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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Jul 18. 2022

시시각각 변하는 고3 딸의 감정 날씨

"요즘 너의 뇌는?"

#1. 천둥, 번개

앵글이는 정치, 사회, 문화, 연예 등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세상만사 돌아가는 사정에 거의 관심 없는 엄마와 정 반대 성향이다. 연일 계속되는 사건사고에 관하여 하루 한 번씩 읊어준다. 집에 뉴스 앵커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단지 앵커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앵글이 내면의 '화'를 얹어 마치 눈앞에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분노를 가득 담아 전해준다는 것이다. 어쩔 때는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실시간 생생하게 전달해 주는 앵글 앵커의 보도는 언제나 생동감이 가득하다.


"엄마, OO대에서 일어난 사건 알아?"

"응. 아침에 뉴스 봤어."


감히 문장으로 쓸 수 없을 만큼 버럭버럭 감정을 가득 담아내던 앵글이는,


"내가 화가 좀 많아. 집에서 안내면 어디 가서 내겠어. 그치? 엄마??"


한참을 쏟아내더니 민망한지 한 마디 거들다가 이내,


"나라 꼴이 뭐가 되려고..."


로 시작해서 정치, 경제로 넘어가 한참을 떠들어대는 앵글이다.


"휴... 이제 좀 마음이 편안해졌네. 이제 공부해야겠다. 나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공부해야지. 그치? 엄마??"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널을 뛰는 앵글이가 쏟아낸 수다를 오늘도 두 시간은 들어줬다.


#2. 산들바람

앵글이와 함께 동글이 커트를 하러 미용실에 들렀다. 건물을 착각해서 옆 건물에 주차를 해버렸다. 요즘 이런 정도의 실수는 애교에 가깝다.


"아이코. 미용실이 옆 건물에 있었네? 이따가 나오면서 카페 들러 커피라도 한 잔 포장해야 하나?"

"아니? 올리브영 봤어. 나 살 것 있어."


앵글이가 참새방앗간을 보고 말았다. 오늘도 앵글이에게 탈탈 털리게 생겼다. 그 순간 앵글이의 시선에 딱 꽂힌 올리브영, 순발력이 대단하다. 동글이 커트를 마치고 매장에 들어서니 앵글이의 눈빛이 반짝인다.


"엄마, 내가 틴트를 봐 둔 게 있는데 두 개 사도 돼?"

"무슨 틴트를 두 개나..."

"이게 지난 금요일에 나온 신상인데 색감이 괜찮더라고..."


막상 테스트를 해 보니 맘에 드는 색상은 하나였다. 하지만 두 개를 사려던 앵글이가 하나만 고르고 그냥 돌아설 거라는 건 상상 속에서나 벌어질 일이다.


"엄마, 틴트 색에 맞춰 새도우 하나 사도 돼?"


'역시나'이다. 맘에 드는 화장품을 구매한 앵글이는 세상 다 얻은 듯 행복하다.


"엄마, 기분이 너~무~~ 좋아졌어. 완전!! 와우~ 오늘 내 생일인가?? ㅎㅎㅎ"


'그래. 밝은 네 표정을 봤으니 돈 값을 한 거지...'라고 마음을 먹으면 둘 다 행복할 수 있다.


집에 돌아온 앵글이가 씻기 시작하더니 이내 예쁘게 몸단장을 하고 거실로 나왔다.


"어디 가려고?"

"아니? 오늘 신상 화장품을 샀으니 화장을 해야지."

"나가지도 않는데?"

"응. 화장하고 사진 찍으려고..."

"화장하면 또 씻어야 하잖아. 귀찮지도 않아?"

"예뻐지면 스트레스가 풀리잖아."


평생 화장이라고는 대소사가 있지 않는 한 거의 하지 않는 나로서는 좀체 이해할 수 없지만, 예뻐지는 제 모습을 사진에 담아내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앵글이는 곱디고운 열아홉 청춘이다.


앵글이는 정성 가득 공을 들여 화장을 한 후 셀카 찍기 삼매경이다. 한 200장은 찍은 듯한데도 장소를 옮겨가며 사진 찍기에 진심이다. 도통 요즘 애들 놀이에 적응하기 어렵다. 하지만 내 눈에도 앵글이는 정말 예쁘다. 그러고 보면 나도 고슴도치 엄마가 분명하다.


"엄마, 엄마는 내가 뭐 한다고 했을 때 하지 말라고 하는 법이 없는 것 같아."

"화장하고 사진 찍는다는데 뭘 그걸 하지 말라고씩이나..."

"그래도... 고3이 정신 차려!! 할 수도 있잖아... ㅋㅋㅋㅋ"

"스트레스 풀린다며... 시간 뺏긴 만큼 보충도 하겠지. 나이가 몇이라고 엄마가 잔소리를 하겠어."

"역시! 울 엄마!"


앵글이의 화장대


앵글이의 화장 기술은 날로 날로 발전한다. 그 분야로 취업을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앵글이 화장대에는 각기 다른 붓들이 가득하다. 용도가 다르다고 하는데 퍼프 하나만으로 화장이 끝나는 나와 확연히 차이가 다. 저 많은 도구들을 빌려줘도 뭔지 몰라 못쓸 것 같다. 가끔 화장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앵글이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확실히 앵글이가 화장을 해주면 오래가고 예쁘다.


#3. 신비로운 석양

TV를 잘 보지 않지만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종일 TV 앞에 머물기도 한다. 좋아하는 장르의 완결된 드라마 1화부터 마지막 회까지 한 번에 보는 것을 선호한다. 때로는 봤던 것을 다시 볼 때도 있다. 특이점은 드라마를 소리로만 듣는 것이다. 식사 중 드라마를 시청하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뜨개질, 그림 그리기, 책 읽기, 수놓기 등을 하며 주요 장면에서만 화면을 볼뿐 대체로 소리만 듣는다. 인물들의 대화를 들으면 장면이 연상되고 의외의 상황이 들려올 때 화면을 응시한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보아도 충분히 재미있다는 것이다.


TV를 시청하고 있다가 앵글이가 등장하면 신기한 현상이 벌어진다.


"엄마, '명불허전'봐?"

"어? 어떻게 알아? 이거 봤어?"

"아니? 그냥 알아."


진짜 신기하다. 앵글이가 태어나기 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도 한 장면만 슬쩍 보고서 대번에 제목을 맞춘다. 어떻게 알고 있는지 본인도 모른다고 한다. 등장인물, 장면 하나만 보아도 드라마 제목을 줄줄 꿰는 앵글이의 뇌가 정말 궁금하다.


"어? 저 드라마 '피고인'이지? 지성 나오는 거."

"대박~ 한 장면만 봐도 알아?"


화면 속에 지성이 나온 것도 아닌데 단번에 알아본다. 본인도 모른다는 드라마 장면 맞추기, 신서유기나 1박 2일에 보내면 기상 미션에서 꼭 밥을 얻어먹을 것이 분명한 경지이다.


"앵글아, 진로를 바꿔볼 생각 없어?"

"어떤 거로?"

"드라마 평론이나, 문화콘텐츠 융합과, 방송제작과... 뭐 이런 걸로..."

"ㅎㅎㅎ 완전 잘할 것 같은데?"


앵글이의 드라마 제목 맞추기는 상상 이상이다. 보지 않고도 맞추는 신기 어린 기억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앵글아, 그런데 드라마 제목과 스토리는 어떻게 아는 거니?"

"우연히 짤로 볼 때도 있고, 음... 그냥 알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는 나도 몰라."


#4. 먹구름

배송받은 냉동식품에 드라이아이스가 들어있었다. 동글이가 다가와,


"엄마, 오랜만에 드라이아이스 놀이해볼까?"

"왜?"

"그냥. 안 한 지 오래됐잖아."


놀이랄 것도 없다. 드라이아이스를 투명 컵에 넣은 후 물만 채워주면 그만이다. 냉기 가득 담은 연기와 함께 뽀글뽀글 기포가 생긴다. 그 속에 물감을 넣어주면 물감 색에 따라 연기 색도 변한다. 이후 주방세제 한 방울 넣어주면 기포가 비눗방울에 갇히면서 넘실댄다. 이쑤시개로 방울 하나하나 터트려주면 비눗방울에 갇힌 연기가 터져 나온다. 아이들이 참 좋아하는 놀이이다.


앵글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 듯 한


학교에서 돌아온 앵글이가 심상찮다. 웃음기 하나 없이 굳은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을 보며 내 안의 불안이 솟아오른다.


"앵글아, 무슨 일 있어?"

"아니? 없어. 그냥 사는 게 재미없어서..."

"그래? 왜 재미가 없어?"

"그냥 그래. 답답하고, 불안하고, 기분이 나빠."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우선 종일 굶었을 앵글이를 위해 저녁을 준비하고 배를 든든히 채워주었다. 좋아하는 딱딱이 복숭아도 챙겨주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놓아줬다.


"역시, 집이 최고야."


한결 기분이 좋아진 기색이다. 그래도 스쳐가는 먹구름이 개운하게 걷히지 않는다.


"엄마, 수시 지원하는 애들이 원서 낼 학교 이름을 대는데 옆에서 들으면서 괜히 불안해. 원서를 넣은 것도 아니고, 붙은 것도 아닌데 들으면서 마치 친구들은 다 붙고, 나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별로야."

"기말고사가 끝나서 수시 접수할 친구들이 매일 학교 얘기를 하겠네."

"응. 넣는다고 다 붙는 것도 아니고, 아직 접수도 전인데 학교가 둥 떠있는 것 같거든? 나는 12월이나 돼야 원서를 넣을 텐데 덩달아 마음이 뒤숭숭해서 걱정이야."

"그렇겠네... 도와줄 것도 없고 어쩌지?"

"뭘 어째. 그냥 내가 정신 차려야지."


앵글이는 수시 원서를 넣지 않을 예정이라 수시 지원이 시작되는 9월이 되면 마음이 더 복잡해질 것 같다. 앵글이가 겪어내야 할 과정이지만 그저 지켜만 보는 엄마 마음도 편안 치는 않다. 엄마 마음이 아무리 불안한 들 당사자만 하랴 싶어 덤덤히 이야기를 들어주지만 못내 짠한 마음이 든다. 방방 뜨고 세상을 향한 분노를 쏟아내더라도 속사포 같은 수다를 늘어놓는 앵글이와 마주하는 이 훨씬 좋다.


#5. 맑음

올 해는 여름휴가가 없을 예정이다. 코로나가 시작된 후 3년 간 없던 여름 휴가지만 때가 때이니만큼 조용히 올여름을 보내기로 했다. 대신 여름휴가 비용을 쪼개어 매주 일요일 아이들과의 나들이에서 일요일 점심만큼은 맛집 투어를 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동글이가 수업하는 동안 앵글이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점심 메뉴를 고른다. 동글이의 수업 장소가 맛집 많은 일산 중심가라서 참 좋다.


"엄마, 오늘 점심은 뭐야?"

"음... 1번 애슐리, 2번 쌀국수, 3번... 아울렛 식당가에 지난번 갔던 곳 이름이 뭐더라??"


검색창에 이곳저곳 검색을 하다가 문득,


"예전에 갔던 '규카츠'어때?"

"난 좋아."


다행히 동글이도 좋단다. 그래서 오늘 점심은 동경 규카츠 낙점이다.


동경나베/등촌칼국수/동경규카츠


일주일에 한 번, 앵글이와 함께 바깥나들이를 하는 것은 '숨구멍' 같은 것이다. 책상에 앉아있어도 공부만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니겠지만 다른 환경, 다른 장소로의 환기는 필요한 것 같다. 엄마와 함께하는 나들이를 좋아하는 앵글이라 즐겁게 따라나선다. 카공을 하기로 했지만 오늘도 카페에 앉아 셀카 삼매경이다. 일주일 밀린 수다를 늘어놓고, 점심으로 무얼 먹을까 메뉴 짜기에도 진심이었다.


수업을 마친 동글이는 '배고파'를 연발한다. 식당까지 이동시간 10분, 식당에서 30분, 집으로 오는 시간 15분, 이동하고 먹고 돌아오기까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정말 먹기 위한 나들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앵글이는,


"엄마.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지만 반수 한다고 생각해보면 똑같아. 1학기 마치고 시작하니까 나랑 같은 시간이 남은 거잖아? 그렇게 생각하면 그리 불안할 일도 아냐. 앞으로 더 열심히 하면 돼지. 안 그래?"


누가 뭐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기 각오일 뿐. 가끔 앵글이를 보면 드라마 킬미힐미의 차도현을 보는 것 같다. 7개의 인격이 저마다의 모습을 갖춘 것처럼 앵글이도 맑았다 흐렸다 웃었다 찡그렸다 시시각각 변해서 변하는 시점 알기가 참 어렵다.


책상 앞에 앉았던 앵글이가 얼마 후 소파에 누운 엄마 곁으로 쪼르르 다가와 납작 엎드렸다.


"왜?"

"납작해지고 싶어."


ㅎㅎ 납작해지고 싶다니... 그래, 맘껏 쉬어라. 오늘만 날이 아니니... ㅎㅎ


7월 3주(7.18 ~ 7.23) : "요즘 내 뇌는 왜 이럴까?"

7월 4주(7.25 ~ 7.30) : "다람쥐만 쳇바퀴를 돌리는 게 아니겠죠?"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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