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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경 Dec 12. 2023

위조품에는 진품의 미덕이 있다

사랑에도 반듯한 진품이 있을까?

  공기역학적 스타일의 차량 설계(Design) 역사에서 폭스바겐 비틀은 아돌프 히틀러의 아이디어로 알려져 있다. 나치의 수장이던 히틀러의 아이디어가 어떻게 공기역학적 디자인의 아이콘이 되었을까? 이것은 역사적 사실일까? 조작된 역사일까? 미안하지만, 이것은 절반의 사실이자 세탁된 역사이다.

  항간에 알려진 비틀은 오스트리아 디자이너 에르빈 코멘다(Erwin Komenda)의 친근한 스타일과 페르디난드 포르셰(Ferdinand Porsche) 박사의 혁신적 엔지니어링을 통해 역대 베스트셀러 자동차가 되었다. 비틀의 생산량은 1972년을 기점으로 미국의 헨리 포드(Henry Ford) T형 모델의 생산량을 능가하기에 이른다. 

  여기까지는 각종 상업적 메거진과 문헌에 대거 등장하는 포장된 허위 사실이고 포르셰 브랜드의 차량이 명차이거나 말거나 죄다 허튼소리다.

  모든 국민들이 차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공약과 함께, 1933년 정권을 잡은 히틀러는 차량 설계자인 포르셰 박사에게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만족하는 새로운 개념의 차, 즉 국민차의 개발을 의뢰했다.


1. 어른 2명과 어린이 3명이 탈 수 있고, 1리터의 연료로 14.5km 이상의 주행을 보증해야 한다.

2. 차량의 최대 설계 시속은 100km의 고성능이지만 고장이 없어야 하고 정비하기 수월해야 한다.

3. 차량의 값은 1천 마르크 내외(당시 1천 마르크는 오토바이 한 대 가격)로 저렴해야 한다

히틀러가 직접 스케치하여 포르셰에게 전달하였다고 알려진 비틀의 컨셉

  세 가지의 제안요청서 즉, RFP(Request For Proposal) 모두 당대의 기술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설계 조건이었다. 당시에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이러한 어려운 조건을 만족시키며 탄생한 것이 바로 공기역학적 유선형 디자인의 그 유명한 '딱정벌레(Beetle)'였다. 하지만 1939년 제2차 대전의 시작으로 공장에서 조립 중이던 국민차는 대중에게 공급되지 못하고, 급히 군용차로 변경되었다. 전쟁을 염두에 두었던 히틀러의 전략이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비틀의 디자인과 불후의 명성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조작된 역사는 무엇일까? 제안요청서를 접수하여 비틀을 개발한 장본인이자 폭스바겐을 설립한 포르셰 박사부터 조명해 보자. 그는 10대 소년시절부터 기계에 관심이 있어 비엔나 공과대학에서 청강생으로 기계공학과 관련한 몇 번의 수업을 들은 것이 그가 배운 공학수업의 전부였다. 하지만 출중한 기술개발의 공로와 그 바탕으로 1916년 강의를 훔쳐 들어야 했던 비엔나 공과대학교에서 명예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24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공대에서 명예박사 학위 및 명예 교수직을 받았으며,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기계공학과 석좌교수, 오스트리아 빈 공과대학교 기계공학과 전임교수, 뮌헨 공과대학교 기계공학과 초빙교수를 역임하며 그의 명성은 널리 퍼지게 된다. 디플로마(Diploma) 학위나 논박(論博)도 아닌 껍질뿐인 명예박사 학위로 대학교수의 직분을 부여받았으니, 소문대로 히틀러의 전폭적 지원이 있었건 말았건 어찌 되었든 간에 기계공학에 있어서 만큼은 대단한 수재이자 엔지니어임은 틀림이 없다.

  그의 흑역사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나치정권의 동조 및 부역과 더불어 확대되는데, 1937년 나치 친위대 슈츠 슈타펠에 입대하여 상급대령까지 승진한다. 상급지도자가 된 포르셰는 체코의 자동차 회사인 타트라 모델 T97을 있는 그대로 카피하여 '딱정벌레(Beetle)'를 만들게 된다. 역사적 사실은 히틀러가 폭스바겐의 대표 포르셰에게 디자인을 발주했던 것은 틀림없되, 포르셰가 체코 자동차회사의 디자인을 불법으로 카피해서 차량을 생산하기 시작했던 것까지 사실이며, 자동차 설계의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세기의 디자인으로 평가되것도 비틀이다.


  당시 자사의 디자인을 눈뜨고 도둑맞은 체코 자동차 회사인 타트라(Tatra)는 포르셰가 여러 디자인 특허, 특히 히틀러가 존경했던 오스트리아 엔지니어 한스 레드윈카 (Hans Ledwinka)의 디자인 특허를 무단으로 침해했다고 주장했고, 타트라는 국제사법재판소에 법적 고발조치를 취했지만 히틀러는 오스트리아를 침공하여 공장을 점거하고 한스가 디자인한 차량의 시제품(Prototype)을 공개 전시에서 전격 금지시켰다. 

  그러나 진실은 언제이고 밝혀지는 법, 종전 이후 1961년이 되어서야 폭스바겐은 법정 밖 합의를 통해 타트라에 상당한 금액을 지불했다는 증거가 있다. 디자인을 절도한 대가로 뒤늦게 상당한 수준을 지불하였다고 한들 그때쯤에 폭스바겐의 비틀과 포르셰의 브랜드는 이미 세계의 시장을 완전히 장악한 이후였다. 푼돈 얼마에 위조품과 진품의 자리가 완전히 바뀐 샘이 된 것이다.


  진품을 훼손하여 깔끔하게 세탁한 위조품이 있다면 세탁되어 날조된 인간도 있을까? 물론이다. 이본 셰라트의 저서 <히틀러의 철학자들>에서 언급한 내용에는 나치에 사상적 근거를 제공 했으면서도 비난을 받기는커녕 위대한 철학자로 추앙받고 있는 지식인들에 대해 날 선 비판을 가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의 거두 마르틴 하이데거다. 탁월한 지성과 카리스마로 존경받았던 하이데거는 1933년 초 히틀러의 나치당에 들어간 뒤 히틀러와 나치의 활동을 미화하는  완장을 차고 앞장섰다. 심지어 헌신적인 스승으로 자신을 프라이부르크대학 교수로 밀어준 현상학의 창시자 에드문트 후설을 비(非) 아리아인 이라는 이유로 대학에서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다.

  하이데거는 꼬박꼬박 나치의 당비를 내며 1945년까지 나치 당원자격을 유지했다.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나치의 지적 히어로이자 슈퍼맨이었던 하이데거는 2차 대전 후 철저한 경력 세탁을 통해 면죄부를 받았을 뿐 아니라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하이데거의 제자이자 정부(情婦)였던 철학자 한아렌트는 유대인 수용소를 탈출해 미국으로 망명한 뒤 사회악과 폭력의 본질을 탐구한 저서 <폭력의 세기>를 통해 전체주의를 통렬히 비판하였다. 세간의 평가로는 나치즘과 파시즘, 스탈린주의를 가장 탁월하게 해석한 철학자로 불리지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함에 대한 보고서>라는 저서로 명성을 얻는다.                                       

젊은 시절의 한나 아렌트 Hannah Arendt


  나치당이 정권을 장악할 때 하이데거는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이 되었고, 아렌트는 유대인의 나치 탄압으로 미국 망명을 떠나며 둘의 관계는 잠시 끊기지만,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치전범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아렌트는 하이데거가 전범은 아니라며 그를 적극 변호하고 지지한다. 이후 아렌트와 하이데거는 죽을 때까지 서신을 주고받았으며, 아렌트는 유대인 출판업자들과의 끈적한 인맥을 이용해 하이데거의 경력 세탁에 결정적인 역할을 자처했다. 

  정치철학자로서 나치헌법을 작성했으며 히틀러의 법률가로서 부와 명성을 누린 카를 슈미트와 나치 정권의 탄탄기초이차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철학자 하이데거, 이런 철면피한 학자들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이른바 경력 세탁을 통해 면죄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까지 전 세계인에게 존경받는 대 학자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은 묘하게 우리 사회의 어떤 부분과 자연스레 중첩된다.


  하기사, 제265대 교황(2005~2013) 베네딕토16세 슈츠 슈타펠에 버금가는 우상화 교육기관이던 히틀러 유겐트에서 열성으로 활동했던 기록이 있고, 나치와 상관이 없지만 맥락상 유사하게는 한국의 김수환 추기경도 일제강점기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복무하여 독립군에게 총질을 한 기록이 있다. 

  역사란 위조된 승자의 기록과 편집으로 짜깁기된 누더기란 말인가? 아니면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진품 매운탕의 미더덕인가? 역사란 개인의 인생만큼이나 가벼운, 시류의 격랑에 저항할 수 없었 불가항력의 무엇 이었거나 내일이면 사라질 망각의 깃털처럼 가벼운 것이다. 강자가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는 것이 강자라는 찰즈 다윈의 역설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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