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전역한 후 회사를 그만두기 전까지 나는 유통회사에 다녔다. 그때 남편은 일이 많았고 매일 퇴근이 늦었다. 나는 유통회사 특성상 다른 사람들이 쉴 때 일하고 다른 사람들이 일할 때 쉬었기 때문에 남편과 같이 살았지만, 얼굴 보고 이야기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쉬는 날이 다르니 여행을 갈 수도 없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검소하고 요즘 말로 플렉스, 욜로 이런 것도 몰랐기 때문에 돈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수입이 절반으로 줄었다. 경제적 충격은 생각보다 작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열심히 아꼈다. 남편은 주말에 과외를 했고, 나는 평일에 소소하게 아르바이트를 했다. 덕분에 수입은 절반으로 줄었지만, 통장에는 조금씩 돈이 모였다.
( 나 ) “통장에 여윳돈이 조금 생겼는데 뭐 좀 해보자.”
(남편) “글쎄.”
( 나 ) “은행에 넣어봤자 이자도 얼마 안 되잖아?”
(남편) “만약을 대비해 그냥 가지고 있는 건 어때? 전세금 올릴 때 부족할 수 있잖아?”
( 나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남편) “뭐 생각해 둔 것 있어?”
( 나 ) “월세를 받을 수 있는 조그만 부동산 투자는 어떨까?”
(남편) “겨우 이 돈으로 부동산 투자가 가능하겠어?”
( 나 ) “그럼 주식?”
(남편) “글쎄.”
( 나 ) “그냥 뭐라도 좀 해보자.”
대화는 계속 겉돌았다. 당시 회사 일에 치어살던 남편이었기에 다른 곳에 신경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냥 내 마음대로 해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주식은 경험도 없고 전문가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부동산은 망해도 집이나 땅은 남을 테니 한번 해보자는 단순한 생각에 일단 인근 부동산을 찾아갔다. 2011년 당시 서울은 부동산 침체기였지만, 이미 가격이 너무 비싸 대출 없이는 투자할 만한 것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방으로 눈을 돌렸다.
그때부터 매일 남편을 출근시키고 인터넷 포털에 <지방 소형아파트>, <월세용 아파트>를 검색했다. 부동산 관련 사이트, 카페에도 들러 정보를 찾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알게 된 부동산 강의도 참가했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서울 부동산이 침체인데, 지방은 더 별로일 거라고 이야기했다. 자꾸만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 당시 내가 찾은 지방 아파트 월세 수익률은 10%가 넘었다. 지방에서 찾은 아파트들은 가진 돈으로도 살 수 있었고 월세 수익률도 높았다. 이제 직접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2011년 겨울 친정엄마와 함께 차를 타고 충청남도를 찾았다. 부동산을 들러 설명을 들어보니 충청남도 소형아파트는 월세 수익률이 7~10%였다. 월세 수익률이 당시 금리보다 월등히 높았기 때문에 안 사면 손해 보는 것 같았다.
( 나 ) “이 아파트는 월세가 얼마예요?”
(중개사)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5만원이예요”
( 나 ) “그럼 수익률은요?”
(중개사) “매매가가 6800만원이니까, 대출 4000만 원 받으면 월세 받아 이자 내고 10% 정도 되겠네요.”
( 나 ) “임대는 잘나가나요? 공실은 없어요?”
(중개사) “그럼요. 산업도시라 수요는 꾸준해요.”
그 공인중개사는 대출도 잘 되니 기왕이면 비슷한 아파트 몇 채를 사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대출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건 너무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집값이 오른다는 확신도 없었기 때문에 여러 개를 둘러보다가 결국 제일 저렴하고 야무져 보이는 18평 월세용 아파트 하나를 계약했다.
이 아파트를 매수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우선, 현재 세입자가 전세로 살고 있었는데 아직 전세 기간이 1년 넘게 남아있어 다음 세입자가 안 구해지더라도 보증금 돌려줘야 하는 부담이 없었다. 게다가 가격이 4,500만 원으로 가장 저렴했고, 근처에 지하철역이 있을 뿐 아니라 대학교, 회사 덕분에 임대 수요가 풍부해서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1년 후 나는 이 아파트를 월세로 돌렸다. 그리고 이 월세용 아파트는 우리 가족에게 5년 동안 매달 40만 원의 추가 수익을 꾸준히 안겨주었다. 5년 후 다른 투자를 위해 이 아파트를 팔아야 했을 때 이 아파트 가격은 두 배가 되어 있었다. 만약 그 돈을 은행에 두었다면 5년 후 약 250만 원 이자를 받았겠지만, 우리 가족은 이 아파트를 통해 은행예금보다 안정적이고 우수한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집 없는 설움을 알고 있었다. 못질 하나도 못 하게 하고 벽지가 뜯어진 것을 보상하라고 소리를 지르는 기분 나쁜 집주인을 만나기도 했었다. 그때 내가 집주인이 되면 저렇게는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세입자를 위해 조금의 손해는 감수할 수 있는 착한 임대인이 되고 싶었다. 처음 월세 임차인은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다. 아이 전학을 시켜야 하는데 입주 날짜가 맞지 않아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먼저 전입신고를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전화로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말하는 세입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도와줄 수 있어 행복했다. 2년 후 그 임차인이 열심히 돈을 모아 집을 사서 이사 간다고 했을 때 함께 기뻐할 수 있어 행복했다.
우리 부부는 요즘도 가끔 이 고마운 아파트 이야기를 하곤 한다. 몇 달 전 그 근처를 지나갈 일이 있었는데 잠시 차를 세워두고 그 아파트를 올려 보며 웃었다.
아이를 가지기 위해 외벌이를 결심했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월급 외 추가 수입의 간절함으로 지방 월세용 아파트를 열심히 찾았다. 아마 그런 간절함이 없었다면 그런 결심을 할 수 있었을까 싶다. 물론 다른 투자와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최고의 투자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의미 있는 투자였고, 이 아파트를 가지고 있으면서 정말 행복했기에 부동산의 매력에 빠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