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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팔이 Oct 03. 2023

엄마 아빠가 이혼한 건 내 탓이야

이혼이 싫었던 초등학생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다.

“엄마랑 아빠는 이혼해서 더 이상 함께 살지 않아 “

엄마가 말했다.


그 말을 듣곤 내 방과 누나 방 문 사이에 쭈그리고 앉아 엉엉 울었다. 지금 떠올리면 내게 이혼이라는 불행이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슬퍼서도 울었지만, 부모님의 이혼이란 불행이 찾아온 내가 불쌍해 울었던 것 같다.


아빠는 무서웠고 엄마가 더 좋았기에 아빠와 떨어져 지내는 건 그리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생뚱맞게도 운동회가 떠올랐다. 초등학생이 떠올릴 수 있는 불행의 한 종류였다. 


'난 아빠 없이 운동회에 혼자 가겠지?'
'아빠 때문에 누나랑 엄마가 힘들어하던데, 잘된 일인가? 그래도 부모님이 이혼하는 건 싫은데...' 


그 당시엔 대한민국 이혼율을 잘 몰랐다

그래서 나 혼자 특별한 불행의 구렁텅이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도 침울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나서야 세상에 사연 없는 집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학생이 되고 한 달에 한번 아빠를 만났다. 

용돈도 받고 맛있는 것도 먹고 오락실도 가는 날이라 좋아하는 날이었다. 

그러다 어느새 아빠와 누나들 사이가 나빠져 나 혼자만 아빠를 만났다. 조금 웃겼다. 

마치 우리 집과 아빠를 잇는 우체부가 되었다. 아빠는 가족들은 서로의 근황을 물었기 때문이다. 안부인사 겸 의례 물었을 질문에 나는 혼란스러웠다.

'우리 집이 이사한 이야기를 해도 되는 걸까?' 

조마조마한 마음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웃프게도 그런 내 마음이 여실히 드러났던 사건이 있다. 

뒤늦게 상담대학원에 입학하신 어머니께서 미술심리치료 공부를 하시던 중이었다.

집을 그려보라는 엄마의 요청에 심술궂은 마음으로 집을 2개 그렸다. 아마 엄마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나 보다. 

그런데 놀랍게 2개의 집을 그리는 사람은 불륜으로 두 집 살림을 하는 사람이거나 나처럼 두 집을 오가며 마음에 갈등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 심리검사를 했을 즈음엔 초등학생 때 느꼈던 불행하단 감정은 모두 해소되었지만, 차곡하게 쌓였던 마음은 아직 남아있던 것이다. 


초등학생 때 불행감과 함께 느꼈던 감정은 죄책감이다. 

나의 잘못도 책임도 아니었지만, 부모님의 이혼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 모를 죄책감이 내면 깊은 곳에 도둑처럼 찾아왔다.

그때부터 내 인생은 죄책감과의 싸움이었다.

심리학과에 들어가 나의 내면을 치밀하게 들여다보니 나를 만들고 이끄는 건 지독한 죄책감과 인정욕구였다.\

 

부모님의 이혼 후 우리 삼 남매는 엄마를 힘들게 해선 안된다는 생각에 모두 '착한 아이'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착한지 못한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다. 

착해야 한다고 말하는 죄책감은 아빠에게 받지 못한 인정에 대한 욕구와 손을 잡고 나를 괴롭혔다. 이러한 것들은 대인관계에서 좋은 평판을 가져다주기도 했지만, 내가 나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한 순간이 더 많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죄책감과 인정욕구에서 벗어나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부모님이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이혼을 맞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자녀가 걱정돼 이 글을 클릭했다면, 자녀에게 네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해주길 바란다.

"네 잘못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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