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역적 휴지통에 관한 소고
빌어먹을 엔트로피 같으니...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지만, 개략 나이 마흔을 넘겨 철이 든(?) 몇 년 이후부터 '휴지통'을 비울 때면 성가심보다 곤혹하고 씁쓰레한 느낌을 견뎌야만 했다. 지저분한 상황을 청결하게 정리하였으니, 이내 상쾌하고 후련해질 것 같아도, 에헤! 그런 느낌이 전혀 아니었다. 과감하게 버린 들 전혀 아까울 게 없고 반드시 처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내 주변의 자질구레한 쓰레기가 분명하건만, 수상하게도 마음의 무게가 불어나 벽돌 한 장 정도의 중량만큼 부담으로 증가되는 야릇한 기분은 딱히 뭐라고 꼬집어 표현해낼 방법이 없다.
여기에서 말하는 '휴지통'이란 컴퓨터의 운영체제 속에, 그것도 바탕화면 최상단에 리사이클링 로고를 달고 징그러운 아이콘으로 대차게 박혀있는 그 '휴지통'을 의미할 수도 있고, 집안의 어느 구석이든 또는 내 집무실의 적당한 위치에 떠억! 제자리를 점유하고 있는 흔하디 흔한 물리적 휴지통을 의미한다.
휴지통을 비우고 나면 나는 필시 그것이 조만간 다시 채워질 것임이 개운치 않고, 또 비움질을 해야 하는 반복되는 행위의 상태 자체를 쓸데없이 염려하곤 한다.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쓰레기가 채워지고 이내 휴지통은 또 비워져야 할 처지에 놓일 것이 분명하고, 파기되거나 수정되어 구겨지지 말았어야 할 내 삶의 족적들과 방향성에 오류가 있거나 채용할 수 없을 정도로 허접한 흔적의 자질구레한 출력물들이 죄 없이 가득 채워질 것이다. 심지어 내 심장의 박동 몇 조각들 마저 깍두기 양념처럼 아무렇게나 버무려져 느닷없이 휴지통에 쑤셔 박힐 것이다. 채워짐의 진정한 의미를 터득하기 전 별다른 생각이나 일말의 의심도 없이 그것들을 깨끗이 비웠을 때 나는 종종 청량함을 느꼈건만, 자꾸 비워야만 하는 반복되는 채워짐 현상을 수 없이 되풀이하며, 가득 참에서 비워짐으로 연계되는 상쾌함보다 더 이상 채우지 못하고 비워질 수밖에 없다는 포괄적 의미가 어느 순간부터 이상하게 나를 괴롭혀 오기 때문이다.
누구의 인생이 되었건 그들에게는 B와 D사이에 C가 있다고 말한다. 구름처럼 둥둥 떠다니는 이 말은 Birth(탄생) Death(죽음) 그 사이에 Choice(선택)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살다보면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 놓이기 마련이고, 그리하여 자신의 신념대로 선택하고 결과에 따른 책임을 진다. 이는 각자가 선택한 각자의 결단이고 각자의 책임으로 귀착이 된다. 그러한 선택의 순간에 누구나 자신의 선택을 믿고 최선을 다하지만 결정한 선택이 항상 바르고 또 옳은 것 만은 아니다.
비록 자신이 바르지 아니한 선택을 하였다 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더 나은 방향을 위해 최선을 다함은 물론이다. 어느 누구에게나 선택은 대부분 적지 아니한 후회를 수반하기도 하지만, 기어코 스스로의 선택만이 자신을 구할 수 있다. 이는 희망처럼 존재하지 아니한 존재를 믿고 있는것과 다름이 없다. 희망을 가지라는것도, 불가능한 희망을 품어보라는것도 알고보면 죄다 거짓말이다. 애초에 그런 것은 없었다. 세간에 성공한 인생이라는 사실도, 시점을 계량하여 정밀하게 분석해보면, 애매한 거짓말의 비선형적 조화이고 잠시 선택에 유리했을 따름이다. 누구나 혹은 무엇이 되었건 완벽한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그 후 나는 휴지통을 비울 적마다 낯익은 울적함을 인내하여야만 했다. 비로소 비워야만 다시금 채울 수 있음을 모르지 않거니와, 그동안 수없이 비워왔던 휴지통의 콘텐츠에는 효용가치를 상실한 각종의 정보문건이나, 이제는 수명을 다하여 망가지고 버려져야만 하는 내용물을 포함하여, 사기당한 내 청춘은 물론이고 파투 시키지 못하였던 케케묵은 젊은 날의 선택들이 거지처럼 옹크리고 앉아 지금의 나에게 파렴치한 적선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그럴까? 그래... 그것들이 죄다 허튼 수작의 사기는 아니었을 수 있다. 해체와 동시에 설계수명을 다하는 택배 상자 속의 뽁뽁이처럼, 흘러간 모든 시간은 제 나름대로의 의미를 충분히 지녔으니...
분명한 건 지나치면 다시 오지 아니할 시간들을 뜻 없이 죽여야만 했던 내 미필적고의 행위도 반드시 포함되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거부할 수 없기에 부득불 인정해야만 한다.
함부로 휴지통을 비우되, 그 안에 가득한 내용물은 곧 내가 버린 멀쩡한 시간 덩어리며, 삶의 흔적이자 나 자신의 역사임을 모르는바 아니다.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휴지통을 비울 때마다 나 역시 언젠가는 저런 쓰레기가 되어 가차 없이 비워짐의 처형을 당할 것 임을 결코 의심치 아니한다는 점이다.
이런 옘병할! 빌어먹을 엔트로피 같으니...
선택한 항목의 파일을 전부 삭제 하시겠습니까? 잔인한 질문이지만 '예' 혹은 '아니오'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섬뜩한 질문의 메시지가 미심쩍은 나머지 '취소'를 선택할 경우라도, 휴지통의 쓰레기를 왜 잔존시켜야 하는지의 이유 없는 딜레마가 또 나를 심란하게 한다. 저 징그러운 휴지통을 없에버리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