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르타주: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그렇게 죽었다
몇 년 전, 평소 조용하던 아내가 뜬금없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를 도모한 구체적 이유가 뭐냐고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헛소리 그만하고 당신이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순순히 자백하라는 것이었다.
이게 뭔 날벼락이냐 싶었지만, 나는 그런 사실이 없으므로 혹시 정권 찬탈이 목적이라면 깨끗이 자리에서 물러나겠노라고 능청을 떨었다. 왜냐하면, 아내는 아무런 실체적 증거도 없이, 오로지 자기가 수집한 정황 증거만으로 불쌍한 가장 노릇으로 피곤에 지친 나를 호되게 몰아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정말이지 옹색한 변명이 아니다. 벽돌을 몇 개쯤 쌓아 올렸다 하여 무슨 멀쩡한 건축물이 될 수 없듯, 의심되는 사실을 몇 개 모았다고 해서 진실이 될 수는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허구헌 날, 출장을 핑계로 내 전화를 안 받는 것은 그렇다 쳐요! 근데, 전화가 오면 왜 화장실로 피신해서 전화를 받는 건데? 또 내가 메시지를 보내면 답을 안 하고 왜 자꾸 씹는 건 또 뭐야?"
으윽... 하기사 듣고 보니 아내의 말도 다소 이해가 되지만, TV 잡음을 위시하여 주변 소음을 피하려고 화장실이나 베란다를 택한 상황을 저토록 확대해석을 하다니... 아무리 그렇기로, 전혀 이유가 안되는 불충분한 사실을 동원하여 난데없이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점이 나로서는 퍽 억울한 일이었다. 아내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단 나의 행적이 근래에 너무 미심쩍고 의뭉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며, 짐작은 가지만 딱히 외도라는 확신이 안 서는 여하튼, 어설프게 내 동선을 은폐하려 했다는 점이다.
이건 순전히 아내의 추리일 뿐이고, 내 입장에서는 순전히 모략의 수준이었기 때문에, 오죽 어처구니가 없으면 뾰족하게 날이선 송편으로 목을 찔러(?) 자살을 하고 싶을 만큼 무죄 입증이 절실한 처지였다. (잠잠해진 지금도 그 거짓말이 사실인지 재심청구가 필요하다는 아내의 입장을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글은 장르상 실화에 근거한 '르포르타주'이기 때문이다)
원래 쿠데타의 목적이 정권을 찬탈하고자 저지르는 행위라서, 쥐고 있는 권리를 그냥 넘겨주기만 하면 사태 해결이 생각보다 수월한 방법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뭘 모르고 하는 얘기다. 내가 핵가족으로 구성된 작은 둥지에서 틀켜쥐고 있는 쥐꼬리 권력이라야, 말이 권력이지 서열 4위? 아니다, 만약 강아지와 고양이가 있었다면 분명 5위 내지는 6위의 서열로 밀려났을 것이다.
가장으로서 최고 권력의 상징이라는 리모컨 점유권은 이미 박탈을 당한지 오래전이고, 있으나 마나 한 생활경제 교섭권, 대소사 참여 결정권, 흡연을 위한 베란다 점유권 따위 등등의 그야말로 형편없고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권한만 있을 따름이기에, 이걸 넘겨주거나 이양을 한다고 한들 얼씨구나 좋아라 하고 잠잠해질 아내가 아니다.
남의 일이고 그저 우스개 소리라고 쉽게 넘기면 그만일 것으로 안다면, 그것 역시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른다. 살기 등등한 눈빛과 어떤 년인지 이실직고 하라며, 밑도 끝도 없이 다그치는 가혹한 인격 고문을 당하는 사람의 입장은 방어 자체가 힘에 부치는지라 직접 체험해보지 않고서는 누구도 이 절박 함을 알 수 없는 법이다. 살다보면 한번쯤은 당하는 경우라지만, 이런 경우를 당할 수 있음을 짐작도 못했다.
이 시점에서 구차한 변명이나 빈약한 알리바이 따위로 형편을 앞세워 대의를 내세우다 보면, 더욱더 쿠데타의 정당성을 직, 간접적으로 입증해주는 함정으로 추락하기 마련이다. 또한 적지 않은 세월을 생존해온 경험에 미루어 추리를 해봐도, 강력한 부정의 부정이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도깨비 마냥 전혀 의도치 않게 강한 긍정의 모양새로 둔갑이 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막강한 화력인 오해의 무기를 앞세워, 저돌적으로 감행한 쿠데타의 객체는 선량한 가장이자 남편인 나 자신이었기에, 이 대목에서 체면을 필두로 기를 쓰고 저항을 한다면 아내가 무차별하게 난사하는 총질에 정서적 치명상을 입거나 사망이나 다름없는 개망신을 자초할 따름이었다. 이쯤 되니 나름 심각한 고민이 될 수밖에 없고, 이 상황에서 처신을 잘못하게 되면 졸지에 남편으로서의 권위를 가차 없이 박탈당하여 이혼의 파국으로 치닫거나, 파렴치한으로 낙인이 찍혀 아이들의 친가와 외가는 물론이고, 여차하면 나를 알고 있는 내 주변의 소시민적 사회로부터 생매장을 당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멀금하고 날카로운 판단이 앞섰다.
이 암담한 포위망으로부터 탈출하고자 나는 고심 끝에 특단의 대책을 세웠는데, 따지고 보면 대책이라는 게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쿠데타의 객체인 내가 잠수를 타고 사라지게 되면, 주체인 아내는 당황하여 제풀에 지칠 것임은 당연한 사실이 될 것이고, 의당 복잡한 오해로 야기된 쿠데타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폭풍이 가라앉듯 침잠하여 차츰 상황은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사태의 모든 것은 다 시간이 해결을 해줄 거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막연하나마 솔로몬의 잠언을 차용하여 그리 판단하는 것만이 최선의 대책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어디로 잠수를 타고 사라져야 할까? 얼핏 생각할 때 별것이 아닌 듯 보였건만, 곰곰이 따져보니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 잠시 사라져야 할 곳이나 방법이 실로 마땅치 않았다. 잠수라? 말이 쉽지 실행은 결코 손바닥 뒤집듯 쉽지 않은 문제가, 사내로서 그것도 남편으로서 떳떳하지 못한 비겁한 잠수 행위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이 우울할 뿐만 아니라, 거듭 생각할수록 치사하기만 한 도피 행위! 이것 말고는 차선의 대책이라는 게 전혀 없음을 알고부터 나는 더욱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쯤 되면, 차라리 아내의 고문에 굴복하여 억울하지만 팔자에 없는 시나리오로 적당하게 허위 진술서를 써야하나 어쩌나를 고심하던 처지에 구세주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