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편이 있어 용기를 내!
겨울 시즌을 준비하고 있는 연말 일정들은 많은 것들을 정리하고 결정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책임감으로 부담감이 뒤따라서인지 몸도 마음도 무척이나 분주함을 느끼네요. 언제부터인지 별것도 아닌 문제들과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커다란 장애물 앞에서 주춤하게 되고 이끌어가야 할 회사 일들이 힘에 부딪치곤 합니다. 버겁다고 느껴지는 문제들로 인해 더 걱정이 앞서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마음이 복잡하고 무거워집니다.
하루 일과 중 나를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해 실천하고 있는 요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너무나도 즐겁습니다. 그 시간은 새벽 기상과 마주한 시간일 때도 있고 외근 중 장 시간 운전 중일 때도 있습니다. 그중 가장 효과가 좋은 장소는 뭐니 뭐니 해도 조용한 카페입니다. 따스한 햇빛이 빛나는 날에 이런저런 생각들을 품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해 제 시간을 가져 봅니다. 이 시간만큼은 개인 시간을 갖는다는 기쁨에 긴장도 되고 설레기도 하지요.
카페 창가 쪽에는 젊은 학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저도 그 언저리에 자리를 잡아봅니다. 좀 전에 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주문해 쟁반채 받아 들고 제 테이블로 가져와 앉았습니다.
분주했던 마음도 안정시키며 잠시 외부 업무 톡을 진행한 뒤 커피를 향해 손을 뻗습니다.
헉! 긴장이 풀린 걸까요? 그 순간 적나라하게 대형 사고를 치고 마네요.
"이런! 젠장..." 아뿔싸~
아이스커피잔을 잡으려던 찰나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슬쩍 스치며 커피잔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대로 커피잔은 누가 밀기라도 한 것처럼 피해자가 되어 쟁반에서 벌러덩 쓰러져 버리네요.
안에 있던 얼음과 커피는 테이블을 지나 테이블 아래로 순식간에 쏟아져 버렸어요.
그 상황에 정말 당황스럽고 그대로 제모습은 얼음이 된 순간이었습니다. 그 몇초가 어찌나 길던지 이대로 멈춤이 끝나지 않길 바랬습니다.
원치 않는 사람들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나는 '누가 나 좀 살려줘요'~~~ 라며 간절하게 속으로 외치고 있었습니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무슨 잡생각이 이리도 많았던 걸까...', 정말인지 오나가나 민폐 쟁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잠깐 실수라도 하게 되는 순간과 맞닥뜨리면 이성을 잃고 진정할 새도 없이 자신을 꾸짖으며 코너로 몰아붙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는 자존감이 더 단단하게 쪼그라들며 꼭꼭 숨어버리고 맙니다.
걷잡을 수 없이 짜증이 밀려들었고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았어요.
흥건하게 쏟아진 커피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재빨리 정신을 차려봅니다.
그리고 후다닥 데스크로 달려가 직원한테 가서 도움을 요청했어요.
다행히도 친절한 직원 덕분에 테이블은 깨끗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고맙게도 그 순간 저를 도와준 직원이 영웅처럼 보입니다.
게다가 제 실수였는데 직원은 제게 다시 와서 새 커피를 받아 가라고 말해 줍니다.
하염없이 쪼그라든 자존감이 한순간 꽃피듯 피어오르며 고개를 내밀어 줍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나를 다스리는 통제감'이 상실된 지 오래된 나는 나와 마주하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스커피가 쏟아졌던 그 순간은 매우 공포스럽고 두려웠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고 벗어나고 싶었거든요. '그냥 나갈까?' 아니면 '창피함을 무릅쓰고 다시 앉아하려고 하던 일을 하고 갈까?'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누군가한테는 그럴 수도 있었던 일,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건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보통 일상에서의 생활이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제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없애야 하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마주해야 하는 그 두려움은 불안감과 불쾌한 감정으로 나를 지배하기 때문이에요.
친절한 직원에게 도움을 받고 나니 '이래서 세상은 아름다운 거고 살맛 나는 거지 뭐'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다져봅니다.
"그래, 괜찮아"
"이런 날도 있지 뭐~"
"실수잖아~"
뭔지 모를 무거웠던 마음은 액땜이라도 한 듯 속이 후련했어요.
잠시 후 내 마음은 안전하다는 위로가 필요했는지 내펴니(남편)에게 전화를 겁니다.
마음을 진정시켰음에도 내펴니(남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돕니다.
그리고 좀 전에 있던 상황을 어린아이가 된 듯 이야기하며 수다를 떨어봅니다.
"헐~ 괜찮아? 안 다쳤어?"
"자기 요즘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 같아~ 마음 편하게 가져"
"진짜 안 다쳐서 다행이다."
세상에 내편이 있다는 사실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건 안 비밀!
내펴니(남편)의 말 한마디에 언제 그랬냐는 듯 따뜻하고 다정한 위로 안정제를 처방받습니다.
못나고 작아진 자존감으로 살아내고 있는 모습에도 언제나 한결같이 존중해 주는 내펴니(남편)는
오늘도 제게 큰 힘이 되어주며 용기를 가득 실어주니 든든합니다.
내일은 또 어떤 사고를 칠지 걱정이 앞서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두려움으로부터 당당하게 마주 할 수 있는 용기, 더 나아가 내 삶에 작고 소소한 일상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날을 기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