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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행시 Nov 17. 2022

수능이 온다

준비하는 사람들

  수능!

 대한민국 고등학교 삼 학년 학생, 그리고 재수생에게 너무나 중요한 시험이다. 매년 11월만 되면 ‘수능 한파’, ‘시험 난이도 분석’, ‘응시생’ 등등 수능과 관련한 기사들이 온갖 매체의 머리기사를 장식한다.  

    

 저녁 뉴스 시간에는 지각으로 시험장 도착이 늦은 학생을 경찰 오토바이에 태워 배달하는 돌발 영상이나 학교 앞에서 학부모회나 졸업생들이 현수막을 들고 응원을 하는 풍경들이 나온다. 그렇게 11월은 시작과 끝이 수능으로 채워진다.  우리 집은 이미 오래전에 경험했지만 그래도 이맘때가 되면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막연한 호기심은 있다.   


 지난해와 다르게 나의 업무상 위치가 바뀌면서 보고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매월 두 번씩 부서별 보고회를 갖는데 조직 편제에 따라 순서가 있다. 각자 자기네 명패가 놓인 책상 뒤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앉았다. 아직 내 옆자리는 오지 않았다. 숨을 돌리고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책상 위 서류를 들춰보는 사람,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거나 옆 과장과 농담을 주고받는 풍경들이 눈에 띈다. 회의 시작 5분 전, 내 옆자리뿐 아니라 대부분의 자리가 채워졌다. 대부분 10분전에는 도착하는데 급한 일이 있었든지 아니면 깜빡 잊어버렸는지도.


 드디어 국장급 간부를 동반한 보스가 착석하면서 본격적으로 회의가 시작된다. 공무원을 하루라도 체험한 사람이라면 분위기를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엄숙하고 준엄함의 그 자체.


 회의 시작 전에는 작게 웃음소리도 들리고 어딘가 어수선하다가 막상 보스가 등장하면서 목소리를 가다듬는 헛기침이 두서없이 떠다니다 어느 순간 아주 고요한 세상으로 변한다.


 처음 참석이 아니어서 이번에는 느긋하게 다른 부서의 보고 내용을 집중해서 들었다. '수능'에 관한 것들이 많았다. 보통 '수능'은 행정조직상 '교육부'에 해당하는 분야지만 그건 순수하게 가르치는 일만 그렇고 시험 응시생의 편의 제공은 온통 지자체의 몫이다.  


 시험장 주변 도로가 막히지 않도록 통제하는 도로교통과(경찰서의 협조), 듣기 평가에 소음이 들리지 않도록 주변 공사장을 돌며 엄숙을 계도하는 건축과, 늘어나는 코로나19 확진자를 위한 별도 시험장 마련과 수험생 확진자 관리를 담당하는 보건소, 지진과 각종 재난을 대비하는 안전과, 조정된 출근시간 준수를 안내하는 총무과 등 완벽하게 분업화된 매뉴얼을 가지고 있다.


 나머지 공무원 전체가 협조할 사항은 수능 당일날 교통이 집중되는 오전 6시~8시 사이 차량 이동을 최대한 자제하고 시험장 주변을 지날 때는 천천히 운전하고 경적을 울리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조정된 출근시간 10시를 지키는 일이다. 그 외 다른 부서는 '수능'을 위해 특별히 할 일은 없어서 일상 업무를 보고했다.


  회의 주재가 '수능'은 아니었지만 중요한 사안으로 판단하고 나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게 지방 소도시의 공직 풍경이다.


 국가의 중요 사안에 대해 대처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보고를 할 만큼 알아서 판단하고 실행한다. 이미 수년 전부터 그렇게 해왔다. 예전에는 이런 회의에 참석 기회가 없어서 몰랐는데 이렇게 모여서 각자 역할을 표현하는 것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나름 대처하고 있는데 주민들은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아마 모를 것이다. 공무원인 나조차 당연한 일로 생각하고 그 중요성마저 잊고 사는데 어느 누가 알겠는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일 뿐. 그리고 정작 우리가 표현하고 알리는 일은 많은 예산을 들여 어디에 무엇을 세우고 랜드마크를 만드는 일에 치중되어 있다.


 성과를 오직 보여주는 것에 포커스를 두기 때문이다. '수능'대처처럼 움직이되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일은 진정으로 행정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나는 가끔 행정을 잔잔한 호수 위에 떠 있는 오리로 비유한다. 겉보기에는 편안하고 아무것도 하는 것 같지 않지만 수면 아래 오리발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물살을 가르고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물론 제멋대로가 아니라 옳다고 판단되는 방향일 것이다.


 다행히 우려했던 수능 한파 없이 조용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대학입시전형이 다양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수능성적은 수험생의 진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 시험시간에 늦거나 아프거나 여러 가지 상황으로 곤란을 겪지 않아야 함은 마땅할 일이다. 그런 일들에 일선 공무원들도 힘을 보태고 있음을 그냥 소소하게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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