였거나, 이도 저도 아니라면 엔트로피에 징그럽게 묻어있는 시간의 함수가 불쌍한 나를 기만하고 있었거나... 짐작하기 어렵지만 이들 중에 하나임은 자명하다.


엔트로피를 안주로 소주를 마실 수 없다면, 필시 열역학 알레르기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전 02화추억이라는 이름의 찻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