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관능과 불규칙한 표현의 자유로움
역사상 위대한 노래 500곡(The 500 Greatest Albums of All Time)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알려진 폴 사이먼의 'The boxer' 가사에는 비정한 아포리즘이 내포되어 있다. 생각 없이 흘려듣자면 지극히 평범한 내용이지만, 가사에 인용된 유려한 문장과 은유적인 스토리를 지닌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향을 떠나 도시로 올라온 가난한 소년이, 나름대로 꿈을 안고 험한 도시에서 구직의 기회를 엿보지만, 그를 불러주는건 7번가에 즐비한 창녀들 뿐 올바른 직업을 얻지 못하고 헤매던 와중에 돈을 많이 벌게 해 주겠노라는 감언이설의 꼬드김에 넘어가 권투선수가 된다. 그러나 그를 고용한 사기꾼(매니저)에게 대전료를 착취 당해가며 여전히 힘들게 살아간다. 이것저것 죄다 팽개치고 떠나온 고향으로 되돌아가고 싶어도, 그래 본들 지겨운 실업자 신세를 면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도 없기에 여전히 도시의 권투선수로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내심은 언제이건 고향으로 돌아갈 꿈만 꾸고 있다는 내용이다.
싱어송라이터인 폴 사이먼이 만들어낸 이 노래는 자신의 경험담을 투사하여 가사를 꾸려 작곡을 완성하였노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가사에 등장하는 "Workman's wages" 또는 "Seeking out the poorer quarters" 등은 성경 구절에서 인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장중한 코러스와 마치 폭파되는 듯한 비트를 배경으로 반복되는 후렴구인 "Lie la lie"는 그야말로 압권의 메타포를 지녔다고 생각한다. 이 노래는 재미있게도 지구 상에 발표된 현존하는 노래가사 중에서 “거짓말”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들어간 노랫말이기도 하다. (가수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라는 곡이 이 바닥 순위로 2위가 될성싶기도 하지만, 참고 할만한 문헌이나 이를 뒷받침 할 근거는 없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이면, 'The boxer'가 수록된 폴 사이먼의 LP를 턴테이블에 걸어두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던 기억이 있건만, 애석하게 아날로그의 시대는 디지털로 바뀌어 지금은 아무 때고 Web의 콘텐츠를 뒤적이면 언제나 들어볼 수 있는 명곡으로 남아있다. 물론 음질은 보증할 수 없다.
십수 년 전 탱고의 본고장인 남미의 아르헨티나가 아닌 이탈리아 베로나의 한적한 선술집에서 탱고 풍으로 편곡이 된 'The boxer'의 연주를 듣고서 나는 정말 충격에 빠진 적이 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율조로 편곡 된 박자의 분위기는 고사하고, 기가 막힌 조바꿈의 반전이 있었기에 세상에! 저렇게도 편곡이 가능하구나를 속으로 연발하였다.
스스로 전문 악사가 아니라 아마추어 악사라고 소개하며, 즉흥으로 'The boxer'를 연주하던 반도네온(인지 아코디언인지 나로서는 구분이 안간다.) 악사에게 내심 경탄해 마지않았다. 진정한 재창조란 저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임을 실감하던 찰나였다.
사실 나는 중년 이후부터 아메리칸 팝보다는 칸초네나 밀롱가(Milonga)의 탱고를 감상하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러나 먹이 구하는 테마가 무엇보다 우선이고, 그놈의 일에 치다보니 멋들어진 밀롱가 클럽이 국내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뿐더러, 정작 관심을 지니고 이 클럽을 찾아본 적도 없다. (차라리 Web이 편하고 정식 밀롱가가 아니라서 경제적이기도 하다) 밀롱가는 탱고를 즐기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 클럽들은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고 있는데 탱고 페스티벌은 이런 밀롱가를 기반으로 하여 행사가 주최된다고 한다. 밀롱가마다 성격이 다르고 분위기가 달라서 유명한 밀롱가는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기도 한다는데 아직 국내에는 유명세를 떨치거나 알려진 밀롱가 클럽이 있다는 소문은 들은바가 없다.
탱고는 고혹스런 매력과 규칙인듯 불규칙한 발칙함이 있다. 내가 탱고를 사랑하는 분명한 이유는 스탭에 얽매이지 아니한 표현의 자유로움은 물론이고, 절절하게 관능적이면서도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아니한 서글픈 춤곡이라는 기막힌 반전의 모순 때문일 수 있다. 또한 스탭이 완벽한 탱고만큼 재미없는 인생도 없다. 스탭이 꼬이고 익숙한 몸짓이 어정쩡한 찰나, 그 때야말로 황홀한 인생의 반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발을 밟혀 봐야만 제맛을 알 수 있고, 죽기 전에 한번쯤은 추어보고 싶어한다는 탱고를 가르쳐 드릴까요...?
항간에 전설의 탱고로 알려진 '포르우나 카베자'를 소개합니다. --> https://youtu.be/F2zTd_YwTv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