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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운 May 22. 2024

생일선물로 받은 편지

"엄마, 생일 선물로 뭘 받고 싶어?"


이제 갓 스물이 넘은 딸아이가 물었습니다.


"한도액이 얼마야?"

"음... 한 십만 원 정도??"

"정말? 그렇게 많이?"

"그동안 모아놓은 용돈으로 그 정도는 사줄 수 있을 것 같아."

"동글아~ 넌 엄마 생일에 얼마 정도 쓸 수 있을 것 같아?"

"난, 그럼 이만 원??"


아이들이 좀 크긴 했나 봅니다. 어버이날이 생일이다 보니 그간 주변을 챙기느라 어영부영 넘겼던 날입니다. 딱히 관심도 두지 않았던 터라 미리 물어주는 딸아이의 마음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음... 생일 선물로 난 뭘 받고 싶을까?'


[생일선물]

자신만만하게 선물을 사주겠노라 말하는 딸아이의 주문에 선뜻 답할 수 없었습니다. 가족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은 묻지 않고도 채워주면서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남편과 커가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더 먼저 챙기는 것에 익숙해져서일까요?


며칠 동안 '필요한 것'에 대해 생각하다가 '마음'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생일 선물로 진심을 가득 담은 편지를 써줘. 동글아, 두 세줄은 안돼! 색종이 두 장도 안돼! 진심을 가득 담아서... 알았지?"

"선물은 필요 없고 편지만 있으면 된다고?"

딸아이가 물었습니다.

"응. 편지면 돼! 단, 진심을 가득 담아서..."

"엄청 어려운 주문인걸?"


일주일의 시간을 주었지만 생일 아침까지 선물을 준비한 건 딸아이뿐이었습니다. 동글이는 차라리 커다란 케이크를 사주면 안 되느냐고 물었고, 남편은 밥을 사겠다고 했습니다.


"아니? 난 편지를 받고 싶어~! 지금이라도 써줘!!"


출근 전, 등교 전,

남편과 아들은 식탁에 앉아 A4 용지를 꺼내어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학교에서 써서 이따가 저녁에 줄게..."


동글이는 후다닥 등교를 하고, 남편은 꾸꾹 눌러쓴 편지 한 장을 건네고 출근을 했습니다.


생일 아침,

세 가족의 마음이 가득 담긴 편지에 찡하니 코끝이 아렸습니다.


워킹맘에서 전업주부로 부서이동을 한 뒤 '한층 낮아진 자존감'과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일까'를 반문하게 되던 요즘, 가족들의 편지를 읽으며 그래도 '전업주부로의 선택'은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스스로에게 답하게 된 생일이 되었습니다.


별 것 아닌, 소소한, 늘 있는, 평범함 오늘,

이러한 것들이 유지되려면 누군가의 소리 없는 희생이 뒤따르고, 거의 그 역할은 엄마가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있을 때에는 잘 모르다가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티 나는 자리가 바로 주부의 자리,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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