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한 노스탤지어의 단편
형광등이 제 빛깔을 스멀스멀 잃어가고, 별도의 환기창이 없는지 열린 둥 만 둥 어설프게 벌어진 창문 커튼 틈 사이로 한참 물간 유행가 자락이 시끄럽게 들린다. (그 벤치 위로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어쩌고... )
연탄난로의 안전망을 포옹하듯 끄집어 안고 있는 다방 레지는 요란한 열차의 기적소리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고, 작업복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음 직한 낡은 소파에 깊이 몸을 파묻고 나는 더럽게도 맛없는 파출부 커피(커피 3+설탕 2+프림 1)를 홀짝이며 구멍 뚫린 노스탤지어의 단편 속으로 기어 들어간다. 누르딩딩, 달착지근 쌉쌀한 커피... 이 빌어먹을 커피의 풍미나 아찔하고 찝찝한 찻집의 상황들은 낭자하게 찢겨나간 내 추억의 한 자락과 흡사하기만 하다.
추억은 씹어 먹어야 제맛이 난다는 믿거나 말거나의 얘기가 있지만, 도대체 그 추억이라는 이름의 찻집은 내가 지닌 추억이란 추억은 모조리 산산조각을 내고야 마는 기막힌 분위기와 엉터리 커피맛으로 하여금 당시 내 기분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강촌에는 추억이라는 이름의 괴상망측한 노털 찻집이 있다. 씹어먹을 수 있는 추억이라는 추억은 죄다 기억에서 몰아내고야 마는, 이를테면 얼토당토않은 눅눅한 분위기 하며, 격에 걸맞지 아니한 제목의 추억이라는 이름의 찻집이 예전 역사에서 그리 멀지 아니한 철길 건너 모퉁이에 자리하고 있다. 아무튼 분위기가 납량특집만큼이나 괴상하기는 해도, 나는 이 찻집의 다른 면모가 못내 좋아서 아직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으흐흐.. 도저히 황당하고 격에 걸맞지 아니하는 이름, 그냥 추억이라는 찻집의 이름이 멋들어지다고 생각되기에 언제고 강촌에 가면 한번 즈음 다시 찾고 싶은 애매한 증오의 색다른 추억을 소유하고 있다.
강촌에는 추억을 묻어두고 싶은 곳이다. 아주 꼭꼭 깊숙이 숨겨 묻어두고 심난할 때면 훌쩍 그것을 꺼내보려 그냥 춘천행 열차로 떠나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그래 그곳에 가서 추억이라는 이름의 찻집을 찾아 (아직도 그 찻집이 있을지는 의문스럽지만) 삼박자 파출부 커피 한잔으로 또 다른 야릇한 추억 하나를 더 만들어도 좋을 일이다. 추억을 추억에서 만들어 추억에 파묻어 둔다면, 그게 얼추 괴상한들 무슨 상관이랴!
아마 추억의 계량 단위는 킬로그램이 아니라, 근이나 관일 게 틀림없다. 왜냐하면 추억이라는 이름의 찻집에서는 추억이라는 풍미의 찝찝하고 맛없는 커피를, 노른자 옵션을 포함해서 오백 원에 팔고 있었거든...
무려 사십여 년 전의 기억이다 보니, 시대와 한참 거리감이 있는 에피소드이다. 그래서 요 근래 일부러 그 찻집을 다시 찾아보았지만, 어설픈 기대는 늘 기대로만 수렴한다는 예측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토록 애증을 유발하던 옘병할 찻집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흔적마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