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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다언니의 말맛 Feb 16. 2022

#05. 엄마의 보물창고

전화기 먹은 장롱, 동전 먹은 그릇, 꿀단지 먹은 책장, 돈 먹은 이불

#01. 전화기 먹은 장롱



아침 등굣길이면 털실에 꽁꽁 묶은 열쇠를 목걸이 걸듯 내 목에 걸어주셨다. 엄마는 내게 신신당부한다. 


"막내야 이거 잃어버리면 안 돼~ 절대 벗지 말고 다녀야 해"


"응!! 알았어"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나처럼 목걸이 열쇠를 가지고 다니는 친구들이 몇 있었다. 뛰어놀 때도 열쇠 목걸이가 찰랑거렸고 가끔은 입에 물고 장난을 칠 때도 있었다. 시큼한 쇠 맛이 목걸이를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집에 도착하면 잃어버리면 안 되는 열쇠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철문을 연다. 그때가 되어서야 열쇠를 집안 어딘가에 놔둘 수 있었다. 텅 빈 집에는 오빠와 언니가 올 때까지 기다린다. 



여느 때와 같이 학교 끝나고 집 문을 열고 있는데 아스라이 전화기가 운다.


"어! 아빠다"


맘이 급해진다. 벨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달려간다. 전화벨이 들리는 곳은 깊은 장롱 속이었다. 무거운 장롱을 열자 전화 벨소리가 크게 들린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빠는 사우디아라비아에 계셨다. 시차로 인해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은 내가 학교 끝나고 집에 오는 시간이었다.


"아빠! 나 막내딸이야!!"


아빠 목소리에 눈물부터 나온다.


"아빠 보고 싶어, 아빠 올 때 꼭 그... 그 있잖아 그 마루인형 꼭 사 와야 해. 꼭!!"


그렇게 나는 전화기 먹은 장롱이 울 때마다 아빠에게 갖고 싶은 것을 말했다.


"아빠!! 딸기 그림 들어가 있는 원피스!"


"아빠!! 색연필!!'


그렇게 통화가 끝나면 장롱은 전화기를 먹었다.






#02. 동전 먹은 그릇


오늘도 학교를 끝나고 텅 빈 집에 홀로 있다. 엄마는 일하러 가셔서 저녁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냉장고도 열어보고 찬장 속도 열어보고 한참을 뒤적거린다. 먹을만한 게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후에야 포기한다. 그렇게 여기저기 뒤지면서 찬장 속 그릇과 그릇 사이에 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끔 밖에서 놀다 보면 엄마를 마주칠 때가 있다. 


"엄마!! 백 원만!" 


"엄마~~~ 백~~원~~마안~~~!"


한참을 졸라대고나서야 겨우 백 원을 받고 슈퍼마켓으로 달려간다. 엄마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면 이내 혼났다.


"네 엄마 갖다 팔아서 사 먹어!"


돈 있는 걸 알고 있는데, 없다고 하는 엄마가 얄미웠다. 이 세상에 비밀은 없다.


"엄마! 돈 있는 거 다 알아!" 찬장 속 두 번째 칸 뒤 그릇에 있잖아"


엄청난 비밀을 폭로했다. 며칠 뒤 다시 뒤적거린 찬장 속 그릇 안에는 돈이 보이질 않았다. 






#03. 꿀단지 먹은 책장



방학 때 집에서 오빠와 놀다가 5단 책장 위칸에 꿀단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린 그걸 꺼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기어코 나는 맨 아래 5단 수납장을 열고 그 밟고 올라설 수 있었다. 노동 후의 꿀단지는 달콤 그 자체였다. 진짜 꿀맛이었다. 


다음 날, 오빠가 수납장을 밝고 올라간다. 꿀단지를 아예 다 꺼낼 생각이었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는 순간이다. 오빠를 도와주기 위해 책장을 밟았다. 둘이 같이 서자 5단 책장이 우리를 향해 인사했다.


'안...녕.....?'


책장은 쓰러졌고, 꿀단지는 우리 얼굴을 향해 쏟아졌다. 타이밍 죽이게 엄마가 오셨다. 겁이 났던 오빠와 나는 순간 얼음이 되었고 동시에 울음을 터트렸다. 






#04. 돈 먹은 이불


한 학년이 올라가면 갈수록 아침에 문 입구에서 용돈을 받기 위한 전쟁이 시작된다. 내가 이기면, 엄마는 잠깐 사라졌다가 나타나 돈을 주셨다. 대체 그 돈은 어디서 가져와 주신 걸까? 곰곰이 살필 때도 있었다. 엄마의 손이 이불장을 향해 넣었다 빼면 없던 돈이 나타났다.

엄마는 귀찮은 듯 돈을 건네며 양쪽 눈이 찢어져라 꽉 잡아 쌍갈래 머리 묶음에 왕방울을 달아주셨다.






전화기 먹은 장롱, 동전 먹은 그릇, 꿀단지 먹은 책장, 돈 먹은 이불. 그때는 그런 모습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않은가? 전화기는 옷장 안에서 나오고, 엄마의 생활비는 여기저기 흩어져있고, 책이 있어야 할 책장에는 꿀단지가 있다는 것이...... 


보물은 꼭꼭 숨겨 놓는다. 나만 알아볼 수 있도록 보물 지도를 만든다. 엄마의 보물상자는, 엄마의 보물을 보살피기 위해 있어야 했다.


해외에 있는 아빠와 통화하려면 전화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호기심 많은 4형제 때문에 전화비가 많이 나올까 봐 장롱은 전화기를 먹어야 했다. 겨울이 오면 손과 발이 차가워지는 오빠를 위해 꿀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달콤한 꿀을 호시탐탐 노리는 4형제 때문에 책장은 꿀단지를 먹어야 했다. 4형제를 키우기 위해 쌈짓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똘망똘망한 눈으로 "백원만~~"을 외치는 4형제 때문에 그릇은 동전을 먹고, 이불은 돈을 먹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04. 치유라고 쓰고 치료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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