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이와 함께 동네 산책 겸 나선 길에 슈퍼에들러 장보기를 하였습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슈퍼에 풀어놓으면 꽁지 빠진 수탉처럼 분주해집니다. 청과코너에서 장을 보는 동안 새로 나온 얼초 동물그리기를 들고 오던 앵글이는,
"동글이랑 같이 하면 좋아하겠지?"
"그게 뭐야?"
"새로 나온 얼초인데 요즘 핫해."
"그래? 초코송이처럼 생긴 것보다는 재밌겠네."
"그니까... 동글이가 좋아하겠지?"
집에 돌아오니 동글이는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앵글이가,
"동글아~ 누나랑 과자 만들기 할래?"
앵글이의 친절한 물음에도 동글이는 게임에만 집중합니다. 그러더니 건성건성,
"좋아..."
영혼 없는 답변을 합니다. 앵글이가
"누나가 준비하고 있을게. 컴퓨터 끄고 와~"
"응."
앵글이가 재료를 꺼내서 식탁에 펼친 후 동글이를 두세 차례 불렀습니다. 동글이는 '잠깐만~'을 연거푸 합니다. 기다리다 지친 앵글이가,
"됐어. 너 하지 마~! 그냥 누나가 다 만들래. 나중에 달라고 해도 안 줄 거야."
앵글이는 엄포를 놓고는 과자 공예를 시작했습니다.
"엄마, 이거 옆으로 넘치려고 하는데 어떡하지?"
"왼손에 이쑤시개 하나 들고 글라스데코 하듯 채워 넣으면 돼."
"오~ 역시 유치원 원장님... 그런 방법이 있었네??"
진심 감동하는 것 같습니다. 별 것도 아닌데 능력을 인정받은 듯하여 어깨가 쭉쭉 올라가는 전 또 뭘까요? 하나라도 망치는 것 없이 완벽하게 색을 채워 넣어야 합니다. 그렇게 앵글이는 30여분에 걸쳐 정성껏 과자 공예에 진심을 다했습니다. 게임을 하던 동글이가 뒤를 돌아보더니 재미있어 보였던 모양입니다.
"누나, 내 거는 하지 마! 나 이거 한 판만 하고 나도 할 거야."
"됐거든? 누나가 하자고 할 때 왔어야지. 누나가 아까 뭐라고 했어...? 과자 달라고 오지 말라고 했지?"
역시... 누나는 누나입니다. '힝~' 외마디 추임새가 들리는 듯하더니 다시 게임을 하는 동글이입니다. 그러고 난 후 앵글이의 과자들은 냉장고에 들어갔습니다. 30분 휴지 후 꺼낸 쵸코과자를 커피와 함께 냠냠~ 맛있게도 먹습니다.
"누나, 나도 줘."
"안돼!"
"누나만 먹을 거야?"
"응. 누나만 먹을 거야. 같이 안 만들면 달라고 해도 안 준다고 누나가 얘기 했지?"
"그래도 하나만 줘."
"싫어! 안 줄 거야. 다음부터 누나가 뭘 하자고 하면 바로 와. 오늘은 안돼!"
역시 누나의 훈육은 직빵입니다. 엄마였다면 조르고, 애교를 부릴 동글이입니다. 그러나 누나가 단호하게 말하자 아쉽지만 바로 깨갱이네요. 형제의 난은 무섭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신경전에서 저는 슬며시 빠져나왔습니다. 곁에 앉아있으면 동글이가 SOS를 보낼 테고, 앵글이의 훈육이 맞음에도 불구하고 늦둥이 애교에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습니다. 동글이 편에서 역성을 들게 되기 전에 발을 빼는 게 상책입니다. 제가 봐도 맛나 보이기는 하네요...
앵글이와 동글이의 신경전에서 단연코 앵글이의 압승입니다. 앵글이는 동글이가 대충 얼버무리며 묻어가려던 심뽀를 단호하게 뿌리치고 다음번을 기약합니다. 8년 세월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역시 훈육에는 단호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김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같은 상황에서 제가 만들었다면, 저는 시작할 때 동글이에게 주의를 줬어도 맘이 약해져 과자를 나눠주었을 것입니다. 동글이는 누나의 단호함으로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음을 배웠으리라 생각됩니다. 네 가족 중 한 사람은 단호하고 엄격한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