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운 Jul 08. 2022

고3 딸아이의 7월 모의고사가 끝났다.

수능 시험장에는 시계가 없어요. 전자시계는 안돼요!

앵글이의 모의고사가 있는 날 아침,


"엄마, 나 오늘 모의고사야."

"그래?"

"응. 엄마가 모르고 있을까 봐..."

"몰랐지. 얘기를 안 해주면 알 수가 없지."

"그러니까... 엄마가 모를 것 같아서 알려주는 거야."

"알려줘서 정말... 고맙구나. 딸아..."


지난주부터 5일 간 기말고사였습니다. 기말고사가 끝난 다음 날, 바로 모의고사로 이어지는 걸 몰랐네요. 아침에 등교 준비 중 스치듯 이야기하는 앵글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3 딸을 둔 엄마인데 참 무심하다 싶습니다.


셔틀버스 시간에 맞춰 후다닥 현관을 나서며 '다녀오겠습니다!' 하는 앵글이의 등교 알림 후  10분쯤 지났을까요? 앵글이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엄마, 나 망했어."

"왜?"

"아침에 정신이 없어서 컴싸도 안 챙기고, 우산도 안 챙기고, 시계도 없어. 어쩌지?"

"컴싸는 빌리면 되고, 우산은 시험 마칠 시간에 맞춰 엄마가 데리러 가면 되고, 시계는... 없으면 시험 보기 어렵나?"

"어렵지. 교실에도 시계가 없거든."

"교실에 왜 시계가 없어?"

"수능장에 시계가 없어서 모의고사 볼 때는 시계를 없애고 봐."

"아~ 그렇구나."

"어쩌지? 다른 건 괜찮은데 시간을 볼 수가 없으니까..."


수능시험장에 시계가 없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아마도 시간을 확인한다는 이유로 두리번거리다 커닝으로 오해가 될 수 있으니 벽시계를 없애는 것 같습니다.


"엄마, 나 그냥 집에 갈까?"

"7모는 중요하잖아. 준비가 부족해도 시험은 봐야지."

"앙... 어떡해..."


불안해하는 앵글이를 등교시킨 후 일정에 맞춰 출근을 했습니다. 아이는 불안해하는데 엄마 마음은 평안한 걸 보면 제 멘털이 더 센 것도 같습니다.


앵글이의 과목별 요약노트 / 7월 모의고사 시험지


모의고사가 끝날 시간 즈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동글이를 데리고 앵글이 마중을 나서봅니다.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 앵글이의 모습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하자 차 안에서 '누나다. 엄마~ 누나 저기 보여!' 들리지 않는데도 차 안에서 누나를 부르는 동글이입니다.


"누나, 오늘 시험 봤어?"

"응."

"누나. 시험 잘 봤어?"

"응. 엄청 잘 봤지."

"진짜? 그럼 누나 대학 갈 수 있어?"

"ㅋㅋㅋㅋㅋㅋ 정말 갔으면 좋겠다. ㅎㅎㅎㅎㅎㅎ"

"아침에 컴싸 없다고 난리 더니 빌려서 잘 치렀어?"

"응. 친구가 여분이 있다고 해서 빌렸지. 시계도 빌리고..."

"잘했네."

"엄마, 그런데 나 잘 봤냐고 안 물어봐?"

"물어봐야 해?"

"응."

"잘 봤어?"

"어. 엄청... ㅋㅋㅋㅋ"

"오~~~ 뭔가요... 엄마 설레게... 이렇게 당당하게 잘 봤다고 말하나요..."

"엄마가 다른 날 하고 다르게 내가 징징거리는데도 시험 보러 가라 했잖아. 그게 신의 한 수였어."

"그래? 이번에는 만족스러워?"

"응... 엄마, 내가 수학 공포증이 있잖아. 그런데 이번 시험에서는 수학을 다 풀었어. 수학 공포증이 사라진 것 같아서 너무 기뻐. 다음에는 더 잘 볼 수 있을 것 같아. 감 잡았어."

"다행이다... 엄마 마음이 다 기쁘네... 모의고사 때문에 어젯밤 잠을 안 잔 거구나 싶더라."

"그랬지... 엄마,  그동안 좀 불안했거든. 공부를 하긴 하는데 나아지는 것 같지도 않고, 제대로 알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서 많이 힘들었어.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급부상할 수가 있지?"

"헉... 누나... 다쳤어?"

"응? 아니? 왜??"

"누나가 급부상당했다고 했잖아. 급부상은 급하게 다쳤다는 거 아니야?"


잠시 정적이 흐르고, 뒤늦게 말뜻이 이해되어 웃음보가 빵 터졌습니다.


"동글아~ ㅋㅋㅋㅋㅋㅋㅋ"

"엄마, 이제 이해한 거지."

"응... ㅋㅋㅋㅋㅋㅋ"

"엄마, 왜?"

"동글아, 급부상은 그런 뜻이 아니야."

"그럼?"

"빠른 속도로 높이 올라갔다는 뜻이야. 누나 성적이 지난번보다 많이 올랐다는 뜻이지."

"그런데 왜 부상이라고 해? 부상은 다치는 거 아니야?"

"동글아, 부상이 그런 뜻도 있는데, 음... 부력 알아? 부력 할 때 '부'랑 부상할 때 '부'는 한자어가 같아."

"응..."


동글이가 알아들은 거겠죠? 앵글이가 귓속말을 합니다.


"엄마, 알아듣고 대답하는 걸까?"

"글쎄...ㅎㅎㅎ 그나저나 성적 오르면 동글이한테 선물 줘야겠다. 너~ ㅎㅎㅎ"

"왜?"

"맨날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동글이 아기 때 영상 보잖아. 동글이 영상 보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며... 그러니 동글이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 거야... ㅎㅎㅎ"

"그러네... 상 줘야겠네.... 근데 동글이 아기 때 너무 귀엽지 않아?"


몇 달 전부터 앵글이는 동글이 덕후가 되었습니다. 옛날 사진 폴더에서 동글이 동영상을 찾아 저에게도 보내줍니다. 하루에 몇 번씩 동글이 영상을 보다가 다가와 보여주는 앵글이의 모습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사진 폴더에서 찾아 톡을 보내는 앵글이


최근에 찾아낸 동글이의 아이스크림 영상은 제가 봐도 귀엽습니다. 우유를 먹지 않는 동글이가 우유맛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즐거워하는 영상입니다. 3살 동글이의 장난기 어린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아마도 이 날, 아이스크림을 처음 맛본 날인 듯합니다.


"엄마한테도 나눠주지 않을꺼야!"

추적추적 비도 내리고, 앵글이의 시험도 끝나 마음이 홀가분합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집 근처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싱싱한 오징어, 낚지, 새우, 조개류를 듬뿍 넣은 해물칼국수입니다. 손질해서 아이들 그릇에 놓아주니 동글이가 연신 '맛있다!'를 외쳐댑니다.


우리동네 맛집 [박승광 해물칼국수]


칼국수 사리도 추가해서 든든히 배를 채운 뒤 집에 돌아오니 제 마음도 흡족합니다. 일단, 저녁을 뭘 먹을지 고민 안 해도 되고, 설거지에서도 해방되었습니다. 씻고 쉬기만 해도 좋을 여유로운 저녁이 선물처럼 다가왔습니다. 앵글이의 기분 날씨도 좋습니다. 고3의 기분에 따라 거실 날씨도 오락가락하지만 오늘은 유난히 맑고 평안하네요.


정시를 준비하는 앵글이에게 비교적 만족스럽고, 조금은 마음 편안한 오후여서 더욱 감사한 하루입니다. 수능이 133일 남았습니다. 남은 시간이 지나온 시간보다 적지만, 불안보다는 기대감으로 매일을 살아냈으면 좋겠습니다.




이전 15화 고3 딸아이 담임선생님과의 면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