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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간빌게이츠 Jan 26. 2024

섭섭한 밤

잠들기 전 짤막하게

 나는 어릴 적부터 티비 속 잘 나가는 연예인들의 여유와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예술가들의 낭만을 동경해 왔다.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정확히는 자유롭지만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될 수 있는지 궁금했다.


 나는 유도리가 없는 사람이다. 상황에 따라 적당히 처세하고 바뀌어가는 것을 잘 못했다. 그래서 좌우명을 정했다. 살면서 느낀 것들로 표어를 한 두 개쯤 정해놓고 거기에 맞춰서 사는 것이다. 그러다 실망스러운 일이 있거나 충격적인 일이 있을 때 좌우명을 고쳐 써왔다. 그렇게 "자유롭고 단단한 사람이 되자"라는 나의 신념 아래 수 십 개의 좌우명이 갈아치워져 왔고, 결과적으로 난 꽤 자유로운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자유로우면서 단단한 사람이 되는 법은 오랫동안 알아내지 못했다. 이제 자유로움은 유지하면서 단단한 사람이 되기 위한 좌우명을 찾기 시작했다.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고 내가 나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후 정한 좌우명 중 하나가 "일시적인 것에 휘둘리지 말자"였다. 일시적인 게 무엇인가 고민했다. 그간 내 삶을 휘어잡던 모든 것들이, 꿈이던 친구던 길고 짧음만 있을 뿐 모두 다 스쳐가는 것이었다. 나에게 영원한 건 오직 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모든 걸 의존하기로 했다. 꽤나 효과적이었다. 늘 남에게 구걸했던 인정을 나에게서 찾기 시작하니 주변 눈치를 보며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것들에 몰두할 수 있게 됐고 나에게서 얻는 감정을 중요시하다 보니 주변 상황에, 말 한마디에 요동쳤던 감정의 파도도 지금은 어색하리만치 고요하다.


 요즘 나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기 위해 회사도 그만두고 원래 관습처럼 하던 모든 하기 싫은 것들을 하나씩 쳐내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남은 건 일뿐이었다. 회사를 다닐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 하루 일과 대부분이 일, 공부인데 나에게서 찾던 인정의 기준이 조금씩 깐깐해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옳다고 느낀 일에 온전히 미칠 수 있다는 게 결국 어릴 때부터 꿈꿔온 자유롭고 단단한 사람의 궁극적 표상이라 생각한다.


 조금 우습기도 하다. 갇히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는데 요즘은 내 안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딱히 나쁘다는 건 아니다. 무언갈 버리지 않고서 가질 수 없는 게 많다는 걸 알고 있고, 내가 지금 가진 것들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모든 걸 잊을 만큼 몰두할 수 있는 광기 어린 밤이 있는가 하면 별 기억에 남는 게 없는 섭섭한 밤도 있는 법이다. 두서없는 글을 쭉 쓰고 나니 그 섭섭함이 조금은 달래진 것 같다. 빨리 잠이나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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