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차례 수술을 하며 독한 약을 계속 먹어서인지 위장이 나빠졌다. 위벽이 헐고, 울퉁불퉁(장상피화생)해졌고, 위가 제기능을 하지 못하니 역류성 식도염도 심해졌다. 하나를 치료하면 다른 하나가 말썽이고 그러다 보니 병원과 아주 밀접하게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병원과 친구가 되니 약국도 친구가 되었다.
약사님께 약에 대해 물어보면 이 약은 위장 보호 제고, 이 약은 식도염 약이고... 하면서 단답형으로 설명해주신다. 그런데 "이 약을 언제까지 먹으면 나을까요?"와 같이 약 이름과 복용법에 상관없는 듯한 질문을 하면 "그걸 왜 여기 와서 물으세요? 처방받기 전에 의사 선생님께 묻고 오셨어야지..."라고 답하신다. 정말 목소리에 성의라고는 전혀 없이, 시선도 마주치지 않고 손은 계속 약을 포장하거나 컴퓨터 입력을 하시고, 카드 단말기로 결제를 하면서 목소리만 건네주신다.
한 번은 앵글이의 영양제 구입 때문에 영양제 추천을 부탁드렸더니 몇 가지를 꺼내서 보여주셨다. "어떤 것이 제일 좋아요?"라고 하니, "다 똑같아요. 성분이 거의 비슷한데 조금 더 넣고, 덜 넣은 차이랑 제약회사가 달라서 가격이 조금씩 다르지만 효과는 비슷비슷해요."라고 이야기해 주셨다. "장복해도 괜찮은 것으로 추천해 주세요." 했더니, "이 약들은 다 장복해도 괜찮은 것들이에요. 약은 제가 골라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것 들 중 마음에 드는 거로 사시면 됩니다." 약사님의 말씀 중 어느 것 하나 틀린 말은 없었지만 조제해 주시는 약 외에 다른 약들을 적극적으로 팔고자 하는 의지는 없어 보이셨다. "그런데, 약사님... 종로 약국거리에서 사는 거랑, 동네 약국에서 사는 거랑 가격차이가 있을까요?"라고 여쭈니, "더 싼 데 있으면 거기 가서 사시면 돼요. 약을 찾으시는 분들이 계시니 갖다 놓기는 하는데 뭐... 손님이 더 싼 곳에서 사고 싶으시면 거기서 사셔도 되죠." 그냥 궁금했을 뿐인데 약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순간 "아차차... 괜히 물어봤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처방약을 조제받고, 앵글이의 영양제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도 여전히 나만 단골이라 생각하는 약국에 들러 약을 조제받고, 우리 가족의 영양제를 사고 있다. 한두 번은 상처가 되었던 약사님의 조금 귀찮은 듯한 말투도 7년을 다니다 보니 '그분의 스타일이구나... ' 싶어지고 익숙해졌다. 감정의 기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분의 성격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만한 세월이 흘렀고, 여전히 난 단골 약국이라고 혼자 생각한다. 약사님의 마음은? 여쭤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여전히 반갑게 맞아주지 않으시고, 불필요한(?) 친절을 베풀지도 않으신다. 그런데 7년쯤 흐르고, 약사님도 나도 나이를 먹다 보니 나이가 주는 푸근함이 느껴진다. 여전히 무심하게 말씀하시지만 어딘가 모르게 여유도 느껴지고, 7년 전보다는 부드러워지셨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약사님의 성향을 알기에 약사님의 답변이 무심히 나올 만한 질문은 하지 않는다. 그렇게 서로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사나 보다.
며칠 전 앵글이와 함께 약국에 들러 약이 조제되는 시간 동안 대기 의자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었다. 집에 돌아와 약통에 약을 소분하면서 앵글이와 대화를 나누던 중 앵글이가 "엄마, 단골 약국 약사님 이야기를 글로 써보는 건 어때?"라고 물었다. "약사님이 범상치 않으시잖아. 7년을 만나도 친해지지 않는 약사님 이야기를 쓰면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가끔이지만 7년의 시간 중 어느 날은 함께 약국에 들렀었고 한결같은 약사님을 만나 뵈었으니 아이도 역시 비슷하게 느끼는 모양이다.
살면서 '과한 친절'을 받고 싶어지는 고객이 될 때가 있다. 그런 마음 때문에 감정노동자에게도, 주차관리 아르바이트생에게도, 슈퍼마켓 계산원에게도 '갑질', '꼰대' 노릇을 하는 것은 아닐까? 그분들의 자리에서 그들의 역할을 다하고, 딱 그만큼의 서비스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되었다면 섭섭할 필요도, 평가할 필요도 없다. 직업에 귀천이 없고, 사람 간 계층도 없이 모두가 평등하다고 뻔드르르한 말을 하며 포장하면서도 행동은 말과 같지 않은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어쩌면 7년 전의 내가 그런 마음이 들어 약사님이 불편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방받은 약을 조제하고, 손님이 찾는 약을 꺼내어 보여주며 선택하도록 하는 그 행위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무심한 표정과 말투에 불편한 생각이 들었었다. 그 순간, '다른 약국'으로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은, 약사님이 약을 건네주는 것 외의 '과한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고 나도 모르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내가 지불하는 비용이 분명 약에 대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 약값에 서비스 비용이 포함되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혹시 내가 산 약 때문에 약사님이 먹고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비약된 마음이 포함되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물론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선악이 공존하는 '마음이라는 놈'이 무의식 가운데 어떤 주파수를 내게 던졌을지는 모를 일이다.
작은 동네 매장보다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을 선호하는 것은, 내가 구경하고 있을 때 점원이 다가와 '꼭 구입해서 나갔으면'하는 눈빛을 내게 보내는 것 때문이 아닐까? 대형몰에 가는 것이 선택의 자유로움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멈추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동네 상권이 살아나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집 앞에 있는 옷가게에 들렀다가 (진열되어있는 옷이 예뻐서 가격이나 볼까 하고 들어갔는데) 구경만 하고 나오기 미안해서 마음에 없는 셔츠라도 한 장 사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낄 때가 있다. 하나라도 팔고 싶은 주인의 마음이 느껴지고, 구경 값을 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에서 자유롭고 싶어 간섭받지 않는 대형 매장을 선택할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약사님의 무심함 때문에 지금은 '단골 약국'이 더 좋다. 하나를 물어보면 이것저것 그것과 함께 복용하면 효과가 더 좋다고 여러 종류의 약들을 권해주는 곳 보다 되려 마음이 편하다. 꼭 필요한 주의사항만 알려주고, 그 외의 어떤 것도 권하지 않는 그 뚝심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니 무뚝뚝함은 뚝심이 되었고, '불친절함'이라 느꼈던 불편함은 '손님의 자유로운 선택'을 기다리는 약사님의 프로다움이라 여겨졌다.
앵글이는 "엄마, 어쩌면 약사님이 건물주일 수도 있어!"라고 이야기했다. "그럴 수도 있지. 약국자리가 상가 분양가 중 제일 비싸니까... 진짜 건물주이실 수도..."라며 서로 한바탕 깔깔 웃었다. 내가 지불하는 돈으로 상대의 마음까지 샀다는 오만함은 버려야 한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혹시 '과한 친절'을 베푸는 서비스 종사자를 만난다면 그분은 엄청난 노력으로 나를 맞아주시는 거다. 그럴 땐 진심으로 고마워하자. 그분의 친절에는 돈으로 치를 수 있는 정찰가가 없으니 말이다.
가치로운 삶을 살고픈 로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