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앵글이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주간이다. 가급적 방문 상담보다는 전화 상담을 신청해달라는 통신문을 받았다. 코로나로 입학식도 하지 못한 채 시작한 고등학교 생활이었고, 선생님과의 상담도 전화로만 이뤄지고 있다. 엄마 손길이 필요한 나이가 이미 지났으니 일일이 학교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괜찮지 않나 싶다가도, 아이를 1년 동안 맡아주실 선생님들의 얼굴조차 모른 채 3년이 지나가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꼭 담임 선생님과의 대면상담을 해야 할 경우가 아니라면 학교 방문을 자제해 달라는 간곡한 통신문을 읽고 전화 상담을 신청했다.
오후 4시.
1분의 오차도 없이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반갑게 고운 음성을 전해주시는 선생님의 목소리만 들었는데도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정시 준비를 하는 앵글이는 이번 중간고사에서 줄 세우기를 했다. 목표 대학을 조금만 낮추면 수시로 대학을 갈 수 있는데 아쉽다며 선생님께서는 안타까워하셨다.
"그래도 끝까지 내신도 챙겼으면 싶었는데 많이 아쉬워요."
"그 부분도 앵글이와 나눠봤는데 수시를 완전히 포기하려고 그랬다 하더라고요. 성적이 어느 정도 나오면 선생님. 엄마가 설득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힘들게 한 결정인데 다시 고민하게 될 것 같아서 그랬다고요. 집에 와서 시험지는 다시 풀어봤다고 하더라고요."
"앵글이가 그렇게 이야기했군요. 목표가 확실한 아이이니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앵글이가 학교 생활은 잘하고 있나요?"
"그럼요. 열심히 하는 친구라서 예쁘죠. 반에서 눈에 띄게 열심히 하고 있어요. 수학 점수가 쉽게 오르는 과목이 아니라서 힘들어하지만 그것도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30분간의 짧은 면담을 마치고 드는 생각은 늘 비슷하다. 엄마의 불안과 상관없이 아이는 제 몫을 잘 살아내고 있다는 것과 나이에 맞게 성장하고 있음이 감사했다. 진로에 관한 고민을 많이 했지만 본인의 생각이 어떠한지, 왜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지 분명하게 전달해 주었다.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선생님께 전달할 수 있는 당당함이 멋지게도 느껴졌다. 같은 상황 나였으면 두 가지 모두 끌어안고 끝까지 고민했을게 뻔하다.
"선생님, 제 딸이지만 요즘 아이들, 저라면 못했을 텐데 시험 답안지에 한 줄 세우기를 할 수 있는 그 용기가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ㅎㅎㅎ 요즘에는 앵글이 같은 친구들이 꽤 있어요. 학교에서도 정시 준비하는 친구들을 많이 배려해주는 분위기이고요."
"어차피 본인이 선택한 길이고, 그 책임도 본인이 져야 할 몫이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해보라고 했어요. 고3 정도 되니 엄마가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더라고요. 대신 엄마 도움을 받고 공부할 수 있는 지금 열심히 해보라고 했죠. 이 시기가 지나면 돈도 벌면서 공부도 해야 하니 힘들 거라고..."
"정말요? ㅎㅎㅎ 앵글이와 대화를 많이 나눠주셔서 앵글이가 멋지게 잘 자라고 있는 것 같네요."
앵글이의 학교생활은 걱정되지 않았다. 하교 후 들려주는 이야기로 충분히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3학년이 되면서 심리적 부담감이 커져 그런지 아이의 체력은 점점 바닥을 드러냈고 병원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어제도 점심시간 즈음 전화가 왔었다. 두통이 있고, 목이 많이 아프며, 으슬으슬 춥다고 했다. 지난주부터 시작된 줌 교육이 온종일 수업이라 아이를 데리러 가기 어려웠다. 수업을 마치고 하교 시간에 맞춰 부랴부랴 아이를 데리러 갔다. 함께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돌아서는데 아이의 책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대신 들어주려 번쩍 들어 올렸더니 무게가 상당했다. 가방 무게만으로도 아이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도 겪었고, '우리'모두 겪어 온 길이다. 같은 걸음임에도 내 아이가 겪고 있는 그 길이 더 고되 보이는 것은 아마도 엄마이기 때문인가 보다. 도와주고 싶어도 도울 수 없는 길, 대신 살아줄 수 없으니 스스로 견디고 헤쳐나가야 할 첫 번째 관문 인 셈인데 아픈 아이를 보니 마음이 쓸쓸했다.
"내일 학교 갈 수 있겠어?"
"컨디션은 엉망인데 내일 학교 가야 해."
"그래?"
"내일 짝지어서 하는 수행이 하나 있는데, 나는 정시라 괜찮지만 나랑 짝이 된 친구는 수시를 준비하고 있어서 내가 안 가면 그 친구도 수행을 못 보게 되잖아. 힘들어도 가야지."
앵글이의 생각이 당연함에도 안쓰럽고 고마웠다. 몸이 아파도 중요한 시험을 앞둔 친구를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 고맙고, 불평하지 않아서 기특했다. 아침이 되고 앵글이는 학교에 갔다. 1교시 수업이 마쳐졌을 시간, 담임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앵글이가 많이 아프다고 하셨다. 등굣길 아이 얼굴이 백지장 같았지만 가겠다는 아이를 말릴 이유를 찾지 못했었다. 어쩌면 마음 한편에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교문을 향해 다가오는 아이의 모습이 저 건너 보이는데 가방이 오는 건지 아이가 오는 건지 모르겠다.
이것저것 집안일을 하다 열이 오를까 싶어 앵글이 방으로 갔더니 공부방에 있었다. 아파서 조퇴를 했어도 마음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따뜻한 물 한잔 건네주고 돌아서는 마음이 무거웠다. 두세 시간 그렇게 앉아있나 싶더니만 어느새 제 방에 누워있다. 책상 위에 약봉지를 펼쳐놓은 채 말이다.
아이들과 소통하는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집에서 본 아이의 모습이 전부이기에 엄마의 마음은 늘 불안하다. 학교 생활도 잘해주었으면 좋겠고, 교우관계도, 성적관리도 스스로 척척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그 모든 것을 잘 해내길 바라는 것 또한 욕심임을 안다. 그래서 아이들의 엄마인 '나'는 욕심을 버리는 연습을 한다.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때 11살의 '나', 19살의 '나'를 소환해 본다. 그때의 나라면 무엇을 원했을까? 어떤 것들이 섭섭하고, 고마웠을까? 생각하며 마음을 낮추고 아이들을 대하지만 늘 부족하다. 그래도 엄마로서의 '나'는 아이들의 마음에 섭섭함이나 노여움이 생기지 않도록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한다. 11살의 동글이가 언제쯤 19살의 앵글이만큼 자랄까 싶다가도, 19살의 앵글이를 보면 11살의 동글이만 할 때가 그립고 생각난다. 계속 어린이로 머물렀으면 싶은 마음과 어서 자라서 엄마도 졸업 좀 하자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쑤석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