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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Nov 06. 2023

사계절 없는 캘리포니아의 가을

존재하지 않는 것을 최선의 방법으로 사랑하는 방법

어느 계절을 가장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가을'이라고 외친다.


끈적거림의 여름 후 선선한 가을바람이 좋고,

반짝거림의 겨울을 기다리는 설렘이 좋다.


알록달록하게 물든 나무를 보면 기분이 몽글몽글해지며, 브라운, 아이보리, 연핑크 색의 옷들을 입으면 왠지 모르게 사뿐하게만 걷고 싶어 진다.


낙엽이 수북이 쌓일 때쯤에는 멋스러운 트렌치코트를 툭 걸친 채, 발 밑에서 새어 나오는 바스락 거림을 감상하며 멍하니 산책길을 따라 걷는다.


사실 위에 문장들은 내가 겪은 올해의 가을엔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에는 사계절이 없기 때문이다.


이곳의 가을과 겨울, 봄과 여름은 미세한 온도 차이를 제외하면 구별하기 어려운 편이다. 일 년 내내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습도를 유지한다는 점은 아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또렷한 계절의 경계선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다.


한 계절이 시작한다는 것은, 나에겐 삶의 새로운 장이 시작된다는 의미다.


실제로 사람들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느끼는 순간, 변화에 더 개방적이게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시간적(새해 첫날) 또는 공간적(이사 온 새로운 집에서의 첫날)인 환경이 바뀌며, 사람들은 '심리적 재도전'의 기회가 생겼다는 착각을 한다. 그들이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미래를 낙관적으로 볼 타당한 이유라도 생긴 것처럼 말이다. Katy Milkman의 책 <How to Change>에 나오는 "Fresh start effect"이라는 개념이다.


이 현상이 그저 심리적인 착각이라면 뭐 어떤가. 새로운 시작은 긍정적인 잠재력도 갖고 있기에,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가을'이라는 새로운 계절의 시작과 함께 기존의 습관과 사고방식의 변화를 일으키듯이.



캘리포니아에서 '가을스러운 가을'을 찾기 어렵다는 것은 아쉽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올해의 가을을 최선으로 사랑해 볼 방법을 찾아본다.


1. 가을 커피 - 스타벅스의 가을 메뉴가 출시된 첫날, 따뜻한 펌킨 스파이스 라떼 한 잔을 즐긴다.


2. 가을 나들이 - 미국의 가을 나들이인 '펌킨 패치'에 가서 농장에 줄지어 있는 수많은 호박들을 구경한다. 그중 한놈을 골라서 놈의 속을 파내고, '잭오랜턴'을 만든다.


3. 가을 음악 -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리고 나의 최애 Chet Baker의 'Autumn Leaves'를 자주 듣는다.


4. 가을 음식 - 내가 좋아하는 미국 마켓인 Trader Joe's에서 가을에 어울릴만한 재료를 몽땅 싹쓸이한다. 호박 모양의 파스타와 단풍잎 모양의 콘칩은 그들의 귀염뽀짝함에 홀린 듯 구매한다. 가을 향이 솔솔 나는 메이플 치킨 소시지와 올해의 핫한 신제품, 'Korean Cinnamon Pancake'까지.


짧지만 따뜻했던 가을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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