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고3이 되니 덩달아 마음이 분주합니다. 한편으로는 홀가분하기도 합니다. 이제 엄마의 도움 없이도 홀로서기가 가능할 나이가 되어가는구나 싶어서인지도 모릅니다. 품 안의 자식에서 한 걸음씩 자신의 길을 찾아 걸을 수 있는 힘이 생기도록 곁에서 잘 도와주고 싶습니다.
명동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딸아이와 함께 남대문과 명동에 갔습니다. 도시지만 한적한 동네에서 벗어나 북적이는 서울 중심에 들어서니 촌사람이 따로 없습니다. 빙글빙글 남대문을 돌고 돌아도 손수레 양말 한 짝 구입하지 못하고 돌아섰습니다. 서울 구경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의미 있는 하루를 선물하고픈 엄마의 마음을 고이 담아,
"앵글아, 우리 우정반지 맞출까?"
"정말?? 난 좋아!"
남대문의 명소 대도 상가로 액세서리 구경을 나섰습니다. 작고 반짝이는 아름다운 것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열아홉의 앵글이 눈을 사로잡는 반지는 없었습니다. 결국 집 근처 주얼리 전문점으로 갔습니다.
커플링은 먼 훗날 남자 친구와 맞춰야 하니 엄마와는 우정반지로 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왼쪽 검지 손가락을 선택했죠.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과 디자인으로 주문을 넣고 기다렸습니다.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매장에 들렀습니다. 우리에게 두근두근 설렘 가득한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역시 작고 반짝이는 것은 아름답네요.
부모님 연세가 팔순을 향해 달려갑니다. 세월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몸도 함께 나이 들기에 여기저기 아픈 곳이 늘어가고, 눈가에, 이마에, 손등에 주름이 하나둘씩 짙어집니다. 어머니께서 아프시니 아버지께서도 덩달아 힘이 빠져갑니다. 아픈 사람은 한 명이지만 부부 일심동체여서인지 아버지께도 생기가 사라져 가네요.
음악도 켜지 않은 채 생각을 더듬으며 일산에서 신촌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왕복 65km를 오가고 있습니다. 되짚고 되짚어도 엄마와 함께 나눈 추억이 부족합니다. 사는 게 바빴던 시절을 지나 이제 살만한 때가 찾아왔지만 여전히 서로 분주하고 각자의 삶을 사느라 엄마와 둘만의 시간을 보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때때마다 이유와 핑계가 얼마나 많았던지 지나고 보니 후회 투성이입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지난 시간을 곱씹어도 위안이 될 수 없는 것은 붙잡을 수 없는 세월 때문이고, 되돌릴 수 없는 시간 때문인 것 같습니다.
긴 병에 장사 없다는 말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현재에 최선을 다해봅니다. 그리고 어머니께 힘이 되고, 의욕이 생길 만한 희망적인 약속을 해 봅니다. 얼른 나아서 함께 여행하자고, 좋아하는 임영웅 콘서트도 같이 가자고, 엄마의 꿈처럼 한적한 곳에 층층이 집을 짓고 어울려 살자고 말입니다.
세월을 보내고 후회가 남지 않도록 딸아이에게는 추억 하나씩 선물해주고 싶습니다. 유치하다 하지 않고 덩달아 폴짝대며 기뻐해 주는 딸아이의 모습이 예쁩니다. 함께 반지를 고르고, 치수를 재고, 기다리고, 찾아오는 모든 과정이 참 좋았습니다.
"너와 함께 한 모든 시간이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드라마 도깨비 중 명대사)
함께해서 좋은 것들을 찾아 나눠보고 싶습니다. 딸아이가 품에서 떠나 또 하나의 가정을 이룬 후, 딸이 딸의 딸에게도 엄마와 함께했던 시간을 추억의 책장을 넘기듯 함께 읽을 수 있도록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