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포리컬 패러독스

꿈은 심을 수도 캐낼 수도 버릴 수도 있다.

by 하이경

내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에 하늘을 날았다. 그리하여 지상으로부터 그리 높지 아니한 창공에서 지상을 보며 땅의 뜻을 이해하였을지도 모른다. 200m 상공에서 지켜본 지상의 풍경 소감을 아들은 무척이나 신기해하였고 쉽게 표현하기를 사양하였다. 그 녀석에게 창공의 존재란 퍽이나 흥미로웠을 게 분명하다. 아마 아들은 그날의 비행을 평생 간직하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아들은 지금 삼십 대 초반의 성인이 되었고 그때의 기억을 혹여 망각하였을 수도 있다. 꿈은 간직하는 것도 중요 하지만 심고 또 가꾸며 그 꿈을 캐내는 일은 더욱 더 중요하다고 본다. 나는 평소 아들에게 장난 삼아 이렇게 질문을 해왔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자라서 무엇을 하고 싶으냐?"

"비행기를 조종하고 싶어요!"

"그렇다면 그것은 네 직업이 되겠구나. 그것 말고 정작 이루고 싶어 하는 네 꿈을 얘기해보렴."

"내 꿈은요...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것 그거예요!"

"......."

아이가 말을 배울 무렵부터 내가 했던 질문이자 초등학교 오 학년으로 성장한 그때까지 되풀이되는 질문과 대답이 이렇고 보니, 나는 아들의 꿈을 심어 주기로 작정하고 비행클럽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꿈을 향한 도전이란 실로 보잘것없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기 마련이다.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비행을 경험한 것은 이십 대 초반이었고 당시 경이로움은 실로 안타까울 정도였는데, 그에 비하여 내 아들은 제 아빠가 체험한 경이로움을 이십 년 이상 앞서 체험한 샘이다. 초경량 비행기는 2인승으로 무게는 250 킬로그램 이하의 중량으로 매우 가벼운 동체를 지녔지만, 비행 수칙을 세세히 알고 보면 상당히 안전하기도 하다.

제 아빠가 조종하는 초경량 비행기를 타고 마음껏 창공을 비상하는 날이 먼저 일지, 혹은 내 아들이 조종하는 비행기를 그 옆에 내가 타는 날이 먼저 일지 아직 나는 짐작하기 어렵다. 아무래도 좋다. 꿈은 심는 것도 좋지만 캐내는 것 또한 좋은 것이다.


제 아비처럼 고독한 엔지니어의 길에 접어들어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는 아들은 이미 꿈을 버렸을지 모른다. 그래도, 이제는 취미로서 언제든 소년 시절의 꿈을 캐낼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